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도마뱀과 바보들의 나라

기자 2022. 12. 1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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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냐, 적당히 중간만 해라.” 살면서 자주 듣는 얘기다. 겉으로는 책임감과 성실함을 입에 담지만 앞뒤가 달라야 한다. 너무 못하지도 잘하지도 않아야, 가늘고 길게 살아남을 수 있다. 성실해서 돋보이면 결국 모난 돌이 정 맞기 때문이다. 모난 돌은 그래서 ‘바보’라 불린다. 자기 일에 책임을 다하고 타인을 위해 애쓰는 건 어리석은 짓이고 적당히 중간만 하는 게 현명한 법이다.

최성용 청년연구자

성실하면 손해 보는 세상이니까, 세금 한 푼이라도 덜 내는 게 술자리 무용담이 된다. 군대에서 고참들은 불침번 설 때 최선을 다해 임무를 내팽개치고 잠을 잔다. 그런 세상이니까, 진도VTS 관제사들은 근무 중에 자거나 자리를 비워 세월호 사고 사실을 늦게 인지했고, 서울경찰청 112상황실 상황관리관도 자리를 비워 이태원 참사 대응을 지연시켰다.

성실한 사람들이 멸종위기에 놓이면 도마뱀이 번성한다. 도마뱀들은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보다 적당히 돋보이지 않게 처신하면서 주위 환경에 자신을 맞추고 눈치 보며 줄을 선다. 그야말로 최적화된 생존방식이다. 성실함과 책임감은 생존에 필요한 덕목이 아니다. 도마뱀 꼬리는 다시 자라므로 언제든 버려질 수 있다. 라인을 잘 타 버림받지 않으면서, 자를 꼬리가 있는 도마뱀으로 출세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다르게 말하면, 배가 침몰할 때 책임을 내던지고 꼬리를 자르며 가장 먼저 배를 탈출할 권한을 가진 선장이 되어야 한다.

세월호 참사 당시 검찰과 경찰은 재빨리 수사에 돌입했고 꼬리들만 검거한 채 권력을 지닌 ‘윗선’을 내버려 두었다. 검경도 도마뱀이라 대대적인 꼬리 자르기를 연출하며 윗선에 어필했던 셈이다. 정부 인사와 관료들 역시 윗선의 의지로 자리를 보전한 도마뱀이었다. 이번 이태원 참사에서도 도마뱀들은 윗선으로 책임이 추궁되는 걸 막고 적당히 꼬리만 자르려 한다. 그들이 원하는 대로 된다면, 그것은 도마뱀의 삶을 사는 게 현명하다는, 도마뱀을 더욱 번성하게 만드는 사회적 메시지가 될 것이다.

정부가 경계한 것은 ‘배후’가 있다고 의심되는 인파였다. 10월29일 경찰 기동대가 각 집회현장으로 투입됐지만 이태원에는 마약 수사 인력만 배치됐다. ‘주최’가 없는 축제였기 때문이다. 주최의 다른 말은 ‘배후’다. 정권의 입장에서 ‘배후’가 동원한 집회는 위험한 인파였지만, 이태원 핼러윈은 그저 모였다 흩어질 ‘현상’이었다. 주민 동원으로 이뤄지는 관변 축제의 나라에서 민간의 시민들이 주도하는 축제는 드물다. 그 드문 사례인 이태원 핼러윈은 단지 마약과 관련해 ‘치안’ 유지의 대상일 뿐 정권의 ‘안전’과는 무관했다. 배후 없이 동원되지 않은 시민들은 안전은커녕 그 어떤 관심의 대상도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10월29일 밤, 도마뱀의 나라에 사는 ‘바보들’이 있었다. 말단 경찰관은 한 명이라도 더 살리고자 절규하며 인파를 통제하려 했고, 시민들은 생판 모르는 타인을 위해 절박하게 심폐소생술을 했다. 무섭고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어떤 계산 없이 타인을 위해 달려나갔다. 국가가 자리를 비운 칠흑 같은 어둠 속에 그들이 작은 별처럼 빛을 비추고 있었다. 앞으로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도 그 별빛이 알려주고 있다.

최성용 청년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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