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근대화는 메이지 유신이 아니라 에도시대부터 시작됐다
에도로 가는 길
에이미 스탠리 지음 | 유강은 옮김 | 생각의힘 | 392쪽 | 2만원
“마을 남자들을 싫어하는 젊은 여자들, 아버지한테 매를 맞는 딸들, 보리밭이나 소, 논만 멍하니 바라보는 또 다른 날을 마주하기 힘든 지루한 여자들. 그림에서 본 옷을 입고 싶은 꿈 많은 십대들. 남편이 지겹거나 학대를 당하거나 그냥 남편 나이가 너무 많은 부인들. 첫날밤에 실망한 신부들에게 에도(江戶·지금의 일본 도쿄)는 봉홧불처럼 밝게 빛나는 도시였다. 에도는 하나의 가능성이었다.”
1804년에 태어나 1853년에 죽은 쓰네노(常野)라는 일본 여인의 이름이 역사책에 나오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에도 북서쪽 이시가미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쓰네노는 정토진종 승려 에몬의 딸이었다. 사무라이 신분이었던 에몬가(家)는 16세기 말 이후 쇼군이나 다이묘에게 녹봉을 받으며 전쟁에 나서야 하는 무사의 신분을 포기하고 평민이 됐으며, 에몬의 조상 중 한 명이 승려가 된 뒤로 상당히 풍족한 삶을 살았다.
그러나 딸 쓰네노가 태어나면서 문제가 생겼다. 그가 ‘말 안 듣고 고집 세며 불만투성이인 골치 아픈 딸’이었던 것이다. 과연 그랬나? 미국 노스웨스턴대 역사학 교수로 19세기 일본사에 지대한 관심을 지닌 저자는 쓰네노를 전혀 다른 시각에서 해석한다. ‘하고 싶은 것과 알고 싶은 것이 많았고 기록을 아주 많이 남겼으며 환경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삶을 찾기 위해 스스로 에도로 걸어갔던 진취적인 여성’이라는 캐릭터가 이 알려지지 않았던 전(前)근대 여인의 삶에 씌워지는 것이다.
역사책이라기보다는 논픽션으로 분류되는 이 책은 여러 가지 면에서 흥미롭다. 저자는 ‘사무라이에 관해 모르는 게 없고 에도성의 화장실 상태에 관해 무엇이든 말해줄 수 있다’는 일본통(通)이다. 대다수의 일본인조차 관심을 지니지 않을 지방 도시 공립문서관 소장 쓰네노 가족의 편지를 낱낱이 해부해 이 독특한 캐릭터를 발굴했다. 그러곤 당대 정치, 일상, 문화와 관련된 숱한 자료들을 통해 쓰네노의 삶을 복원하며 에도의 사회사(史)를 그려낸다.
이것은 보통 일이 아닌데, 가령 “에도에는 통과하는 문도 없었고, 들어가기 위해 뇌물을 바쳐야 하는 경비병도 없었다” “총천연색으로 인쇄된 아리따운 여성들의 초상화와 가부키 공연 광고를 보면서 에도에서 유행을 선도하는 사람들이 어떤 옷을 입는지 알 수 있었다” 같은 문장 하나를 쓰기 위해선 상당한 수준의 고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쓰네노는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고향을 등지고 에도로 뛰어들었다. 세 번의 결혼이 좌절된 뒤 집안의 뜻에 따라 자신의 삶이 결정되는 삶을 스스로 청산한 것이다. 목조주택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길 한복판과 집안의 경계가 모호했으며, 가부키와 우키요에 같은 대중문화가 번성하던 이 대도시에서 정작 그의 삶이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신산한 생활을 이어가며 네 번째 결혼을 해야 했지만 꿈꾸던 도시에서 꿋꿋이 삶을 이어갔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쓰네노 같은 여자들이 시골에서 올라오지 않았더라면, 그들이 마루를 훔치고 숯을 팔고 장부를 적고 빨래하고 밥상을 차리지 않았더라면 에도의 경제는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그리고 그들이 극장표와 머리핀, 옷감과 국수를 사지 않았더라면 그저 먼지만 풀풀 날리는 군사기지 중 하나가 됐을 것이라고 말이다. 쓰네노가 세상을 떠난 시점은 페리 함대의 출현으로 일본이 막 근대화의 전환을 앞두고 있던 때였다.
그런데 오늘날의 한국 독자들이 이 책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쓰네노가 그토록 갈망했던 ‘19세기의 에도’라는 시공간이다. 한국인들이 흔히 가지는 일본에 대한 오해가 있다. ‘미개했던 일본이 개항(1854년)과 메이지 유신(1868년)을 계기로 갑작스럽게 성장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선 한양의 인구가 20만 명 정도였던 18세기에 이미 에도는 인구 100만 명을 넘어선 대도시였다. ‘100만 명’은 21세기에도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대도시의 기준이다.
책에서 “1830년대 에도의 대로에는 7000곳에 이르는 노점상이 도시락과 식사를 팔았다”고 묘사했듯, 온갖 물자가 집결됐고 산업과 상업이 발달했으며 거리엔 활기가 넘쳤던 장소가 에도였다. 개항과 메이지 유신으로 인한 본격적인 근대화에 앞서 이미 에도시대(1603~1867)에 ‘자생적(自生的)인 근대화’가 어느 정도 이뤄졌던 나라가 일본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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