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자녀의 인생을 설계하는 방법
고등학교에 강의하러 갔다가 학부모에게 들은 질문이다. 그는 아이에게 문과를 가라고 해야 할지 이과를 가라고 해야 할지, 어떻게 그의 삶을 설계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과에 가야 입시에도 유리하고 취업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고민된다는 것이었다. 그의 옆에는 그의 딸이 함께 와 있었다. 사실 나는 입시나 취업 설명회가 아니라 인문학 강의로 그들과 만났다. 내가 하는 말이 그들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게 분명했다. 그러나 나도 문·이과 선택으로 고민하던 시절이 있었다.
나의 아버지는 수학을 잘하는 사람이었고 나는 국어를 잘하는 사람이었다. 나의 아버지는 회사에서 돌아오면 자신의 방에서 책을 읽거나 수학 문제를 풀거나 했다. 고등학생이던 나는 나의 방에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했고 그보다 조금 더 많은 시간을 PC통신(천리안)을 하는 데 보냈다. 나는 그때 게시판에 글을 연재하고 있었다. 중·고등학생들은 대개 판타지소설 게시판에 가 있었으나 나는 나의 고등학생 생활을 각색해서 올리는 게 즐거워서 유머게시판에 있었다. 그러던 중 문과와 이과 진학을 선택해야 할 시기가 찾아왔다. 이과로 가야 먹고살 수 있다는 말들은 지금이 아니더라도 20년 전인 2000년대 초반에도 있었다. 고민하던 나는 아버지에게 물었다. 어디로 가면 좋을까요, 하고.
아버지는 살면서 나에게 화를 낸 일이 거의 없다. 세는 데 굳이 두 손이 필요하지 않을 듯하다. 그러나 그런 그가 두어 번, 머리가 큰 나에게 적당히 화를 낸 일이 있는데, 첫 기억이 그때였다. 그는 나에게 되물었다. “그건 아빠에게 물을 일이 아니야. 네가 좋아하는 걸 하면 되는 거지. 너의 삶은 네가 사는 거잖아. 너는 문과가 좋으니 이과가 좋으니.” 내가 문과가 좋다고 답하자 그의 답은 짧고 선명했다. “그럼, 됐네.” 그래, 그러면 된 것이다. 나는 나의 뜻에 따라 문과로 진학했다. 그 후 천리안에 연재하던 글이 출간 제안을 받아서 고2 가을에 에세이집을 냈고 1년 뒤엔 대학의 국문과 전공에 입학했다.
사실 대학 입시 원서를 내던 때, 아버지에게 한 번 더 물었다. “아버지, 나 대학 어디로 갈지 고민 중인데요.” 그때 아버지는 예의 그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그건 아빠에게 물을 일이….” 나는 그에게 가고 싶은 전공에 맞추어 알아서 대학을 선택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정말 그렇게 했다. 그가 내심 자신보다 좋은 대학에 진학하길 바랐던 것 같기도 했으나 그런 티를 두 번 내는 일은 없었다.
그를 이해할 수 없는 시간은 길었다. 왜 부모가 자식의 인생에 관심이 없는 것인가, 왜 학군이나 입시라든가 하는 것엔 말 한마디 없었던 것인가. 그러나 이제는 그가 옳았다는 것을 안다. 사람은 자기 자신을 선택의 기준으로 삼는다면 그 일이 잘되든 잘되지 않든 괜찮다. 그 과정에서 자기 자신이 남는다. 나는 이런 사람이구나, 이런 태도를 갖고 살아가야겠구나, 하는. 그러나 타인을 선택의 기준으로 삼는다면 그 일이 잘되더라도 그 과정과 결과에서 남는 건 타인뿐이다. 혹시 잘되지 않는다면 그에 대한 원망 말고 무엇이 남을 것인가.
나도 나의 아이의 얼굴을 본다. 아홉 살인 그와 강릉에서 살아가는 일은 기쁘다. 바다에서 살고 싶다고 하는 그의 말에 작년 즈음에 이주했다. 그는 받아쓰기에서 오늘도 꼴찌를 했다며 시무룩하다. 그가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괜찮다고 말하면서 그와 함께 바다에 간다. 나는 그가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설계해 나갈 수 있으면 한다. 스스로 만들어 낸 세계라는 것은 잘됨과 안 됨을 감히 재단할 수 없고 한 사람을 계속해서 성장케 하는 법이다. 머리가 큰 그가 언젠가 나에게, 나는 이게 좋아서 이걸 선택했어, 하고 스스럼없이 말할 수 있기를, 나는 그에게 잘했어 대흔아, 아빠가 응원할게, 하고 그를 안아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길 바랄 뿐이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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