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청소년과 심정지 직전, 즉각 재정 투입해야 소생

오유진 2022. 12. 17.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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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영호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장
나영호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장은 “정부가 인건비를 지원해 전담 전문의를 채용하도록 하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주장했다. [사진 경희의료원]
초저출산국가. 아이가 없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어렵게 낳은 아이가 아파도 치료하지 못하는 상황이 닥쳤다는 점이다. 수년간 누적된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급감 문제를 해결하려 ‘낮엔 외래, 밤엔 당직’으로 이중생활을 하던 교수들마저 백기를 들었다. 이대목동병원, 강남세브란스병원 등 수도권 대형 병원들이 순차적으로 소아 응급실 진료를 포기했고, ‘빅5’ 병원으로 꼽히는 서울성모병원도 소아 응급 진료를 내려놓기로 결정했다. 의사들 사이에서는 “이젠 아이가 안 아프게 조심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14일 만난 나영호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장(경희대 의과대학 교수)은 “1년 뒤, 2년 뒤가 아닌 당장 내일 소아청소년과 의료 체계가 무너질 수 있다”며 “국가 지위에 걸맞은 의료 인프라를 유지하기 위해선 정부가 재정투입에 나서야 한다”라고 경고했다.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사건도 영향

Q : 현장 상황은 얼마나 심각한가.
A : “심정지 직전 상태에 다다랐다고 보면 된다. 지난 9월 학회 조사에 따르면 전국 96개 수련 병원 중 75%에서 전공의 수가 부족해 전문의 혹은 교수가 당직을 서고 있다. 병원에 전문의로 들어온 사람들이 제일 하기 싫어하는 게 당직인데, 당직을 서야 하는 상황이니 사람들이 다 떠난다. 인천길병원과 강남세브란스병원이 병동을 닫고, 응급실을 닫게 된 이유다. 문제는 현재 4년 차인 전공의들이 수련을 마치는 3월이 오면 더욱 심각해진다. 소아청소년과 전공의가 178명 정도인데, 내년 3월에는 100명대로 떨어진다. 총 정원의 50% 수준으로 병원을 유지해야 하니 의료시스템이 제대로 가동될 리가 없다.”

Q : 전공의가 모자라면 어떤 일이 벌어지나.
A : “교수들 업무 부담이 커진다. 기본적인 외래 진료에다가 승진에 필요한 논문 작성, 학생들과 실습생 강의까지 해야 하는 교수들이 당직까지 서고 있으니 참다못해 두 손 두 발 들기 시작했다. 하반기부터 시작된 소아응급실 폐쇄는 병실 축소, 소아 중환자실 축소로 이어지고 있다. 이미 경기도 북부지역에는 소아응급실이 없고, 서울 인근에서도 당직 시스템이 무너지면 도중에 소아응급실을 닫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픽=김이랑 kim.yirang@joins.com

Q : 소아청소년과 의료체계 무너진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A : “단적으로 말하자면, 대한민국 인구 5분의 1에 달하는 사람들의 안전망이 완전히 무너져내린다고 보면 된다. 감기나 단순 질병을 치료받는 데는 문제가 없을지 모르지만, 입원이 필요한 질환들이나 소아 중환자실이 필요한 질환은 앞으로 치료가 어려워질 것이다. 고위험분만 시 필요한 신생아 중환자실이 없어질지도 모른다. 환자가 병원을 찾아서 다른 지역으로 갈 수도 있고, 입원할 데가 없어서 서울 시내를 떠돌아야 하는 상황이 코앞에 닥쳤다. 선진국의 수도에서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1년, 2년 후가 아니라 당장 내일 일어날지도 모르는 다급한 상황이다.”

Q : 불과 채 5년도 되지 않아 이런 붕괴가 일어난 근본적인 이유는.
A : “노동 강도는 가장 센데, 미래에 대한 비전이 없다는 게 컸다. 생명을 다루는 일명 ‘내·외·산·소(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의 줄임말)’는 필수의료과목이고, 중환자가 많기 때문에 노동강도가 셀 수밖에 없다. 그런데 급여는 다른 전공의와 동일하다. 개업하거나 봉직의(병원에 소속되어 근무하면서 월급을 받는 의사)가 된다고 해도 돈을 벌기가 어렵다. 최근 5년간 개업의 수입이 감소한 과는 소아청소년과가 유일하다. 대학교수가 되어도 당직을 서야 하는 이 과에 누가 오고 싶을까.”

Q : 상황이 나아질 계기는 없나.
A : “사회적으로는 초저출산이 점점 심화하고 있다. 진료수가가 낮은 소아청소년과는 환자를 많이 보면서 수가 문제를 해결해왔는데, 지난 3년간 코로나19가 창궐하면서 진료량이 40%가량 떨어졌다. 환자 자체가 없으니 폐업하는 소아청소년과도 많아졌다. 간판을 바꿔 달아 타과 환자까지도 같이 진료하는 전문의들이 수두룩하다.”
일각에서는 2017년 이대목동병원에서 발생한 신생아 사망사건이 소아과 기피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 2월 의료진 전원이 무죄 판결을 받으며 사건은 일단락됐지만, 의사협회는 검찰이 의료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구속수사를 진행, 중형을 구형해 소아청소년과가 기피과로 분류됐다고 비판했다.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장은 “전 세계 어느 나라에도 고의가 아닌 치료과정에서의 결과에 대해 형사적 책임까지 지우는 나라는 없다”며 “불가항력적인 상황에 대한 책임을 의료진에게만 지우는 현 제도를 손봐야 필수의료과 기피 현상이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특별예산 편성 등 활용, 문제 해결해야

Q : 당장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없나.
A : “즉각적인 심폐소생술이 필요하다. 인력을 투입할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해줘야 한다. 3차 병원들은 지금까지 중환자를 감당해야 한다는 의무감 하나로 적자를 감수해왔다. 하지만 이젠 적자를 감수해도 진료인력 자체가 없어서 운영이 안 되는 상황이다. 병동 관리, 입원 환자 관리, 24시간 응급실 운영 등을 위한 전담 전문의 채용이 시급하다. 정부가 이 중요성을 알고 있다면, 전담 전문의를 고용할 수 있도록 인건비를 지원해줘야 한다. 전담 전문의 채용이 원활해지면 당장의 진료 시스템 붕괴는 막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후 전공의에 대한 처우 개선, 소아청소년과에 대한 진료 수가와 가산율을 개편해 전공의들이 소아과의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해줘야 한다. 16%까지 떨어진 지원율이 약 70~80% 정도까지 복구될 때까지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Q : 의사 수를 늘리자는 주장도 나온다.
A : “비전이 없고, 사람들의 관심이 사라지는데 공공의대를 설립한다고 문제가 해결될까. 공공의대를 설립하면 전문의 배출까지 약 10년의 세월이 필요한데, 당장 내년 3월이면 시작될 의료 공백을 무슨 수로 메우나.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고 본다.”

Q : 결국은 정부 지원이 핵심인가.
A : “단기적으론 인건비 지원이 필요하다면 장기적으로는 수가를 올리고, 가산율을 손봐야 한다. 문제는 지금 건강보험 재정으로는 이 문제를 감당할 수 없다는 점이다. 건강보험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하기보단 정부가 특별예산을 편성하거나, 지방자치단체 예산을 활용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접근해야 한다. 지난 8일 공청회에서 정부는 향후 몇 년을 예측해 대응하겠다고 했지만 더는 기다릴 시간이 없다. 내년, 내후년부터가 아니라 당장 지금 해야 한다.”

■ “의료 취약지역 거점 병원 확충하려면 의사 4000명 더 필요”

「 흉부외과, 산부인과 등 필수의료과목의 진료인력 부족 사태가 발생할 때마다 공공의료 인력 양성을 위한 공공의대 설립 주장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급여, 근무강도 등으로 기피하는 전공과목에 공공 재원을 투입해 의사 수를 늘리자는 취지에서다. 하지만 이 문제가 정치적 다툼으로 번지며 논의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2018년 서남의대 폐교로 공중에 뜬 49명의 의대 정원은 여전히 국회에 발이 묶여 있는 상태다.

지난 9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개최한 ‘공공의대 설립 관련 법안에 대한 공청회’에 출석한 김윤 서울의대 의료관리학과 교수는 “전체 국민 7명중 1명은 의료취약지에 거주하고 있어 처음 내원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지 못하고 다른 병원으로 전원되는 비율이 지속해서 늘고 있다”며 “의료 취약 지역에 응급·입원 환자를 제대로 진료할 수 있는 지역 거점 병원을 확충하기 위해서는 최소 4000명의 의사가 추가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공공의대만으로 지역의료 불균형을 해소할 순 없지만, 그것조차 없으면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며 “수도권 지역에 집중적으로 공급되고 있는 인력을 분산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 여론도 찬성 의견이 우세다. 지난 10월 국회 보건복지위 김원이 의원이 전국 성인 1005명을 대상으로 의사 인력 증원에 대한 의견을 묻자 응답자의 69.6%가 찬성한다고 답했다. 의대 신입생 선발시 의사면허 취득 후 비수도권에서 10년간 의무적으로 일해야하는 지역의사를 별도 정원으로 뽑는 ‘지역의사제’ 도입 여부에 대해서는 70.7%가 찬성했다.

의사 증원 문제를 정량지표 논쟁에서 벗어나 의료서비스의 질적 향상을 위한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전문의 숫자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의료인력의 노동강도와 의료서비스 질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의미에서다. 강은교 국립암센터 가정의학과 교수는 지난달 8일 보건의료포럼에서 “의대 정원 증원의 근거로 쓰이는 OECD 평균 의사 수는 의사의 노동강도나 미래 상황을 전혀 반영하지 않은 자료”라며 “의사 인력 증감 문제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우리 의료서비스 체계가 현 세대에 적합한, 지속가능성을 갖춘 체계인지 점검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신영석 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의대 정원을 고정하지 않고 인구구조에 맞춰 탄력적으로 조정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만 하다”며 “인력 정책 하나만 볼 것이 아니라 병상, 의료자원 등 다양한 관련 정책을 살펴 지속가능한 인력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오유진 기자 oh.yoo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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