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IT 대기업 ‘요란한 해고’ 행진, 한국도 남의 일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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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어드는 양질의 일자리
‘트위터, 메타, 아마존, HP…’ 최근 대규모 해고 소식을 내놓은 미국 기술 기업들이다. 이들 기업을 포함한 208개 기술 기업에선 지난 11월에만 5만1300명을 해고했다. 대규모 해고 소식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에서는 최근 400명 이상을, 모건스탠리도 1600명을 감축할 계획이란 소식이 현지 언론을 통해 흘러나왔다. 이 외에도 펩시와 포드, 월마트, 테슬라 등이 인력 감축 계획을 밝히거나 진행 중이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기업들의 해고 소식은 고용 시장의 우려를 키우고 있다. 더구나 코로나19 확산을 거치면서 테크 기업과 대기업 등을 중심으로 비대면 근무가 일상화되면서 위력은 배가됐다. 이에 미국 CNBC에서는 “‘대퇴직 시대’(인력난 속에 근로자들이 쉽게 이직하던 시기)를 지나 ‘요란한 해고(Loud Layoff)’의 시대에 들어섰다”고 평가했다.
문제는 해고가 진행되고 있는 기업들이 구직자가 선망하는 양질의 일자리란 점이다. 미국 취업 플랫폼 집리크루터에 따르면 최근 구직자의 20%가 일하고 싶은 분야로 기술 기업을 꼽았다. 반면 실제 기술 기업에서 일하는 구직자는 4%에 그친다. 줄리아 폴락 집리크루터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기술 산업은 과거 자동차 산업처럼 미국인들의 경제적 열망이 집약된 분야”라며 “많은 사람들이 기술 기업에 진출할 방법을 찾고 있지만, 채용 기회가 줄고 구직자들이 일자리 감소를 걱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고용 지표에는 드러나지 않는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들고, 고용 시장 전반이 위축될 수 있다는 얘기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단단한 줄만 알았던 고용 시장이 심상찮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긍정적 신호에 가려졌던 부정적 신호가 부각되고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지난 8일 미국 노동부가 발표한 연속 실업수당 청구건수는 167만1000건으로 코로나19 확산 직전 수준에 근접했다. 김일혁 KB증권 자산배분전략부 팀장은 “일자리를 잃고 난 후에 다음 일자리를 찾기 전까지 점점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의미로, 노동 수요가 감소하고 있다는 증거”라며 “증가 속도가 너무 빠르다”라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에서도 좋지 않은 시그널이 나오고 있다. 14일 통계청에 따르면 11월 취업자 수는 전년 동기 대비 62만6000명 늘었지만, 양질의 일자리는 오히려 줄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예컨대 저임금 일자리가 많은 숙박 및 음식점업(23만1000명)이 증가세를 주도한 반면, 구직자들이 선망하는 금융 및 보험업에선 2만7000명이 줄었다. 고연봉 직장의 대명사로 불리던 IT 기업들이 포진한 정보통신업에서도 취업자는 5만2000명이 늘어나는 데 그치며 연초(10만6000명) 대비 반토막 났다.
실제로 ‘네카라쿠배’(네이버·카카오·라인·쿠팡·배달의민족)로 불리며 청년 구직자 사이에서 선망의 대상으로 떠올랐던 IT 대기업들은 최근 들어 고용 계획은 전면 수정하거나 축소한 상황이다. 지난해 1100명을 채용했던 네이버는 지난 3분기 인건비를 전 분기 수준으로 유지했고, 카카오도 인건비 증가가 1%에 그쳤다. 배재현 카카오 부사장은 지난달 진행된 콘퍼런스콜에서 “채용 속도를 조절 중이며 채용 증가율이 둔화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고용 둔화는 국내 기업 전반으로 확산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내년 취업자 수가 8만명 증가하는 데 그칠 것으로 예상했고 한국은행도 내년 취업자 증가폭을 9만명으로 예상하면서 올해(각각 79만명, 82만명)보다 대폭 낮춰 잡은 바 있다. 실제 기업들도 채용을 줄이겠다는 입장이다. 채용 사이트 사람인이 390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의 36.7%는 내년 채용 규모를 축소하거나 중단하겠다고 답했다.
이 같은 응답은 특히 대기업(47.8%)이 중견기업(40.6%)·중소기업(32.8%)보다 많았다. 국내에서도 양질의 일자리가 더 빠르게 취업문을 좁히고 있는 셈이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경제학)는 “수출이 어렵고 경제 전반이 부진한 상황”이라며 “지금으로선 개선될 부분이 보이지 않아 이대로라면 대기업이라 하더라도 고용이 쉽지 않을 것”고 전망했다.
황건강 기자 hwang.kun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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