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프리즘] 가격통제의 그늘
단통법이 시행될 즈음 도서정가제 개정안이 도입됐다. 기존에는 18개월이 지나면 무제한 할인이 가능했지만 정가 조정만 가능한 것으로 바뀌었다. 당시 새정치민주연합의 최재천 의원이 발의했고, 역시 여야 합의로 시행됐다. 첫 도입 당시 5년 일몰 규정이 있었지만 이후 없어지기는커녕 갈수록 강화됐다. 지난해에는 공공 도서관과 대학 도서관에서 책을 살 때 5%의 추가할인을 받을 수 없게 법이 다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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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통법, 도서정가제에 안전운임까지
내세운 의도와는 다른 부작용만 속출
」
이런 가격통제 정책은 의도했던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단통법은 시장 정보를 잘 모르는 시민이 바가지를 쓰는 것을 방지하겠다는 의도로 만들었다. 문제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보조금에 30만원이라는 상한을 뒀다는 점이다. 결국 너나 할 것 없이 비싼 값에 단말기를 사게 됐다. 소비자들은 이동통신업체 명칭이 ‘고객을 털자’ ‘신나게 고객을 털자’의 약자라며 반발했다. 게다가 팬택의 파산과 LG전자의 휴대전화 사업 포기를 불러왔다. 똑같이 최대 30만원의 보조금을 주니 고객이 비슷한 가격이면 삼성전자와 애플 단말기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도서정가제 역시 자본력을 갖춘 대형서점과 온라인서점과 가격 경쟁을 벌이기 어려운 동네서점이 고사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논리로 도입됐다. 하지만 큰 효과는 없는듯하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에 따르면 서점은 2003년 3500개에서 지난해 2500개로 줄었다. 2020년에는 60년 역사의 국내 2위 도매업체 송인서적이 파산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반디앤루니스를 운영하던 오프라인 3위업체 서울문고와 지역 명물이던 불광문고가 잇따라 문을 닫았다. 온라인이 대세가 되는데 가격만 틀어쥐고 있으니 대응이 어렵다. 2018년 이후 정가를 조정한 도서의 72%가 오히려 값을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의 가구당 월평균 서적구입비는 2006년 1만8000원에서 2019년 1만1000원으로 줄었다. 소비자들은 비싼 가격 때문에 도서 구매를 줄이고, 출판사들은 책이 안 팔리니 절판하거나 남는 책을 파쇄기로 갈아버린다. 학생용 참고서나 어학 교재를 주로 만들어 파는 일부 출판사만 돈을 번다. 악순환이다.
10년째 이어지는 원유(原乳) 가격의 ‘생산비 연동제’도 마찬가지다. 수요와 관계없이 값을 정하니 대형마트에서 우윳값은 L당 2800원으로 미국의 두 배다. 아이가 줄면서 우유 소비량은 감소하는데 소비자가 치러야 할 값은 오르는 기현상이 벌어진다. 소비자는 안중에도 없는 정치권에서는 축산농가의 표만 바라본다.
가격통제에 대한 시민들의 인내는 이제 한계에 달한 것 같다. 지난 9일 종료된 화물연대 파업에서도 2020년 도입한 안전운임제가 가장 큰 쟁점이었다. 보름 넘게 이어진 파업은 업무개시명령을 앞세운 정부의 강경 대응과 함께 싸늘한 국민 여론 때문에 실패했다. 적정 운임을 보장한다니 말은 좋지만, 요즘처럼 경기 침체로 물량이 부족하면 어쩔 것인지 대안이 없다. 전문가들은 표준운임으로 전환하는 쪽이 낫다는 입장이다.
프랑스 대혁명으로 집권한 로베스피에르는 1793년 파리에서 생필품 가격의 급등으로 폭동이 일어나자 가격 상한제를 도입했다. 결과는 재가 들어간 후추, 전분이 섞인 설탕과 암시장이었다. 물가는 두 배로 올랐다. 이 탓만은 아니겠지만 이듬해 그는 단두대에 올랐다. 선한 의도로 포장된 정부의 가격통제는 결국 비극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김창우 사회·디지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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