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 줌인] 나의 양동이는 얼마나 차 있는가
[심민영 국립정신건강센터 국가트라우마센터장] 2020년 2월, 서울의료원은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지정됐다. 감염병 전담병상과 생활치료센터를 동시에 운영하며 단일병원으로는 가장 많은 수의 코로나 환자를 진료했다. 짐작하다시피 그 이면에는 직원들의 노고와 고충이 있었다. 긴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 기존 업무와 상관없이 차출돼 현장에 투입되었다.
이것은 비단 서울의료원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필자가 근무하는 국립정신건강센터는 기관의 모든 자원과 역량을 코로나19 대응에 집중한 결과, 코로나19 유행 직전 총 33명이었던 의사가 2022년 10월에는 17명으로 반토막이 났다. 코로나19 대응 첫해인 20년 국가트라우마센터 직원의 사직률은 60%까지 치솟았다. 20년 보건소 공무원의 퇴직율과 휴직율은 19년 대비 1.5배-2배 가량 증가했다. 다른 나라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21년 캐나다의 보건의료 인력 공백은 2년 전보다 두 배 늘어났으며 미국에서는 올해 간호사 부족이 100만명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심지어 보건의료계의 인력 공백은 향후 3년 동안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신종 감염병에 대한 방어를 강화해야하는 시점에 오히려 공공 보건 인력의 이탈이 가속화되고 있는 것이다.
의료진이 사직에 이르게 되는 가장 큰 원인은 소진(消盡)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소진은 “차차 줄어들어 없어지는 것. 다 써서 없어지는 것”이며, Cambridge Dictionary에서는 소진(Burnout)을 “과로로 인해 에너지 또는 열정이 사라진 상태”로 정의하고 있다. 2019년 WHO는 소진을 ‘만성적 직장 스트레스 증후군’으로 규정하기에 이르렀다. ‘에너지가 고갈된 느낌, 탈진’, ‘업무와 관련된 부정적 감정’, ‘직무효능감 저하’가 소진의 핵심 증상이다. 즉, 모든 에너지를 업무에 다 쏟아부어 손가락 하나 까딱할 기운도 없고, 일과 직장에 대해 회의감이 들며, 스스로 일을 잘 해내지 못하는 것 같아 자신감이 떨어진다면 소진을 의심해 보아야 한다.
극심한 피로감, 무력감, 두통, 소화불량, 불면증 같은 신체 증상도 흔하다. 코로나19 유행이 3년째에 접어들며 보건소, 공공병원, 감염병 전담병원 등 감염병 대응 업무 종사자의 정신건강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21년 7월 국가트라우마센터에서 실시한 의료진 정신건강 실태조사에 따르면 반수 이상의 의료진이 심각하게 소진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심신의 피로감을 소진의 신호가 아니라 개인의 능력이나 적성의 문제로 오인하는 경우를 흔히 보게 된다. “오미크론 때도 버텼는데 요즘은 왜 이렇게 힘든지 이해가 안가요.”,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어요. 이 일이 나한테 잘 안맞는 것 같아요”, “능력있는 사람들은 떠나고 갈 곳이 없는 사람들만 남았다고 볼 것 같아요. 무능한 사람이 된 것 같아요.” 실제로 심각한 소진을 보이는 의료진의 1/3은 자신이 소진되었다는 것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거나 시간이 지나면 좋아질 것이라고 막연하게 기대하고 있었다.
소진의 문턱에 와있는 사람은 물이 가득 찬 양동이와 같다. 조금씩 차오르는 물줄기에 어느 순간 잠식되어 버린 것이다. 이제 양동이는 한 방울만으로도 넘쳐버릴 것이다. 양동이가 이미 가득 차 버렸음을 인지하지 못한다면 한 방울 밖에 안되는데 왜 더 담지 못하냐고 다그치는 우를 범하게 될 것이다. 강의 범람을 막기 위해 사전에 통제 수위를 정하듯이 개인은 자신만의 위험 수위를 설정하고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 조직은 개인이 잠식되지 않도록 수위를 조절해주어야 한다. 국가 및 권역 트라우마센터와 지자체 등지에서 의료진을 위한 소진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자신이 소진되었다는 것조차 모르거나 그 정도로 소진될 리가 있냐고 의아해하는 조직이라면 이러한 자원은 제대로 활용하지 못할 것이다. 궁극적으로 재난 업무종사자의 소진 관리는 사회적 책무가 되어야 한다. 그에 앞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나와 동료, 나의 직원이 얼마나 소진되었는지 살피고 알아채는 것이다.
이순용 (sylee@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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