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했더니 미분양 아파트… “속았다” 분란 속출하는 이유
“시청 홈페이지엔 비공개로 뜨고, 모델하우스에 전화해도 알려주질 않네요.”
지난 8월 대구의 한 분양 아파트를 계약한 이모(41)씨는 중도금 대출 신청을 앞두고 미분양 물량을 확인하려고 백방으로 알아보다가 허탕을 쳤다. 이씨는 “요즘 집값이 많이 내려서 계약금을 날리더라도 계약을 취소할까 고민 중”이라며 “(분양 당첨된 아파트의) 계약률이라도 알아야 결단을 내릴 텐데 정보가 없어 답답하다”고 말했다.
최근 부동산 시장 침체로 미분양 주택이 급증한 상황에서 ‘깜깜이 통계’로 소비자의 알 권리가 침해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6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10월 말 기준 전국 미분양 아파트는 4만7217가구로 1년 전(1만4075가구)보다 3배 이상 늘었다. 그러나 예비 입주자나 미분양 아파트 매수에 관심 있는 수요자들은 개별 아파트 단지에 미분양이 얼마나 많은지 정확히 알 수 없다. 건설사 요청이 있으면, 지자체가 개별 단지 미분양 정보를 ‘비공개’ 처리하기 때문이다.
전국에서 미분양이 가장 많은 대구는 10월 말 기준 미분양 아파트가 56개 단지, 1만539가구에 달한다. 그러나 개별 미분양 물량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은 27%(15곳)에 불과하다. 대구에 이어 둘째로 미분양이 많은 경북에서도 52개 미분양 단지 중 28곳이 미분양 물량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건설사들이 미분양 통계를 공개하지 않는 것은 정부가 분양 아파트 계약 현황을 ‘영업 비밀’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은 ‘법인 등의 경영상·영업상 비밀로, 공개될 경우 정당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는 공개하지 않을 수 있다’고 규정한다. 한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저조한 계약 성적이 외부에 알려지면 ‘낙인 효과’ 때문에 금방 완판(完販)될 단지도 장기 미분양으로 이어질 수 있고, 다른 사업장 분양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어 비공개를 요청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미분양 정보 비공개로 피해를 보는 소비자가 생긴다는 점이다. 높은 청약 경쟁률을 믿고 아파트를 계약했는데 실제는 미분양 단지가 돼 낭패를 보거나, 계약률을 부풀린 허위 광고에 속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지난달 대구 수성구의 한 아파트 모델하우스에선 “분양 대행사에 속았다”며 계약 취소를 요구하던 계약자가 의자로 아파트 모형을 파손하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정부가 발표하는 미분양 통계 자체도 정확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미분양 신고를 건설사 자율에 맡기고 있기 때문이다. 각 지자체는 건설사가 제출한 미분양 현황을 취합해 전달하고, 국토부는 별다른 검증 절차 없이 이를 그대로 발표한다. 건설사가 미분양 현황을 엉터리로 보고해도 의무 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과태료 등의 행정 처분을 내릴 수 없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주택 시장에서 실제 미분양 물량은 정부 통계보다 훨씬 많다고 본다. 주택 사업자가 임의로 분양할 수 있는 30가구 미만 아파트나 소규모 오피스텔은 미분양 통계에 집계하지 않기 때문이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올바른 주택 공급 정책을 수립하려면 미분양 통계도 시장 상황을 정확히 반영해야 한다”며 “주택 소비자의 합리적인 의사 결정을 위해 단지별 미분양 물량도 의무적으로 공개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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