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파일] ‘전세 영끌족’의 비애
최근 부동산 커뮤니티나 대출 기사 관련 댓글에선 전세 세입자들의 한숨 섞인 글들이 쏟아지고 있다. 부동산시장의 한파가 닥치면서 매매·전세 가격이 우수수 떨어지고 있지만, 집 없는 세입자들도 마냥 기뻐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얘기다.
올해 초만 해도 임대차3법 시행 2년을 맞는 8월이 전세대란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득세했다. 수요가 몰리는 서울 아파트 입주물량이 10년 만에 역대 최저치인 데다, 계약갱신청구권 사용이 만료된 매물의 전셋값 상승이 예상됐기 때문이다. 이 같은 우려에 전세 계약을 앞둔 이들은 서둘러 고가라도 전셋집 찾기에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걱정했던 전세대란은커녕 역전세나 깡통전세 얘기가 올 하반기 시장을 도배하고 있다. 역대급 금리 인상이 시장의 판도를 뒤흔들었다.
그런데 정부의 이자 부담 경감 정책은 집 있는 영끌족을 향해 있다. 정부는 제1·2금융권에서 받은 변동·혼합형 금리의 주택담보대출을 3%대의 고정금리로 바꿔 주는 안심전환대출을 시행 중이다. 새해에는 소득과 상관없이 집값이 9억원을 넘지 않으면 소득 제한 없이 연 4%대 금리로 바꿔 주는 특례 보금자리론을 출시할 예정이다. 전세 세입자를 위해서도 안심전환대출과 같은 부담 완화 제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지만, 현재 이렇다 할 대책이 나오지 않은 상태다. 금리 상승기, 서민들의 이자 부담을 낮춰 주는 정책에서 집주인이 아닌 전세 세입자는 소외돼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권의 움직임도 미온적이다. 은행권 변동금리형 전세자금 대출 잔액은 지난해 말 기준 151조5000억원으로, 전체 162조원의 93.5%를 차지했다. 전세 대출자 94%가량이 금리 상승에 따른 이자폭탄에 노출돼 있는 셈이다. 그런데도 금리 인상기를 맞아 대출 금리 인상에 발 빠르게 대처했던 은행권은 이달 들어서야 일부 은행에서 전세대출 금리 인하에 나서기 시작했다. 당국의 대출 금리 주시 발언이 나온 이후다. 이달 우리은행이 신규코픽스(6개월 변동) 전세대출에 한해 금리를 최대 0.85%포인트 내렸고, 농협은행은 내년 1월부터 고정금리 전세대출 금리를 최대 1.1%포인트 내리기로 했다. 대출 금리의 부담은 자금 조달이 어려운 서민일수록 고통이 가중되는 법이다. 지난해 전셋값이 뛸 당시 은행들은 전세대출의 우대금리를 낮추며 대출 조이기에 나서 전세 난민들을 두 번 울렸다. 추후 은행들이 전세대출 금리 인하에 얼마나 동참할지는 아직 안갯속이다.
배현정 경제산업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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