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로제타석 발견과 성체자 해독 분투기

박성준 2022. 12. 17.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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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의미와 문자·암호 해독 차이
옛 언어를 해독하려 할 때 문제점
생소한 언어 옮겨 적는 어려움 등
언어·인문학적 화두 차례로 등장

신의 기록/에드워드 돌닉/이재황 옮김/책과함께/2만5000원

고대 이집트 역사는 경이롭다. 가장 유명하고 오래 지속된 문화다. 절대자 파라오가 통치한 기간은 대략 서기전 3100년부터 클레오파트라가 독사가 든 항아리에 스스로 손을 집어넣는 매혹적 방식으로 죽음을 택한 서기전 30년까지 3000년이 넘는다.

이 신비의 문명을 지금 우리 현대인과 연결한 다리는 ‘로제타석’. 아무도 읽을 줄 모르던 고대 이집트 그림문자 ‘성체자(聖體字·hieroglyphs)’를 해독할 실마리를 우리 앞에 풀어놓았다. 발견자는 프랑스 나폴레옹 군대 장교 피에르 프랑수아 부샤르. 1799년 7월 15일 베헤이라 로제타에서 발견했다. 높이 114.4㎝, 너비 72.3㎝, 무게 760㎏인 이 돌은 지금도 대영박물관에서 찬란했던 고대 문명의 위용을 보여준다.
가장 큰 것은 하늘로 20m나 치솟아 있는 카르나크 신전의 성체자가 빼곡히 새겨진 기둥들. 어른 여섯 명이 손을 맞잡아도 둘러싸기 힘든 이 기둥은 모두 134개다. 책과함께 제공
“새로운 왕이시며 왕관의 주인이신”으로 시작하는 프톨레마이오스왕에 대한 찬사로 시작하는 이 비석은 고대 이집트어 해독을 통한 고대 문명 이해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신간 ‘신의 기록’은 어떻게 로제타석을 발견하게 되었는지, 여러 해독 지망자들이 로제타석 읽기를 왜 포기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토머스 영과 장 프랑수아 샹폴리옹, 두 주인공이 어떤 우여곡절을 겪으며 성체자를 해독해나갔는지를 친절하게 보여준다. 미국 보스턴 글로브에서 과학수석기자로 활동하며 대중을 위한 글쓰기에 익숙한 작가가 쌓아놓은 공력은 마치 영화를 보는 것처럼 편안하게 고대 문명 신비를 밝히는 여정을 따라가게 한다.
이미 잘 알려진 로제타석 해독 과정을 이 책은 새로운 시각에서 되짚어본다. 수천 년 동안 사용되지 않은 문자로 기록된 글이 발견된다면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읽을 수 있을까. 그것을 읽기 위해 어떤 어려움을 맞닥뜨리며, 이를 어떻게 헤쳐나갈 수 있을까. 지은이는 로제타석의 성체자를 해독해가는 과정과 난관마다, 관련된 풍부한 사례와 예시를 곁들여 그 의미를 풀어낸다. 기록이 갖는 의미와 문자 해독과 암호 해독의 차이, 옛 언어를 해독하려 할 때 맞닥뜨리는 문제들, 생소한 언어를 옮겨 적는 어려움, 글쓰기의 기원, 소리와 의미를 표현하는 방식으로서의 언어에 관한 고찰 등 여러 역사적·언어적·인문학적 화두가 차례로 등장한다.
에드워드 돌닉/이재황 옮김/책과함께/2만5000원
사실 이집트 성체자를 읽기 위한 첫 단추는 ‘신비한 의미를 품은 고귀한 문자’라는 단단한 선입견을 깨부수는 것이었다. 형상화된 이집트 성체자 특유의 그림 형태는 이 성체자가 무언가 신비롭고 고차원적인 세상의 진리를 숨기고 있는 추상적인 의미 덩어리라는 억측을 낳았다.

“로제타석의 비밀이 풀리기 이전의 그 오랜 시간 동안 이 문자의 수수께끼는 모든 이집트 방문자의 면전에 고개를 내밀었다. 이집트 유적과 무덤은 매혹적이고 화가 치밀도록 정교한 그림문자로 뒤덮여 있었지만 그 해독 방법은 아무도 몰랐다… 학자들은 성체자가 일상적인 내용이나 목록에 사용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했다. 모든 성체자 기록은 우주와 시간의 본질에 관한 명상이었다는 굳건한 믿음을 가진 것이다.”

이러한 믿음은 심지어 뉴턴 이후 ‘과학의 시대’까지도 이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로제타석이 발견되었고, 그 믿음은 여전히 굳건했다. 로제타석 해독의 첫 실마리를 발견한 두 천재 역시 몇백 년 동안 존속된 ‘신비로운 진실의 문자’라는 선입견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하지만 이들은 끊임없는 연구 끝에 성체자의 낱글자 가운데 어떤 것은 소리를 표현하는 것이었지만, 또 어떤 것은 의미만 표현하는 것이란 사실을 발견한다.

유럽인들이 이러한 성체자의 독특함, 즉 의미와 소리를 섞어 나타내는 언어 체계의 비밀을 파헤치는 데에는 중국 한자가 힌트를 제공한다. 로제타석 해석의 두 주인공은 한자 연구자들이 발표하는 독법을 읽다가 문득 ‘유레카’의 순간을 맞았다. “엄청난 중요성을 지닌 전환이 일어났다… 샹폴리옹은 자신은 물론 다른 누구도 생각지 않았던 것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이집트인들은 먼 나라에서 들어온 이름들뿐 아니라 평범한 이집트 단어들에도 ‘소리 문자’를 사용했던 것이 아닐까.”

고대 언어를 해독하는 과업을 달성한 순간은 더없이 생생하게 전달된다. 결정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린 샹폴리옹은 제왕의 탄생을 기념하는 로제타석의 목적이 담긴 부분을 해독해낸 후 친형을 찾아가 “내가 해냈어”라고 외친 후 기절한다. 이후 샹폴리옹은 로제타석에 적힌 성체어를 읽어내는 것을 시작으로 수천년 동안 닫혀있던 고대 이집트문명의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박성준 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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