戰線에 보낸 아들·남편… “문자 없는 날엔 잠을 못자요”
지난 15일(현지 시각)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상징 중 하나인 성 볼로디미르 대성당. 평일 낮 시간인데도 대성당 안에는 기도를 올리는 시민들 발걸음이 계속 이어졌다. 어린 자녀의 손을 붙들고 온 어머니, 백발이 성성한 노년 부부, 형제자매로 보이는 중·장년 등 90여 명이 성당 곳곳에 마련된 작은 제단에 촛불을 밝히며 가지런히 두 손을 모았다.
“주님, 볼로디미르 성인, 전선의 남편에게 용기를 주시고, 추위와 암흑이 그의 영혼을 앗아가지 않도록, 무엇보다 우리 품에 무사히 돌아오도록 인도하소서.” 뜨개질로 만든 핑크색 모자를 쓴 아들과 함께 온 여성은 십자가를 올려다 보며 나직하게 기도를 올렸다.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성호를 긋는 어머니를 따라 아이도 성호를 그었다.
러시아의 무력 침공 이후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전장으로 뛰어든 우크라이나 남성은 40만명으로 추정된다. 이들을 포함해 우크라이나군 전체 병력은 75만명인데, 서방 정보기관들은 지난 10개월 동안 약 2만명이 전사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정확한 사상자 통계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날 성당 앞에서 전단을 나눠주던 한 시민은 “키이우에서만 수만 명이 전선으로 나갔고, 매일같이 전사 통지서가 날아들고 있다”고 말했다.
보리슬라브(61)씨 부부는 삼남매 중 두 아들을 모두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지고 있는 남부 자포리자 최전선에 보냈다. 부부는 제단에 초 하나씩을 올리고 기도를 했다. 부부는 “TV에 전황 소식이 나올 때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며 “(아들들로부터) 전화나 문자 메시지가 오지 않는 날이면 혹시 무슨 일이 있지 않나 싶어 잠자리에 들지 못한다”고 했다.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한 남매는 어머니와 함께 지난 6월 동부 전선 세베로도네츠크에서 러시아군 포격에 전사한 아버지를 추모하려 이곳을 찾았다고 했다. 오빠는 촛불에 불을 붙이며 연신 눈물을 훔치는 여동생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어머니 다리냐(46)씨는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러시아에서도 수많은 가족들이 남편 혹은 아버지, 자녀를 잃었다”며 “같은 하나님, 같은 성인께 기도를 올리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하루 빨리 평화가 찾아오길 바랄 뿐”이라고 했다.
우크라이나 정교회는 본래 러시아 정교회와 한 몸이었다. 하지만 정교회의 수장인 키릴 모스크바 대주교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노골적으로 편들고, 이번 전쟁을 ‘성전(聖戰)’이라고 옹호하자 지난 4월 ‘결별’을 선언했다. 성당 안의 시민들을 위로하던 한 성직자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어머니들의 피눈물이 하루 빨리 멈출 수 있도록 한국인들도 함께 힘을 모아 기도해 달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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