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 내는 민간 우주시대] 한국판 스페이스X 시험, 국내 첫 민간 우주발사체 쏜다…“기술 충분, 산업 생태계 조성 시급”

2022. 12. 17.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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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
발사대 설치에 앞서 최종 점검 중인 시험발사체 ‘한빛-TLV’. 16.3m 높이에 1m 직경, 8.4t 중량의 1단 로켓이다. [사진 이노스페이스]
오는 19일 오후 6시(한국시간), 민간 기업들이 우주개척을 주도하는 ‘한국판 스페이스X’ 시대의 막이 오른다. 이날 국내 우주발사체 제조 스타트업 이노스페이스는 독자 개발한 엔진 검증용 시험발사체 ‘한빛-TLV’의 첫 준궤도(지구 대기권과 우주의 경계로 여겨지는 상공 100㎞ 궤도) 시험발사에 나선다. 이노스페이스는 시험발사를 통해 현재 개발 중인 국내 최초 민간 우주발사체이자 2단형 소형위성 발사체인 ‘한빛-나노’에 적용될 15t급 ‘하이브리드 로켓’(고체 연료와 액체 산화제 사용) 엔진의 정상 작동 여부와 추력 등의 성능을 검증한다는 구상이다.

한국엔 절차·법규 없어 브라질서 발사

발사 장소는 브라질 알칸타라우주센터. 이노스페이스는 준비 상황과 기상 여건 등을 고려해 브라질 공군과 최종 협의를 거쳐 발사 날짜와 시간을 확정했다. 순수 국산 기술로 만든 로켓인데 발사는 왜 한국이 아닌 브라질에서 할까. “2019년부터 시험발사장을 찾아다녔는데 국내엔 민간이 로켓을 쏠 수 있는 발사장이 없었다. 관련 절차나 법규도 없었다. 이 때문에 브라질 정부에 무작정 연락을 했고, 브라질 정부의 긍정적 검토 끝에 연말 시험발사가 승인됐다.”(김수종 이노스페이스 대표, 6월 중앙SUNDAY와의 인터뷰)

이번 시험발사에 성공하면 이노스페이스는 글로벌 고객사 확보에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이 회사는 한빛-나노를 통해 2024년 회당 발사 비용 20억원을 받고 50㎏ 위성을 500㎞ 상공까지 쏘아 올려주는 위성 발사 사업을 시작할 계획이다. 지금껏 국가(정부)를 중심으로 진행됐던 한국의 우주산업 역사가 최근 이처럼 민간 주도로 전환되고 있다. 한국판 스페이스X 시대의 서막이라 칭할 만하다. 스페이스X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설립한 미국의 우주탐사 기업이다. 이 회사는 2020년 세계 최초로 민간 유인 우주탐사 시대를 열었고 궤도 발사체 100회 이상 재사용에도 성공하는 등 21세기 글로벌 우주산업 기조인 민간 중심 우주개발의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의 비영리 우주기구 스페이스파운데이션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우주산업의 지분 비율은 각국 정부가 21%에 불과한 반면, 민간이 79%에 달한다.

그래픽=이정권·남미가 gaga@joongang.co.kr
그러나 한국은 그동안 관(官) 주도의 20세기형 우주산업 패러다임에 갇혀 이런 세계적 흐름에 동참하지 못했다. 우주산업에서 민간 주도로 나아가는 것이 왜 중요할까. 이창진 건국대 항공우주정보시스템공학과 교수는 “한국은 정부가 지난 30여 년 동안 우주개발에 공들여 ‘나로호’ ‘누리호’ ‘다누리호’ 발사 성공 등의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다”면서도 “이런 하드웨어 기술을 발판삼아 시도할 수 있는 경제적 수요 창출 면에선 아직까지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선진국의 기술 발전 속도를 더 따라가면서 궁극적으로 수익 실현이라는 우주산업의 선진화 구조를 만들려면 민간의 과감한 혁신이 필수라는 얘기다.

실제 국내 우주산업 매출은 2017년 4조1457억원에서 2020년 3조4293억원으로 3년 사이 외려 17%가량 줄어들었다. 각국이 과거 냉전시대를 거치면서 국가적 자존심 또는 안보의 영역이라 여겼던 우주산업을 민간 중심으로 육성 중인 것도 상업화의 중요성 때문이다. 항공·우주산업의 부가가치율(부가가치의 출하액에 대한 비율)은 48%로 전체 산업 가운데 ‘21세기 산업의 쌀’ 반도체(64%)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그만큼 고부가가치산업이라 민간의 혁신을 연료삼아 새 먹거리로 키우려는 것이다. 이렇게 민간이 주도한 세계 우주산업 규모는 2017년 3835억 달러(약 497조원)에서 2020년 4470억 달러(약 580조원)로 3년 사이 14% 성장했다.

엔진·개발 등 국내 민간 기술력 세계 수준

사실 국내 민간의 기술력은 세계 시장에 도전할 수 있을 정도로 올라왔다. 1999년 국내 최초 액체 엔진 로켓을 개발한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올해 발사에 성공한 누리호에 들어갈 엔진 6기를 개발했다. 1단 75t급 4기, 2단 75t급 1기, 3단 7t급 1기 등 총 300t급 추력으로 1.5t급 위성을 상공 600~800㎞까지 쏘아 올리는 선진 핵심 기술력을 30여 년 만에 갖췄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내년부터 2031년까지 누리호 후속 차세대 발사체 ‘KSLV-Ⅲ’와, 여기 들어가는 100t급 엔진 개발에 나선다. 이 회사의 신현우 대표는 “정부의 2030년 무인 달 탐사 목표에 맞춰 누리호 대비 수송 역량을 3배 키운 미래 선도 기술 확보에 매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 규모 스타트업의 기술력도 무르익었다. 국내 최초 우주 관련 스타트업 쎄트렉아이는 최근 소형 위성에 필요한 고효율 전기 추진 시스템을 국방과학연구소 부설 방위산업기술지원센터와 협업해 개발했다. 이 기술은 탑재한 연료를 전기 에너지로 이온화하고 빠른 속도로 배출해 추진력을 얻는 원리로 작동한다. 기존의 화학식 추진 시스템에 비해 탑재 연료량을 5분의 1 수준으로 절감할 수 있고, 전력 변환 효율을 높여 소모하는 전력량을 줄일 수 있어 위성 개발에서 선진 기술로 분류된다. 위성 솔루션 스타트업 나라스페이스테크놀로지는 저해상도 위성의 영상을 고해상도로 변환시킬 수 있는 초해상화 솔루션을 개발, 올해 유럽 시장에 출시했다.

이 회사의 초해상화 솔루션은 인공지능(AI) 딥러닝 기반의 신경망을 이용해 위성 영상의 해상도와 품질을 3배 넘게 높인다. 10m 길이 이상의 물체만 식별할 수 있는 위성 영상으로도 3m가량의 물체를 식별할 수 있다. 또 다른 스타트업 컨텍은 내년 하반기 스페이스X의 ‘트랜스포터-9 미션’ 로켓에 실려 발사되는 위성 ‘진주 샛’(Jinju-Sat) 개발에 참여했다. 국내 지자체 최초로 경남 진주시가 지자체 차원에서 발사하는 위성이다. 궤도 안착 후에는 지구 촬영 임무에 나설 예정이다. 이 외에 카이스트와 함께 자체 개발한 발사체의 시험발사를 올해 성공적으로 마친 스타트업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 위성이 촬영한 영상 데이터를 AI로 분석하는 스타트업 에스아이에이도 주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다.

국내 우주 관련 기업 389곳, 성과는 미미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문제는 규모나 인프라 면에서 선진국에 한참 뒤처지는 민간 우주산업 생태계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지난해 우주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의 유의미한 관련 기업 숫자는 389곳이다. 그런데 이들 중 우주 관련 연구소를 보유한 기업은 53.2%뿐이다. 이러다보니 매출 발생 등 상업적 성과가 크지 않다(국내 연간 우주산업 수출액 6865억원). 만성적인 인력 부족도 걸림돌이다. 389개 기업 하나당 평균 인력 숫자는 16.2명에 불과한데 이들 기업의 향후 5년간 신규 수요 인력은 총 1360명에 달한다. 누리호와 다누리호의 발사 성공으로 굳힌 세계 7대 우주강국(기술력 기준) 지위와 기대치에 크게 못 미치는 숫자들이다.

윤석열 정부는 이런 문제에 대응하는 민간 중심의 ‘뉴 스페이스’ 시대를 열겠다며 우선 컨트롤타워인 우주항공청을 내년 설립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장영근 한국항공대 항공우주및기계공학부 교수는 “우주항공청은 단일 부처 산하가 아닌 대통령 직속 기구로 설립해 사업 추진력을 강화하고,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등 기존 전문 조직과의 역할 중복 우려를 떨치는 데 힘써야 한다”고 덧붙였다. 여기에 기업들이 더 적극 투자, 참여할 수 있는 우주산업 생태계를 조성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안형준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박사는 “뉴 스페이스 시대엔 (의사결정에서) 기민한 대응이 필수적이라 스타트업의 역할이 중요한데 한국은 우주 관련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가 부족하고 관련 스타트업 숫자도 태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우주 관련 스타트업 투자액은 약 60조원에 달하지만 한국은 1000억원 수준에 불과하다. 투자받은 스타트업도 7곳뿐이다. 이 외에도 기술력을 잘 축적하고 있는 곳이 적잖은 만큼, 정부가 대기업은 물론 스타트업으로까지 투자와 참여의 선순환이 이뤄지는 생태계를 조성해주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얘기다. 익명을 원한 벤처캐피탈(VC) 대표는 “우주산업은 투자한 성과가 단기간 내에 나오기 힘든 분야라 VC 입장에선 투자 메리트가 떨어진다”며 “정부가 대안으로 전용 모태펀드 규모를 계속 키운다면 장기적으로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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