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아우른 천년의 가문
마틴 래디 지음
박수철 옮김
까치
AEIOU. 합스부르크 가문의 겨울궁전이었던 오스트리아 빈 호프부르크궁 내 제국도서관 천장에 그려진 프레스코화에서 3명의 여신들이 들고 있는 깃발에 적힌 문구다. 라틴어 또는 독일어 이합체시(離合體詩, 각 구의 첫 글자를 조합하면 다른 뜻이 나타나는 시)로 ‘오스트리아가 전 세계를 지배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가문의 좌우명은 ‘더 멀리(Plus Ultra)’였다.
『합스부르크 세계를 지배하다』는 천 년에 걸친 이 가문의 방대한 역사를 집대성했다. 합스부르크를 알지 못하고선 유럽을, 그리고 세계를 이해하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합스부르크를 통해 본 유럽사, 세계사의 길잡이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신성로마제국은 합스부르크와 거의 동일시된다. 1438년부터 이 제국이 무너진 1806년까지는 끊임없이 통치했다.
합스부르크 왕가 카를 5세는 1516년 외할아버지 사후에 외가의 스페인 왕위까지 물려받았다. 오스트리아 중심의 기존 중앙 유럽 영지에 스페인, 남부 이탈리아, 북아프리카 해안, 포르투갈 등을 추가했다. 카를 5세 치세에는 스페인이 식민개척한 아메리카 신대륙의 멕시코, 페루, 칠레도 합스부르크의 영토가 됐다. 동아시아 필리핀도 추가됐다. 카를 5세는 세계의 지배자, 왕 중의 왕, 우주의 군주였다. 아들 페르디난트 1세는 헝가리와 보헤미아까지 흡수해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기틀을 마련했다.
유럽의 많은 왕가 중에 이만큼 오래 영토와 권력을 확장하고 대륙과 대양을 지배한 가문은 없을 것이다. 영국 빅토리아 여왕에 몇백 년 앞서 처음으로 ‘해가 지지 않는 방대한 제국’을 건설한 것도 이들이다.
18세기 마리아 테레지아는 합스부르크 가문이 낳은 걸출한 스타. 카를 6세 사후 남성 혈통이 끊어져 왕위를 승계한 그는 치세의 절반을 전쟁으로 보냈다. 하지만 주변의 우려를 불식하고 가문을 지켜냈고 아들 요제프 2세와 함께 계몽군주로 대대적 개혁에 성공했다.
합스부르크 가문은 유럽과 전 세계의 정치, 사회, 문화, 예술 등 다방면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마리 앙투아네트와 황후 시시, 멕시코의 막시밀리안 황제 등 예술 작품의 주인공이 된 인물들도 이 가문 출신이다. 단일한 민족 집단을 바탕으로 하지 않은 합스부르크 제국의 보편성은 흥미로운 탐구 대상이다.
한경환 기자 han.kyungh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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