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 초대석] ‘현역 최고령’ 배우 이순재
[앵커]
오늘 라인 초대석에서 모신 손님은 따로 소개할 필요가 없는 분입니다.
이름이 곧 믿음이 되는 분이죠.
현역 최고령 배우 이순재 씨 모시고 이야기 나눠 보겠습니다.
먼저 다음 주 수요일부터 출연과 연출을 모두 맡으신 연극 '갈매기'가 시작되는데요.
어떤 작품입니까?
[답변]
안톤 체호프하면, 4대 문호에 속하는 사람의 작품인데 그 중에 대표작 중에 하나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동안에도 많이 했는데 여러 가지 변형도 해보고 축소도 해보고 그랬는데 이번에는 한 번 원작 그대로 한 번 해보자.
그 다음에 전문배우들이니까 그래서 안톤 체호프의 원작, 소위 갈매기가 어떤 내용이고 어떤 사상과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있나 이걸 한 번 배우들의 연기력을 통해서 한 번 보여드리자, 이래서 합의가 되어서 시작을 한 겁니다.
[앵커]
원작 그대로 들려주고픈 대사들이 있어 연출을 결심하셨다 들었습니다.
한 대목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답변]
이제 그런 거지요.
"영감은 병에 약하니까 나는 도대체 이 시골은 불편해서 못살겠어. 내 생전, 생전에 아마 시골에 익숙해지지 못할 것이다. 아침에 어젯밤 열시에 잠들고 아침 9시에 깼는데 너무 자서 뇌가 해골에 딱 달라붙은 것 같아" 뭐 이런 식의 대사입니다.
그런데 이게 아니고 평온한 대사가 있지만 그 어휘 가운데 상당히 문학과 철학이 끼어있는 작품들이에요.
그래서 그것을 배우들이 제대로 표현을 하느냐 안하느냐, 여기에 달려서 이번에 한 번 제대로 한 번 해보자 그래서 시작된 겁니다.
[앵커]
정말 체력이 대단하신 것 같습니다.
[답변]
우리는 해야 돼요.
우리는 연기를 할 때 팔팔해집니다.
[앵커]
1956년 연극 '지평선 넘어'로 데뷔하셨는데, 벌써 66년이 흘렀습니다.
당시엔 연기자가 ‘딴따라’로 불리던 때인데요.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했던 학생이 어떻게 연기자가 됐습니까?
[답변]
아, 그건 이제 우리 대학교 때 그 당시 이제 50년대 대학생들이 여가 생활 할 수 있는 조건은 별로 많지가 않습니다.
우선은 재정적으로 넉넉하지가 못하니까.
우리 같은 경우도 돈 좀 긁어모았다가 그 당시에 좋은 외화들이 많이 있었어요.
한국 영화도 물론 50년대 후반부터 올라서긴 시작했지만 그러나 우리가 봤던 입장에서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고.
그러면 이태리 전후의 네오리얼리즘 계열의 작품들, 불란서의 누벨바그 젊은 세대와 30년대 고전극, 영국의 셰익스피어 영화들, 이런 것들을 보다 거기서 예술성을 발견한 겁니다.
그래서 이제 한 번 해보자 해서 시작했던 것인데.
그렇다고 영화에 들어갈 수는 없었고, 신인 배우할 때.
공부는 해야 하니까 그러다보니까 결국 이제 우리끼리 연극이라도 시작해 보자, 그래서 연극을 시작했던 것이고.
[앵커]
놀라운 건 연극 데뷔하고 20년이 지나서야 처음으로 출연료를 받으셨다면서요.
그 시절을 왜, 그리고 어떻게 버티셨습니까?
[답변]
그 이유는 뭐냐면 그 당시에 뭐 돈벌이가 안 되니까 자연히 출연료를 받을 수도 없는 것이고, 의무적으로 출연한 거죠.
그걸 한 20년 했어요.
78년도에 제가 이제 세일즈맨이라는 걸 처음 초연하게 됐는데 이게 어떻게 히트가 됐어요.
그래서 좀 재공연까지 하다보니까 여유가 생겼는데 봉투 하나 주더라고.
근데 얼마인지 몰라 집사람 줘버렸으니까.
[앵커]
말씀을 들어보니까 무대가 좋아서 오르신 거네요.
[답변]
그렇죠.
[앵커]
이후 TV 드라마에서도 단번에 주연을 맡기는 어려웠습니다.
70년대 당시엔 박근형, 이정길, 노주현 씨 같은 꽃미남 배우들이 인기였는데요.
그럼 무엇으로 승부를 보셨습니까?
[답변]
매회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게 뭐냐면 우리처럼 하나 작품 들어가서 스타가 되고 이런 입장은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그 당시만 해도 경쟁력이라는 게 자기 내실을 충족시켜가면서 인정을 받을 수밖에 없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별안간에 처음부터 주인공, 이것은 아니라는 말씀이에요.
영화 같은 경우도 조연, 단역 하다가 주인공 맡게 된 거고 텔레비전에는 어차피 이제 우리가 KBS에서 활동하다가 또 TBC로 넘어가면서 전속 계약을 하다보니까 그때 우리 동료들이 같이 주연할 때도 있고 조연할 때도 있고.
그 다음에 이제 80년대 KBS 멤버가 됐는데 KBS에서 기록이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80년대 제가 했던 풍운이라는 대하 드라마가 있습니다.
이게 나는 연말 대상 줄 줄 알았는데 안 주더라고.
대신 대한민국 방송대상을 받았고.
그 다음에 최장수 일일 연속극, KBS ‘보통 사람들’.
그 기록은 영원히 안 깨집니다.
정말로 수작이었어요.
그 외에도 좋은 작품 많이 했죠.
목욕탕집 남자들, 이런 것들.
[앵커]
그 좋은 작품 중에 하나가 1991년에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였습니다.
대발이 아버지로 국민 아빠 수식어 얻으셨는데 그때 인기가 어느 정도였습니까?
[답변]
그 작품은 뭐... 우리나라 드라마 사상 상당히 영원히 남을 수 있는 작품이 아니겠나, 이렇게 봅니다.
65% 이상입니다, 시청률이.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시청률이죠.
그래서 지금도 이제 대발이 아빠가 내 닉네임처럼 쫓아다니고 있는데 그건 뭐, 내 일생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작품 중에 하나이기 때문에.
[앵커]
주로 근엄하고 무게감 있는 역할을 많이 하셨는데요.
2006년 '거침없이 하이킥'에선 코믹 시트콤을 완벽하게 소화하셨죠.
희극 연기에 대한 어려움은 없으셨습니까?
[답변]
원래 시추에이션 코미디도 드라마 파트예요.
어쨌든간 제가 나왔다고 하는 게 아니라 그게 시추에이션 코미디 중에서는 아주 걸작 중에 걸작이다, 저는 이렇게 생각하고 그 인기는 지금도 유지되고 있습니다.
왜냐면 이게 케이블 통해서나 뭡니까, 또 다른 방식으로 전파가 되다 보니까 그때 태어나지도 않았던 소년들, 새로운 팬이 생겼어요.
[앵커]
최근 한 인터뷰에서 선생님처럼 길게 배우를 하려면 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해야 한다고 강조하신 걸 봤는데요.
올해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후배 강수연 씨에 대해서도 상심이 크셨을 것 같습니다.
강수연 씨가 초등학교 꼬마일 때부터 보셨잖아요?
[답변]
그럼요, 저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 와서 근데 누가 보좌가 없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엄마 안 왔냐, 그랬더니 저 혼자 왔어요, 그래서 왜 혼자 와 그랬더니 혼자 오면 안 돼요? 그 다음에 촬영하다가 조금 이제 감독이 몇 군데 지적한 적이 있어요, 하도 저니까.
그런데도 뭐 까딱없더라고요.
그래서 아, 이게 상당히 야무진 친구구나... 그러고 봤는데 잘 성장해서 우리나라 대표 여배우로서 성장을 해서 활동도 많이 하고 또 상도 타고 정말로 견실한 연기자고, 내실 있는 연기자였다 이렇게 봤는데 너무 아깝습니다.
좀 더 얼마든지 버틸 수 있었는데 너무 아까워... 저기 상 받네, 임권택 감독하고 같이 나왔네.
[앵커]
늘 죽을 각오로 연기한다 하시죠.
제가 보기엔 다 성취하신 것 같은데 못다 이룬 목표나 꿈이 있으십니까?
[답변]
글쎄 이제 뭐 다른 분야를 넘볼 수는 없는 것이고 오로지 이 분야인데 근래 내가 KBS 드라마를 못 해봤어요.
왜 안 시켜주시는 지 몰라.
내년에는 한 번 해야겠어요.
[앵커]
라인 초대석, 오늘은 한국 드라마 역사의 산 증인 배우 이순재 씨 모시고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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