월드컵 공부터 회장직까지… 아디다스, 어떻게 FIFA 장악했나
FIFA의 큰손 된 이유
월드컵 공인구(대회 공식 공) ‘알 리흘라’는 2022 카타르 대회에서 심판 판정을 돕는 1등 공신 역할을 하고 있다. 공인구에 내장된 고성능 전자 센서가 공의 위치와 움직임을 1초당 500회 감지해 오프사이드, 골라인 아웃 여부를 정확히 가려주기 때문. 1㎜ 차이까지 잡아내는 기술 덕분에 오심 논란도 크게 줄었다. 일본이 스페인과 치른 조별 예선에서 16강행을 확정 짓는 결승골을 올리기 직전 상황이 대표적 사례. 일본 선수 몸에 맞은 공이 육안으론 골라인 밖에 나간 것처럼 보였지만 판독 결과 아웃이 아닌 것으로 밝혀져 이후 나온 일본의 슈팅도 득점으로 인정됐다.
알 리흘라가 월드컵에서 활약할 때마다 크게 웃는 주인공은, 공인구를 제작해 국제축구연맹(FIFA)에 공급한 독일 스포츠 브랜드 아디다스다. 비디오 판독(VAR)에 들어갈 때마다 공인구 표면에 새겨진 아디다스 로고가 중계 카메라를 통해 전 세계 축구 팬들에게 그대로 노출되기 때문이다. 아디다스는 이번 카타르 대회뿐 아니라 2010 남아공 월드컵(자블라니), 2002 한일 월드컵(피버노바) 등 월드컵 대회 때마다 공인구를 독점 공급하며 글로벌 축구 브랜드로서 홍보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여기서 적지 않은 축구팬이 갖는 의문. 왜 아디다스만 FIFA에 공인구를 독점 공급하고 있는 걸까. 전 세계에 축구공을 만드는 회사가 아디다스 말고도 많을 텐데 말이다. 그 뒤에는 50년 동안 나이키·퓨마 등 쟁쟁한 경쟁사들을 밀어내고 FIFA의 글로벌 스폰서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아디다스의 치밀한 마케팅 전략이 숨어 있다.
FIFA를 세계 최대 스포츠 기구로 만든 아디다스
아디다스와 FIFA의 긴밀한 관계는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FIFA는 IOC(국제올림픽위원회), UN(국제연합)보다 많은 회원국(211국)을 보유한 세계 최대 규모 스포츠 기구이지만 당시엔 평범한 체육 단체 중 한 곳에 불과했다. 월드컵 대회도 지금처럼 큰 규모가 아니었다. 하지만 아디다스가 글로벌 기업의 후원을 받는 스폰서 시스템을 도입한 후 FIFA의 위상은 달라졌다. 국제 스포츠 기구 중 기업 후원을 받기 시작한 건 FIFA가 최초였다. 당시 스폰서십 아이디어를 낸 사람이 아디다스 창업자 아디 다슬러의 아들이자 2대 회장이었던 호르스트 다슬러(1987년 사망) 회장. 다슬러 회장은 코카콜라를 첫 후원 기업으로 데려왔고, 아디다스가 두 번째 FIFA의 스폰서가 됐다. 현재 FIFA는 아디다스를 비롯, 글로벌 스폰서를 총 7개 보유하고 있다.
아디다스의 핵심 전략은 월드컵 공인구 독점 공급이었다. FIFA는 1930년 첫 월드컵 대회 이후 40년 동안 개최국에서 제작한 공을 공인구로 사용했다. 공인구를 미리 써볼 수 있는 개최국에 유리할 수밖에 없던 상황. 다슬러 회장은 1970년 멕시코 월드컵을 앞두고 FIFA가 선정한 공식 업체의 공인구로 대회를 치르자고 제안했고, FIFA의 글로벌 파트너사 중 유일한 스포츠 브랜드인 아디다스가 자연스레 독점 공급권을 갖게 됐다. FIFA가 큰돈을 벌 수 있도록 스폰서십이라는 판을 깔아주고 아디다스 스스로 그 위에 올라 막대한 이득을 취한 것. 축구계 한 관계자는 “아디다스는 1970~80년대부터 TV 스포츠 중계가 크게 늘어나면서 아시아·남미 시장에서 축구공, 축구화, 유니폼 판매량을 크게 늘려 글로벌 톱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했다.
FIFA와 아디다스는 구체적인 후원 금액은 밝히지 않고 있다. 하지만 업계에선 아디다스가 우리 돈으로 매년 1300억~1800억원가량을 FIFA에 내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월드컵이 열리기까지 4년 동안 후원금만 최대 5000억원에 이르는 것. 하지만 아디다스는 월드컵 특수로 후원금 이상의 수익을 올린다. 미국 시장조사 기관 마켓워치에 따르면, 2017년 2분기 아디다스의 순이익은 1억5800만유로(약 2194억원)였는데 러시아 월드컵이 열린 이듬해 2분기엔 3억9600만유로(약 5502억원)로 2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4년 동안 FIFA에 낸 후원금을 한 분기에 다 벌어들인 셈. FIFA도 월드컵이 열릴 때마다 막대한 이득을 올린다. 외신에 따르면, 지난 4년간 방송 중계권료 등 카타르 월드컵 관련 매출만 10조원에 육박한다.
블라터 전 회장이 ‘메이드 인 아디다스’?
아디다스는 FIFA와의 긴밀한 관계 때문에 한때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지난 2015년 FIFA 뇌물 스캔들 사건이 터지면서 비리 연루 의혹이 불거진 것. FIFA 조사 결과 다슬러 회장이 설립한 스포츠 마케팅 업체 ISL이 FIFA 간부들에게 뇌물을 준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당시 거액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FIFA 회장직에서 물러난 제프 블라터도 각종 출판, 보도를 통해 아디다스와 밀접한 관계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블라터 회장은 원래 스위스 시계 회사 임원으로 근무하다가 다슬러 회장의 발탁으로 FIFA에 진출해 회장직까지 올랐다. 이 과정에서 아디다스가 블라터의 뒷배였다는 설이 나오면서 블라터에겐 ‘메이드 인 아디다스’라는 별명도 붙었다. 아디다스가 세계 축구계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자기 사람을 FIFA에 심어 최고위직까지 육성했다는 것. 실제 블라터는 FIFA 사무총장 시절 다슬러 회장과 함께 FIFA의 글로벌 스폰서십을 도입했고, 월드컵 개최국 확대·TV 중계권 판매도 추진했다. 하지만 FIFA 뇌물 스캔들이 불거질 당시 아디다스 측은 “ISL은 다슬러가(家)의 소유로 아디다스와는 관련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아디다스가 기업 차원에서 FIFA에 대대적인 로비를 하거나 부당한 방법으로 이권을 챙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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