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두루미 폐사 이렇게 많은 건 처음”… 치명적 AI 바이러스 비상

순천=이미지 기자 2022. 12. 17.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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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리포트]조류독감 확산 순천만 현장 가보니
AI 폐사체 올가을 이후 190마리… 고병원성 발병도 예년보다 빨라
역대 최악 사태 기록할 우려… 천연기념물 흑두루미 특히 타격
日서 감염된 개체가 병 옮겨와… 변종 바이러스 증가도 원인인듯
고병원성 AI에 걸려 폐사한 멸종위기종 흑두루미. 광주=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국립야생동물질병관리원·국립생물자원관 제공
“마침 저기 날아가네요!”

13일 전남 순천시 순천만습지 인근 경작지에서 기자와 함께 걷던 국립야생동물질병관리원(질병관리원) 정솔 연구사가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몸통이 검고 머리는 하얀 길이 약 1m의 새 20여 마리가 떼 지어 나는 모습이 보였다.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이자 천연기념물 228호인 흑두루미였다. 경작지 곳곳에도 쉬거나 마른 풀 사이로 모이를 찾는 흑두루미 무리가 있었다. 연구원들이 다가가자 흑두루미들은 부리나케 날아올랐다.

본보 이미지 기자(왼쪽)가 전남 순천시 순천만습지 인근에서 국립야생동물질병관리원 연구원과 함께 흑두루미 분변을 채집하고 있다. 광주=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국립야생동물질병관리원·국립생물자원관 제공
기자도 방역복으로 갈아입은 뒤 연구원들과 함께 흑두루미가 떠난 경작지로 들어갔다. 바닥에 사람의 손가락 크기만 한 검고 긴 물체가 많이 보였다. 정 연구사가 “흑두루미 분변”이라고 설명했다. 연구원들과 함께 일회용 집게로 분변 하나를 집어 길고 좁은 플라스틱 통 안에 넣었다. 질병관리원으로 가져가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바이러스가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용도다.

국립야생동물질병관리원 연구원들이 조류 폐사체와 분변에서 추출한 바이러스가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바이러스가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시료에 약품 처리를 하고 있다. 광주=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국립야생동물질병관리원·국립생물자원관 제공
고병원성 AI에 걸린 개체가 배설한 분변 하나에는 새 수만 마리에게 병을 옮길 수 있는 고농도 바이러스가 들어 있다. 이 분변을 만지거나, 분변이 묻은 물건에 접촉하기만 해도 AI 바이러스가 전파된다. 먹을 게 마땅찮은 겨울철 야생조류들은 바닥에서 먹이를 찾다가 분변과 접촉하거나, 분변이 섞인 물을 마시면서 AI에 감염되고 만다.
○ 역대 최악 AI 우려되는 상황

질병관리원은 최근 일주일에 2, 3차례 이와 같은 야생조류 예찰 활동을 나가고 있다. AI에 감염된 야생조류 폐사체를 발견하는 일이 올 들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AI는 인수공통감염병이지만 인간에게서는 거의 발병하지 않고 주로 조류에게서 발병하는 급성 전염병이다. 특히 닭, 칠면조 같은 가금류에서 피해가 심하게 나타난다. 증상에 따라 저병원성과 고병원성으로 나뉘는데, 고병원성 AI의 치사율은 거의 100%에 이른다. 조류가 밀집된 농장에서 발병하면 사실상 살처분 외에는 전염을 막을 방법이 없다. 가금농장들이 AI 바이러스 유입을 극도로 두려워하는 이유다.

많은 전문가들은 올해 야생조류와 농장 가금류 모두 AI 발병 건수가 역대 최악으로 늘어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야생조류와 농장 가금류의 발병 건수가 꼭 비례하는 건 아니지만, 올 들어 야생조류 폐사체 발병 건수가 기록적일 정도로 많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올해 고병원성 AI에 걸려 죽은 채 발견된 야생조류는 10월부터 이달 13일까지 190마리에 달했다. 야생조류 폐사체는 ‘7월∼이듬해 6월’ 단위로 집계하는데 연도별로 2020년(2020년 7월∼2021년 6월)의 357마리가 가장 많았다.

하지만 그때도 12월 말까지 발견된 폐사체는 27마리에 불과했다. 보통 야생조류가 12월, 1월에 많이 들어와 월동한 뒤에 감염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올해는 12월 중순 전에 이미 감염 개체가 200마리에 육박했다. 지금 추세대로라면 최다 폐사체가 발견된 2020년 기록을 깰 가능성이 높다.

올해는 야생조류 중에서도 흑두루미의 감염이 유독 두드러지고 있다. 고병원성 AI 감염이 확인된 조류 폐사체 가운데 흑두루미 폐사체만 144마리에 이른다. 멸종위기 철새인 흑두루미는 전 세계에 1만8000여 마리만 남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 세계 개체 수의 약 1%에 가까운 흑두루미가 단 두 달 사이 국내에서 AI로 폐사한 것이다.

질병관리원 연구원들은 기자가 찾아간 13일에도 순천만습지 등에서 흑두루미 폐사체 9마리를 수거했다. 정 연구사는 “그동안 한두 개체가 폐사한 것을 본 적은 있지만 AI로 이렇게 많은 개체가 한꺼번에 죽은 것은 처음 본다”고 말했다. 지난해에는 고병원성 AI로 폐사한 흑두루미 사체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2020년에도 1마리만 나왔다.

올해는 고병원성 AI 바이러스가 나타난 시기도 예년보다 빠르다. 올가을 들어 야생조류의 고병원성 AI는 10월 10일에 충남 천안시 봉강천에서 처음 발견됐는데, 이는 지난해 첫 발견일보다 2주가량 빠른 것이다.
○ 흑두루미만 144마리 폐사, 왜…

올해 국내에서 AI로 폐사한 것이 확인된 야생조류 가운데 76%가 흑두루미다. 4마리 중 3마리꼴이다. 전문가들은 올해 갑자기 흑두루미 폐사가 늘어난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추정하고 있다.

첫 번째는 한국에 앞서 고병원성 AI가 크게 발병한 일본에서 피난 온 개체들이 병을 옮겼다는 것이다. 올해 일본도 AI가 평년보다 빨리 나타난 데다 발병 개체수도 많아 비상이 걸린 상태다. 흑두루미 1만4000여 마리가 월동하는 세계 최대 월동지인 일본 가고시마현의 경우 8일까지 폐사한 흑두루미가 1164마리다. 한국물새네트워크 이기섭 대표는 “동료들의 죽음을 본 흑두루미들이 위협을 느끼고 일본을 피해 대거 한반도로 날아왔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실제 순천시의 집계에 따르면 지난달 말 순천만에서 확인된 흑두루미는 9841마리였다. 일반적으로 한국 전역에서 월동하는 흑두루미 수(4000여 마리)의 2배가 넘었다. 기자가 순천만 일대를 둘러보았을 때도 하늘과 경작지 곳곳에 무리지어 다니는 수십 마리의 흑두루미 떼를 쉽게 볼 수 있었다. 이 대표에 따르면 11월 초 가고시마현 이즈미시에서 다리에 가락지 표시를 찬 채 날아간 흑두루미 개체가 11월 말 한국 충남 서산시 천수만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두 번째 이유는 올해 AI 바이러스의 전염성이나 치사율이 더 높다는 것이다. 실제 올해 한국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예년보다 AI가 더 빨리, 더 많이 나타났다. 다만 이는 흑두루미만 집중 폐사하는 원인을 설명하기는 다소 미흡하다. 질병관리원 관계자는 “올해 유행하고 있는 H5N1 고병원성 바이러스가 작년 이맘때까지는 1종이었는데 현재는 11종까지 발견됐다”며 “이 중 특히 흑두루미나 특정 종에 대해 치명적인 유전형이 있는지 연구 중”이라고 말했다.
○ 가금농가도 비상… 발병건수 지난해 3배

천연기념물 큰고니 무리가 물 위에 내려앉고 있다. 올해 국내에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에 감염돼 폐사한 큰고니는 13일까지 17마리로 확인됐다. 광주=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국립야생동물질병관리원·국립생물자원관 제공
바이러스의 감염력과 치사율에 대해서는 추가 분석이 필요하겠지만, 올해는 야생조류뿐 아니라 가금농장의 피해도 예사롭지 않다. 14일 기준 전국 가금농장에서 확인된 고병원성 AI 감염은 모두 46건. 지난해 12월 셋째 주까지 감염이 15건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3배 이상으로 늘었다. 지역도 경기, 강원, 충청, 전라, 경상 등으로 사실상 제주를 제외하면 가금농장이 있는 전역에서 감염이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

한국에서는 2003년 한 가금농장에서 AI가 처음 발생했는데 첫해에는 큰 혼란 없이 진정됐다. 이후에도 AI가 발병하지 않거나 조용히 지나간 해가 많다. 하지만 2014년, 2016년에는 농장 발병이 각각 391건과 421건 있었다. 당시 가금류 수천만 마리를 살처분하면서 들어간 비용만 총 7000억 원에 달했다. 특히 2014년 발병했던 AI는 이듬해 11월까지 이어져 무려 517일간 비상사태가 계속됐다.

올해 AI 발병 건수가 급증함에 따라 정부는 각 농가가 방역을 철저히 하도록 하고, AI가 집단 발병한 농가는 출입 통제 조치 등을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조치에도 불구하고 이달 들어서만 농장 17곳에서 고병원성 AI가 확인됐다. 13일에 경남 진주시의 한 육용오리 농가에서 고병원성 AI 발병이 확인되며 ‘마지막 청정지역’이었던 경남 지역마저 뚫렸다. 14일에는 경기 안성시의 한 산란계 닭 농장에서 AI가 확인됐다. 이곳 사육두수는 31만7800마리에 달한다.

정부 자료에 따르면 올해 가금농장에서 AI가 처음 발견된 10월 17일부터 이달 14일까지 약 두 달간 살처분된 가금류 수만 총 730만 마리다. 정부 관계자는 “지금 추세대로라면 역대 최악의 AI 사태가 빚어질 가능성도 작지 않다”고 전했다.

정부는 AI를 예방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 발병 뒤엔 확산을 조기 차단하는 데 주력할 방침이다. 먼저 예방을 위해서 전 농가 일제 검사와 일제 소독 기간을 운영할 계획이다. 또 발병 농가에 대해서는 역학조사를 진행해 농가에 드나든 사람이나 차량 등을 신속히 검사하고 문제가 없어질 때까지 이동 제한 조치를 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여전히 영세하거나 방역 조치가 미비한 농가들이 많아 이들의 시설 개선 비용을 확보하고,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은 농가들을 중심으로 교육도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야생조류도 피해자… 상생하며 해법 찾아야

천연기념물 수리부엉이. 광주=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국립야생동물질병관리원·국립생물자원관 제공
일부에선 아예 야생조류의 유입을 막아야 한다는 극단적인 목소리까지 나온다. 지금 일부 지자체와 문화재청 등은 철새와 천연기념물 조류 등에 대한 월동지 먹이주기 예산을 편성하고 있다. 여기에 야생조류가 쉴 수 있도록 인간의 출입을 막은 쉼터 공간을 만드는 것도 야생조류를 불러들여 AI 집단감염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 대표는 “인간이 들어갈 수 없는 철새 쉼터를 조성하되 여러 곳에 분산 조성해서 새들의 집단 AI 감염을 막아야 한다”며 “쉼터 내에 물과 먹이도 깨끗한 상태로 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허위행 국가철새연구센터장은 “야생조류 역시 AI의 피해자”라며 “철새들은 생태계 먹이사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AI 발병이 상시적으로 반복되는 것이라면 철새와 상생하면서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멸종위기종인 흑두루미는 이번 AI 감염으로 한국과 일본을 합쳐 10%가량의 개체 손실을 보게 됐다. 다른 야생조류들의 피해도 적지 않다. 흔히 ‘백조’로 알려진 천연기념물 201호 큰고니도 올해 10월부터 이달 13일까지 17마리가 폐사체로 발견됐다. 지난해 고병원성 AI로 폐사한 큰고니는 단 1마리에 불과했다.

천연기념물 324호 수리부엉이 폐사체도 벌써 2마리째다. 특히 맹금류인 수리부엉이의 폐사체가 일찍 발견된 것은 심상치 않은 징조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다른 조류 등을 먹고 사는 수리부엉이가 감염됐다는 것은 그만큼 그 먹이군에 AI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밖에 천연기념물인 혹고니나 큰기러기, 민물가마우지, 붉은부리갈매기가 고병원성 AI 감염 폐사체로 확인됐다. 앞서 2020년에도 국제적 멸종위기종인 쇠기러기 237마리와 흰뺨검둥오리 18마리가 고병원성 AI로 폐사했다.

순천=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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