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옥의 말과 글] [282] 일을 잘한다는 것
폴 매카트니와 존 레넌이 ‘일주일에 8일’이라는 곡을 쓴 건 우연이었다. 매카트니는 그즈음 시골에서 살았기 때문에 레넌과 작업하기 위해서 운전사의 차를 타고 그의 집으로 가야 했다. 그때 매카트니가 운전사에게 어떻게 지내냐고 건넨 말이 꽉 막혀 있던 창작의 한 줄기 뮤즈가 되었다. “아! 죽어라 일만 했죠. 일주일에 8일씩요!” 일주일에 8일! 달리는 차 안에서 명곡이 만들어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내가 궁금한 건 비틀스가 아니라 그 운전사다.
일주일에 8일을 일한 그는 어떻게 됐을까? ‘프로 일잘러’였던 선배들이 오십 전후를 넘기며 뇌졸중, 암, 마비라는 이름으로 무릎이 꺾일 때마다, 나는 일을 잘한다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경력은 살아남은 자의 기록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으나 유언 같은 지혜를 남기기도 한다. ‘자기 착취’에서 ‘자기 파괴’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끊기 위해선 ‘자기 돌봄’의 시간을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 상황을 무시한 채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으로 일정을 짜면 안 된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과 ‘실제로 하는 것’의 간극 때문에 더 집요한 자기 착취와 비하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돌집이 무너지지 않으려면 바람이 지나다니는 ‘틈’이 필요하다. 일의 적정선을 알아야 한다. 하루 4시간 작업 원칙은 내가 좌골신경통과 손목 터널 증후군을 진단받은 후 갖게 된 적정선이다. 1시간마다 알람을 맞춰 의식적으로 일어나 움직이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야근 많기로 소문난 광고 업계에서 6시 퇴근을 지키기 위해 일의 밀도를 어떻게 높여왔는지를 기술한 김민철의 책 ‘내 일로 건너가는 법’에는 매 순간, 가장 효율적인 길을 찾겠다는 그의 다짐이 녹아 있다.
일 잘하는 것을 일중독과 연결하면 안 된다. ‘일을 오래 하는 것’과 ‘일 잘하는 것’을 연결해서도 안 된다. 가장 무서운 건 합리화된 자기 착취다. 자기 착취가 내면화되면 자기 파멸은 자동 모드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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