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새로 뜬 저자 7인… 내 글의 원동력은 ○○다

이태훈 기자 2022. 12. 17.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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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Books는 새로 뜬 별들을 주목했다. ‘2022 올해의 저자’ 대부분이 30~40대 신인 작가·신진 연구자. 이들에게 ‘올 한 해 당신을 쓰게 한 힘은 무엇인가’ 물었더니 갓 벼린 칼날처럼 싱싱한 단어들이 답으로 돌아왔다.

소설가 정보라의 ‘투쟁’, 논픽션 작가 조귀동의 ‘갈증’, 인류학자 조문영의 ‘연결’, 과학기술연구자 임소연의 ‘여자들’, 용접공 출신 작가 천현우의 ‘절박함’엔 계층·지역·성별 차별과 불평등을 타파하고자 하는 갈급한 열망이 담겼다. 고전 연구자 이후남의 ‘판타지’, 그림책 작가 이수지의 ‘놀이’엔 인간에 대한 애정이 묻어있다. 갈급함과 애정으로 올해를 쓴 저자들을 소개한다. /곽아람 기자

/그래픽=김하경

◊韓 첫 안데르센상 수상 “즐거움이 네게 닿기를”

그림책 작가 이수지

파도야 놀자 | 비룡소 | 36쪽 | 1만2000원

클래식에 임윤찬, 대중음악에 BTS가 있다면 우리 그림책엔 이수지(49) 작가가 있다. ‘아동문학 노벨상’으로 불리는 세계 최고 권위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의 올해 수상자. 한국 작가 최초다.

그는 오로지 이미지의 힘과 시각적 서사로 이야기하는 ‘글 없는 그림책’의 길을 개척해왔다. 안데르센상 선정 기관인 국제아동청소년도서협의회(IBBY)는 그의 책을 “가장 정제된 스타일로 가장 진지한 이야기를 전하는 신나는 놀이”라고 했다. 그가 계속 그리는 힘 역시 ‘놀이’에서 나온다. 작가는 “놀이하는 기분으로 놀이를 그린다”고 말한다. “내가 즐거우면 너에게 전해지겠지. 그래서 네가 즐거우면 나에게 전해질 테고. 그걸 동력 삼아 또 놀고 만들죠. 가장 진지하게 놀이에 임할 때 마음에 드는 것이 나옵니다.” /이태훈 기자

◊변신 여우·하늘의 돼지 상상만 해도 신이 난다

고전소설 연구자 이후남

요망하고 고얀 것들|눌와|320쪽|1만7000원

‘K요괴’. 이후남(36) 한국연구재단 학술교수의 연구 주제다. 사람을 속이며 변신하는 여우, 하늘을 날아다니며 미인을 납치하는 금돼지, 물속에서 독을 내뿜는 털뭉치…. 그는 지금까지 고전소설 77편에서 요괴를 모두 158종 찾아냈다. ‘요망하고 고얀 것들’은 이 중 20여 종을 소개하는 한국 요괴 열전(列傳). 박사 학위 논문 ‘고전소설의 요괴 서사 연구’(2018)를 보완한 ‘한국 고전소설의 요괴’도 올해 함께 나왔다.

논문도 책도 즐겁게 쓰는 사람. 쓰는 일이 즐거운 이유는 ‘판타지’가 글쓰기의 원동력이기 때문 그는 “선조들이 재미있어 한 ‘판타지’를 생각만 해도 신이 난다. 현대인과 소통하며 새로운 콘텐츠로 되살아날 수 있는 살아있는 고전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곽아람 기자

◊난자 냉동·성형 미인 여자와 과학을 엮다

과학기술 연구자 임소연

나는 어떻게 성형 미인이 되었나|돌베개|243쪽|1만5000원

성형 기술 연구를 위해 성형외과 코디로 취직, 직접 양악 수술까지 받은 이야기를 담은 ‘나는 어떻게 성형 미인이 되었나’, 난자 냉동 등 과학기술 현장을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검토한 ‘신비롭지 않은 여자들’, 공저 ‘겸손한 목격자들’ ‘돌봄과 작업’, 공번역서 ‘바디 멀티플’…. 임소연(45) 동아대 기초교양대학 교수는 올 한 해 풍성한 열매를 거뒀다.

그의 글쓰기를 추동한 힘은 ‘여자들’. 일곱 살 딸을 둔 워킹맘으로 “양육이든 연구든 타협만이 살길”이라고 결론 내렸다는 그는 “여자들의 이야기가 더 쓰여야 한다 생각하며 썼다”고 했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임소연은 페미니즘과 과학의 교차로에서 몸에 대한 지식이 어떻게 형성되고, 어떤 오류와 편견에 빠져 있는지 탐구한다”며 추천했다. /곽아람 기자

◊등단 없이 SF 외길 부커상 최종 후보에

소설가 정보라

저주토끼 | 아작 | 328쪽 | 1만4800원

정보라(46)는 소설집 ‘저주 토끼’로 올해 최고 권위 세계 문학상인 영국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심에 올랐다. 공식 등단 절차를 거치지 않았지만, 20권이 넘는 책을 낸 중견 SF 작가. 부커상 후보 지명 이후 한국 문학의 다채로움을 알리느라 분주했다. 소설집 ‘여자들의 왕’(7월)을 펴냈고, 월간 ‘현대문학’ 7·8월 호에 장르 문학 특집을 기획해 실었다.

취미가 ‘데모’인 작가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자본주의 등의 폐해를 꼬집는 ‘투쟁’을 현실에서 이어간다는 설명. ‘투쟁’은 곧 그가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부커상 후보에 오른 날에도 우크라이나 반전 집회에 참여했다. 그는 “갑질·착취할 권리가 있다고 믿는 자들을 글 속에서라도 흥미로운 방식으로 응징하고, 피해자들을 위로하고 싶다”고 했다. /이영관 기자

◊”호남을 제대로 보라” 대선후보 3人이 추천

논픽션 작가 조귀동

전라디언의 굴레|생각의힘|288쪽|1만7000원

‘전라디언의 굴레’ 저자인 언론인 조귀동(41)을 쓰게 한 동력은 ‘갈증’이다. 그는 “선거철 표심 외에 호남 지역 내부 문제에 대해선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현실에 갈증을 느껴 이 책을 쓰게 됐다”면서 “한국에서 ‘지역’이란 서울의 시각에서 규정되는 타자(他者)”라고 했다. 광주를 중심으로 산업화 이후부터 이어진 호남 지역의 저개발, 지역 차별 문제를 드러낸 책으로, 지난 대선 당시 심상정·윤석열·이재명 세 후보가 모두 추천해 화제가 됐다.

그는 2020년 낸 ‘세습 중산층 사회’부터 한국 사회의 불평등 구조에 꾸준히 관심을 가져 왔다. 표정훈 출판 평론가는 “실증적 데이터를 여러 각도에서 면밀히 분석하는 작업 방식이 탁월한 논픽션 저자”라고 평했다. /윤상진 기자

◊”빈곤, 어디에나 있다” 20년간 인류학 연구

인류학자 조문영

빈곤과정|글항아리|428쪽|2만4000원

조문영(47)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점점 뜸해지는 주제인 빈곤, 불평등에 관해 오랫동안 진지하게 연구해온 저자”(손민규 예스24 PD)다.

‘빈곤 과정’에선 서울 난곡의 가난과 복지를 주제로 해 학계의 주목을 받은 2001년 석사 학위 논문에서 시작돼 20여 년간 이어진 연구를 갈무리했다. 빈곤 지역 거주자가 정부나 기업과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가난이 어떻게 드러나는가를 주제로 삼았다. 현장 연구를 해온 중국 선전과 하얼빈 사례를 한국과 함께 놓았다.

책의 서문은 “빈곤은 어디에나 있다”로 시작한다. 학술서로는 드물게 출간 즉시 중쇄를 찍었다. 글쓰기의 키워드는 ‘연결’. “빈곤이 당신의 삶이자 우리의 화두란 점을 환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곽아람 기자

◊90년생 마산 용접공의 노동 회고록이자 르포

용접공 출신 에디터 천현우

쇳밥일지|문학동네|288쪽|1만4500원

1990년생 마산 청년 천현우는 성인이 되자마자 주·야 교대 68시간 공장 근무를 월 170만원과 맞바꿨다. 자기 몸무게만큼 무거운 물건을 매일 날랐다. 섭씨 400도 액체를 발등에 쏟는 산업재해를 당해도, 고통보다는 좁은 공단 사회에서 당할 불이익이 더 두려웠다.

“이대론 살 수 없다.” 열악한 노동 환경에도 고향을 떠날 수 없는 현실. 지방 청년과 제조업 실상을 알리기 위해 언론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기 시작했다. 그 글밥이 모여 탄생한 ‘쇳밥일지’는 천현우의 ‘노동’ 회고록이지만, 국토 균형 발전 문제를 다룬 생생한 르포이기도 하다. 그는 “쓰지 않으면 아무도 지방 청년들의 현실을 알아주지 않을 거란 절박함으로 만든 책”이라며 “지방 현장 노동자들도 우리 곁 이웃임을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윤상진 기자

[누가 선정했나]

문화부 기자 곽아람, 김성현, 박돈규, 신동흔, 어수웅, 유석재, 윤상진, 윤수정, 이영관, 이태훈, 정상혁, 최보윤

출판 전문가 김태선·박혜진 문학평론가,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표정훈·한미화 출판평론가

서점 MD 구환회·김다영·김수현·김지은·김현정·위다혜(교보문고), 권벼리·김경영·김효선·임이지(알라딘), 박은영·박형욱·손민규·안현재·이나영(예스24) (가나다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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