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파일] ‘전세 영끌족’의 비애

배현정 2022. 12. 17.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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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현정 경제산업부문 기자
“집도 없는데 전세대출 이자로 얼마를 내는지 모르겠어. 진짜 전세 최고가에 계약했는데, 금리까지 급등하고. 지금 전세가는 2억원이나 떨어져서 제대로 보증금 돌려받을지도 걱정이고, 진짜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족보다 더 불쌍하다. 영끌족은 집이라도 있지.”

최근 부동산 커뮤니티나 대출 기사 관련 댓글에선 전세 세입자들의 한숨 섞인 글들이 쏟아지고 있다. 부동산시장의 한파가 닥치면서 매매·전세 가격이 우수수 떨어지고 있지만, 집 없는 세입자들도 마냥 기뻐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얘기다.

올해 초만 해도 임대차3법 시행 2년을 맞는 8월이 전세대란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득세했다. 수요가 몰리는 서울 아파트 입주물량이 10년 만에 역대 최저치인 데다, 계약갱신청구권 사용이 만료된 매물의 전셋값 상승이 예상됐기 때문이다. 이 같은 우려에 전세 계약을 앞둔 이들은 서둘러 고가라도 전셋집 찾기에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걱정했던 전세대란은커녕 역전세나 깡통전세 얘기가 올 하반기 시장을 도배하고 있다. 역대급 금리 인상이 시장의 판도를 뒤흔들었다.

금리 폭등 후유증으로 수도권 전세 매물이 16일 기준(부동산 빅데이터업체 아실 집계) 전월 대비 1만건 가까이 증가했다. [뉴시스]
문제는 이러한 예측불허의 시장에서 이자 폭탄에 고스란히 노출된 ‘전세 영끌족’의 고통은 외면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3억원의 전세대출을 빌려 신축 아파트를 계약했던 A씨는 “얼마 전 금리변동 주기 6개월을 맞아 전세대출 월평균 상환금이 약 92만원에서 150만원으로 급격하게 뛰었다”며 날벼락 같다고 호소했다. 더 무서운 것은 금리 인상은 현재 진행형이라는 점이다. 16일부터 대출금리의 기준이 되는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 금리는 상향돼 새롭게 적용된다. 전월 대비 0.36%포인트 상승하며 사상 최초 4%대에 진입했다. 이에 따라 연말 전세대출 금리의 상단은 7.6% 수준에 이를 전망이다.

그런데 정부의 이자 부담 경감 정책은 집 있는 영끌족을 향해 있다. 정부는 제1·2금융권에서 받은 변동·혼합형 금리의 주택담보대출을 3%대의 고정금리로 바꿔 주는 안심전환대출을 시행 중이다. 새해에는 소득과 상관없이 집값이 9억원을 넘지 않으면 소득 제한 없이 연 4%대 금리로 바꿔 주는 특례 보금자리론을 출시할 예정이다. 전세 세입자를 위해서도 안심전환대출과 같은 부담 완화 제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지만, 현재 이렇다 할 대책이 나오지 않은 상태다. 금리 상승기, 서민들의 이자 부담을 낮춰 주는 정책에서 집주인이 아닌 전세 세입자는 소외돼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권의 움직임도 미온적이다. 은행권 변동금리형 전세자금 대출 잔액은 지난해 말 기준 151조5000억원으로, 전체 162조원의 93.5%를 차지했다. 전세 대출자 94%가량이 금리 상승에 따른 이자폭탄에 노출돼 있는 셈이다. 그런데도 금리 인상기를 맞아 대출 금리 인상에 발 빠르게 대처했던 은행권은 이달 들어서야 일부 은행에서 전세대출 금리 인하에 나서기 시작했다. 당국의 대출 금리 주시 발언이 나온 이후다. 이달 우리은행이 신규코픽스(6개월 변동) 전세대출에 한해 금리를 최대 0.85%포인트 내렸고, 농협은행은 내년 1월부터 고정금리 전세대출 금리를 최대 1.1%포인트 내리기로 했다. 대출 금리의 부담은 자금 조달이 어려운 서민일수록 고통이 가중되는 법이다. 지난해 전셋값이 뛸 당시 은행들은 전세대출의 우대금리를 낮추며 대출 조이기에 나서 전세 난민들을 두 번 울렸다. 추후 은행들이 전세대출 금리 인하에 얼마나 동참할지는 아직 안갯속이다.

배현정 경제산업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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