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걸어 물 긷던 삶서 해방” 케냐 아이들 수돗물에 웃음꽃

지난 6일(현지시간) 케냐 투르카나주 소펠 마을에서 아이들이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을 마시고 있다. 이 마을 급수 시설은 2020년 한국 정부의 지원으로 설치됐다. [외교부 공동취재단]

“물이 콸콸 쏟아지자 아이들 표정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물통을 이고 매일 20㎞를 걸어 다니던 삶에서 해방됐거든요.”(에칼 에라투스 케냐 투르카나주 소펠 마을 사회봉사자)

아프리카 케냐 북서부의 오지인 투르카나주는 연 평균 기온이 40도가 넘는 메마른 땅이다. 케냐의 47개 주 중 두 번째로 가난하다. 4년째 이어진 가뭄으로 농작물과 가축이 말라 죽고 주민들도 항상 목마름에 신음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6일(현지시간) 케냐 로드워 공항에서 비포장도로 45㎞를 1시간 달려 도착한 소펠 마을은 예외였다. 진흙과 나무줄기로 집을 짓고 낙타와 염소 등 가축도 키우며 물 걱정 없이 생활하고 있었다.

누더기를 걸친 깡마른 아이들이 흙먼지 속에서 뛰놀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건 2020년 이곳에 한국 정부 예산으로 지어진 급수 시설 덕분이다. 녹슬기 쉬운 수동 펌프와 달리 태양광을 이용해 최장 30년까지 안정적으로 물을 공급할 수 있다. 정부가 2019~2023년 투르카나주에 550만 달러(한화 약 72억원)를 지원하는 ‘기후변화 대응력 강화를 위한 식수 위생 개선 사업(SCORE)’의 일환이다.

이 급수 시설 하나로 인근 마을 주민까지 5400여 명의 삶이 바뀌었다. 아이들은 수도꼭지에서 쏟아지는 맑은 물을 마신 뒤 물통을 가득 채워 집으로 향한다. 도르카스 로카펫(13)은 “수도가 설치되기 전에는 물을 길어오기 위해 매일 먼 길을 오가야 했는데 이젠 집 근처에 물이 있으니 수저도 씻을 수 있어 좋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수십㎏ 무게의 물통을 지고 그늘 하나 없는 메마른 땅을 맨발로 걷기엔 너무나 가녀린 체구다.

잭슨 무티아 유니세프 로드워 지역사무소 식수 위생 전문가는 “예전엔 아이들이 물을 길러 다니느라 공부할 시간조차 없었는데 이젠 훨씬 더 많은 아이들이 학교에 올 수 있게 됐고 위생과 영양 상태도 확연히 좋아졌다”고 반겼다. 대니얼 이렝 간호사도 “급수 시설이 들어선 뒤 5세 이하 아동의 설사 발병률이 20% 이상에서 5% 이하로 확 줄었다”며 “코로나19 팬데믹 때도 손을 씻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는데 물이 충분해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가축들도 흠뻑 목을 축이는 모습이었다. 주민 대다수가 농·목축업에 종사하는 상황에서 생계에 직격탄인 가축의 폐사도 상당 부분 줄었다. 박미 한국국제협력단(KOICA) 케냐 사무소 부소장은 “급수 시설이 없을 때는 물이 생기면 귀한 자산인 낙타를 가장 먼저 먹이고 그다음에 염소를 먹인 뒤 마지막으로 사람이 마셨는데 이젠 가축과 사람이 동시에 물을 마실 수 있게 됐다며 주민들도 크게 기뻐하고 있다”고 전했다.

투르카나주의 또 다른 마을인 칼로피리아에도 올해 한국 정부의 지원으로 태양광 급수 시설이 들어섰다. 인근 6개 마을 1400여 명이 수혜자다. 물이 나오면서 가뭄 때문에 마을을 떠났던 주민들도 다시 돌아오기 시작했다. 존 로카위 칼로피리아 마을 이장은 “더러운 물로 인한 수인성 질병도 완전히 사라졌다”며 “급수 시설이야말로 신의 선물”이라고 말했다. 급수 시설 주변에는 식용 작물을 기르는 작은 텃밭도 일궜다.

아이들 삶도 바뀌었다. 마을 초등학교 교장인 에무론 실비아는 “예전엔 아이들이 매일 무거운 물통을 지고 험한 바윗길을 걷다 넘어져 다리가 부러지는 경우도 많았다”며 “워낙 고된 일이다 보니 일부 여자아이들은 도와주겠다는 남자들 말에 혹해 함께 길을 나섰다가 임신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젠 물을 길러 다닐 필요가 없게 되면서 아이들도 교실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교재를 소리 내서 읽거나 함께 수다를 떠는 아이들로 웃음꽃이 가득했다. 7학년 학생인 이레네 에모이는 “교실이 더 필요할 정도로 학생들이 많이 몰려들고 있다”며 “물이 풍족해져 너무 감사하다. 앞으로 열심히 공부해 의사가 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소펠과 칼로피리아 마을을 비롯해 투르카나주 전역에서 한국 정부 지원으로 지어진 급수 시설의 혜택을 받고 있는 주민은 10만 명에 달한다.

투르카나=박현주 기자·외교부 공동취재단 park.hyunju@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