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이루어진다’부터 ‘꺾이지 않는 마음’까지 스포츠가 낳은 유행어
확률 9%를 뚫고 대한민국의 16강 진출이 확정되자 선수단이 펼쳐 든 태극기엔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 적혀 있었다. 월드컵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이 말은 지난 10월 롤드컵이라는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 8강 대결을 앞두고 한국 팀 ‘DRX’의 선수 데프트(김혁규)가 한 인터뷰에서 나왔다. 프로 데뷔하고 10년을 언더도그(약자)로 지낸 그가 “패배에도 무너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끼리만 무너지지 않으면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것이다”라고 답한 것이 MZ세대를 감동시키며 회자되기 시작했다. 데프트는 결국 세계 최강 페이커를 꺾고 첫 우승을 이뤘다.
카타르 월드컵이 ‘중꺾마’라는 유행어를 남겼듯, 세계 스포츠 대회가 열릴 때마다 선수들의 투혼이 담긴 유행어가 태어났다. 원조는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한국 축구 대표팀이 4강 신화를 이뤄내자 급속하게 퍼져나간 ‘꿈은 이루어진다’이다. 당시 응원단 ‘붉은 악마’의 공식 응원 앨범 제목에서 유래했다. 제1회 우루과이 월드컵 이후 단 1승도 거두지 못했던 한국 팀이 16강, 8강을 넘어 4강까지 오른 것이다. 그야말로 꿈같은 상황. 2002년생을 ‘월드컵 베이비’라 부르고, 이후 태어난 아이돌 가수들이 오락 프로그램에 출연하면 “월드컵 못 봤겠네. 진짜 재밌었는데”라며 선배들이 놀리는 단골 유머가 됐을 정도다.
2016년엔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남자 개인 에페 결승에서 나온 박상영 선수의 “할 수 있다”가 신드롬을 일으켰다. 헝가리 선수와 맞붙은 박상영은 10대14까지 내몰려 패배 직전 상황. 그러나 박상영은 “그래,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를 나직이 되뇌며 동점 상황까지 몰아붙였다가 끝내 역전승을 거뒀다.
2020 도쿄 올림픽에서 여자 배구 대표팀 김연경이 외친 “해보자. 해보자. 해보자, 후회하지 말고!”도 최고 어록으로 남았다. 상대인 도미니카는 세계 랭킹 7위, 한국은 14위로 고전이 예상됐다. 세트 스코어는 2대1로 앞섰지만, 4세트에서 한국팀은 9대15로 몰렸다. 이어진 작전 타임에서 김연경은 손뼉을 치면서 “해보자”는 말을 5번이나 반복한 뒤 “후회하지 말고!”라고 힘줘 외쳤다. 결국 한국은 도미니카를 3대2로 꺾었다.
도쿄 올림픽에서 높이뛰기 4위를 하며 돌풍을 일으킨 우상혁 선수의 “괜찮아!”도 울림을 남겼다. 그는 도전에 실패할 때도 관중석을 향해 먼저 박수를 유도하며 “괜찮아. 괜찮아!”를 외쳐 신선한 감동을 안겼다.
유행어는 시대상을 반영한다. 20년 전 ‘꿈은 이루어진다’는 희망 메시지를 담고 있지만 결국 결과에 방점을 둔 것. 그러나 카타르 월드컵에서 돌풍을 일으킨 ‘중꺾마’는 승패와 상관없이 자신의 길을 묵묵히 가겠다는 의지라는 점에서 다르다. 김헌식 문화 평론가는 “경기의 승패를 떠나 경기 내용, 그 과정에서 선수들이 발휘한 투혼 등 경기 자체에 몰입해서 스포츠를 즐기는 문화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치·사회적 양극화, 우크라이나 전쟁 같은 불안정한 국제 정세 속에서 꺾이지 않도록 버텨야 생존할 수밖에 없는 시대 상황도 반영한다. 송재룡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승산이 없다’는 비관과 냉소를 물리치고 포기하지 않을 때 자신이 추구하던 가치를 지킬 수 있다는 울림을 준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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