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 MRI, 새벽 환자 깨워 찍고 판독 외주 맡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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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대 오른 건보 제도
서울에 사는 C(61)씨는 얼마 지난달 중순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 입원했다. 뇌에 양성종양이 생겨 제거하기 위해서다. 수술 이틀 전 입원했다가 황당한 경험을 했다. 입원 당일 오전 1시에 간호사가 잠을 깨웠다. 자기공명영상(MRI)을 찍기 위해서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지하 촬영실로 갔다. 2시간가량 걸렸다. 입원 이틀째는 오전 3시에 MRI를 찍었다. 수술 후에도 두 차례 새벽 촬영을 했다. 검사 후 나올 때마다 촬영 대기자가 누운 침대가 줄지어 있었다. C씨는 16일 중앙일보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C씨는 “한 가지 확실한 걸 알았다. MRI 촬영 기사가 너무 지쳐 보이고, 대충하는 듯하고, 친절하지 않더라”고 말했다. 그는 “‘문재인 케어’인지 뭔지 때문에 MRI를 남용하니까 외래환자는 낮에 찍고 우리 같은 입원 환자는 새벽으로 내몰리는 거다”라며 “건보 개혁 취지에 공감한다”고 덧붙였다.
세상에 자는 환자를 새벽에 깨워 MRI 통속으로 밀어 넣는 나라가 있을까. 2017년 8월 시작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일명 문재인 케어가 낳은 풍속도다. 문 케어는 ‘모든 의학적 비급여의 급여화’를 표방했다. 비급여는 건보가 적용되지 않는 의료행위나 검사 등을 말한다. 한국 의사들이 비급여를 많이 만들어내 환자 진료비 부담이 큰 것은 분명하다. 건보를 확대해도 신규 비급여를 따라가지 못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연일 건보 개혁을 외치고 있다. 타깃은 문 케어임이 분명하다. 지난 13일 국무회의에서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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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보 보장률 높이고 비급여의 급여화 …‘의료 정치화’ 문제
지난 15일 국정과제점검회의에서는 “건보 제도를 수술하려고 하는 것은 도덕적 해이가 다른 선량한 보험 가입자들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보험 제도를 정의롭게 다시 만들겠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브랜드인 ‘정의’ ‘약자 복지’를 건보 개혁에 입혔다.
의료 현장은 즉각 반응했다. 새벽 촬영, 휴일 촬영을 고안했고, 웬만한 대형병원은 24시간 365일 풀 가동 체제로 돌입했다. 기계를 돌리는 만큼 득이 된다고 한다. 다음은 서울의 한 대학병원 영상의학과 의사 K의 푸념이다. 영상의학과는 MRI 등의 영상촬영을 판독한다.
“외래환자는 오전 6시~자정까지 MRI를 찍고, 입원환자는 새벽에 해요. 오전 6시에 오라고 해도 응하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환자들이 불쌍해요. 문 케어 이전보다 판독량이 2배 넘게 늘었고, 하루에 100건 이상 MRI를 판독합니다. 판독이 촬영량을 못 따라가요. 온종일 화면을 보고 있으면 진짜 눈이 아파요.”
K에게 “그리 많이 판독하면 정확하게 잡아내지 못할 수 있지 않으냐”고 물었다. K는 “빨리빨리 판독하는 게 중요하다. 열심히 못 본다”고 돌려 말했다. 판독을 소화하지 못해 상당수 병원은 전문판독센터(의료기관)으로 외주를 준다. 법적으로 문제는 없지만, 환자는 이런 사실을 잘 모른다. K는 “MRI 판독 물량의 60%가 뇌다. 두통은 편두통 또는 긴장성 두통이 대부분이다. 100명 중 1명꼴로 뇌종양·뇌혈관질환인데, 여기에 건보를 적용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현 정부의 건보 개혁을 강하게 반박한다. 건보를 두고 정권이 충돌하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이다. 충돌의 배경에는 ‘의료의 정치화’가 있다. 노무현~이명박 정부는 건보 확대를 살얼음 걷듯 했다. 의약분업 탓에 2001년 건보재정이 파탄 난 게 반면교사였다. 박근혜 정부가 ‘맞춤형 복지’를 내세우면서 암·뇌·심장병 등 4대 중증질환을 국가가 100% 보장하겠다고 내세웠다. 문재인 대통령은 비급여의 급여화, 건보 보장률 70% 상향 등을 내세웠다.
건보가 대통령 사업이 되면 공무원의 촉수가 그쪽으로 집중된다. 전 정부 시절 건보 보장률을 70%(2017년 62.7%)로 끌어올릴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 MRI 등의 검사를 잡았다. 환자 부담을 낮출 여지가 많고, 되도록 많은 환자가 득을 볼 수 있는 게 MRI이기 때문이다. 건보 재원의 우선순위를 따지는 일은 뒤로 밀렸다.
윤석열 대통령의 건보 개혁이 문 케어 뒤집기에 집중하면 곧 한계에 봉착하게 된다. 이미 건보 확대한 걸 일부 높일 수는 있지만, 원점으로 되돌리는 건 불가능하다. 절감할 돈이 그리 많지 않을 수 있다. 수가·의료전달체계 개편, 저출산·고령화 대응, 새로운 건보 재원 확보 등 구조개혁이 뒷전으로 밀리면 지속가능성도 담보할 수 없다.
건보는 문 케어 이전부터 치명적 약점을 안고 있었다. 지난해 수도권에 사는 40대 남성은 서울·인천·경기 지역 치과 의료기관 166군데를 다녔다. 경기도의 20대 남성 복합통증증후군 환자는 지난해 141군데, 571회 방문했다. 2003~2005년에는 연간 방문횟수를 365회로 제한했는데 지금은 누구도 통제하지 않는다. 외국인도 가세했다. 지난해 한 중국인 가족은 1106번 진료를 받고 1800만원의 건보재정을 썼다. 또 1년간 150번 넘게 병원 간 외국인이 1173명이다. 중국인이 1024명으로 압도적으로 많다. 외국인 관련 건보제도가 허술하기 때문이다. 이대로 가면 건보는 적자 수렁으로 빠진다. 내년 1조4000억원 적자를 시작으로 매년 적자 폭이 커진다. 적립금 20조원은 2028년 사라진다. 문 케어를 일부 수정해봤자 한계가 있다. 지난해 90세 이상 초고령 노인이 쓴 진료비가 1조7129억원에 달한다.
이동욱 보건복지부 전 실장은 “문 케어가 야기한 도덕적 해이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 병원이 상품 광고하듯 ‘MRI 부담이 낮다’는 광고를 내거는 게 정상이 아니다. 도덕적 해이가 생기면 재정이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꼭 필요한 진료가 아닌 것에는 환자가 부담을 느끼게 해 병원 이용을 자제하게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전 실장은 “고령화 탓에 고혈압·당뇨병 환자가 급증하는데, 생활습관과 건강을 관리해줘서 질병을 예방하거나 악화를 막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는 “환자의 본인부담금이라는 제도가 의료 이용량을 조절해왔는데 실손보험으로 인해 통제가 안 된다. 민영의보와 건보 역할을 근본적으로 뜯어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현 정부의 건보 개혁 반대 목소리도 나온다. 참여연대는 지난 9일 논평에서 “국민 의료이용을 재정 지출 절감이라는 이유로 제한하고, 민간병원을 지원하겠다는 이번 대책을 당장 폐기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건보 보장성 강화 방안을 적극적으로 논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병원비백만원연대는 지난 15일 성명에서 “문 케어 이후 기대보다 보장성이 크게 늘지 않았다. MRI 등 일부에서는 예상보다 의료 이용량이 더 늘어나는 문제도 분명히 존재했지만 이를 두고 문 케어의 실패로 규정하는 것은 매우 섣부르다”며 “과잉진료와 도덕적 해이가 크게 발생하는 분야가 바로 실손의료보험이 보장하고 있는 비급여”라고 지적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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