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만난세상] 선택적 ‘관례사회’

권구성 2022. 12. 16.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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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압사 참사'가 벌어진 뒤 참사의 책임자들은 저마다 '관례'를 핑계 삼았다.

참사 당일 서울경찰청 상황관리관으로 근무하며 서울의 치안을 책임진 류미진 총경은 근무장소인 112상황실을 비운 것을 두고 "관례였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태원 참사를 수사하는 경찰청 특별수사본부는 출범 40여일이 지나도록 참사의 원인을 규명하지 못한 것은 물론, 그 책임자에 대한 구속수사나 송치에도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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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압사 참사’가 벌어진 뒤 참사의 책임자들은 저마다 ‘관례’를 핑계 삼았다. 참사 당일 서울경찰청 상황관리관으로 근무하며 서울의 치안을 책임진 류미진 총경은 근무장소인 112상황실을 비운 것을 두고 “관례였다”고 해명했다. 용산구가 참사 전 안전사고 예방을 목적으로 개최한 ‘핼러윈 대비 긴급대책회의’에 불참한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부구청장이 회의를 주재하는 것이 관례”라고 변명했다.

관례 때문이라는 이들의 무성의한 해명은 158명이 숨진 참사의 책임에 대한 대답으론 너무나 가볍다. 이들의 말대로라면 관례대로 근무장소를 이탈하고, 관례대로 긴급회의에 불참해야 했기에 참사는 불가피한 일이 되고 만다. “경찰과 소방을 배치한다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던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말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권구성 사회부 기자
공교롭게도 이들의 관례는 다분히 선택적이다. 참사에 대한 책임을 지고 그 책임자가 자리에서 물러나는 관례는 참사 후 50여일이 지나도록 행해질 조짐조차 없다. 2014년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직후 당시 정홍원 국무총리와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이 곧바로 사퇴 의사를 밝힌 것과 대조적이다. 이주영 장관은 참사가 벌어진 뒤 진도 팽목항으로 내려가 유가족의 곁에 136일간 머물며 눈물로 보듬어 ‘울보 장관’으로 불리기도 했다.

반면 이상민 장관은 국회에서 자신의 해임건의안이 통과됐음에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국민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라며 사실상 사퇴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거취와 관련한 논란을 차치하고서라도 이들 중 유가족의 곁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노력한 사람이 있었는지 묻고 싶다.

윤석열정부는 법과 원칙을 강조하고 있다.

법과 원칙은 관례보다 우위에 존재하는 것이지만, 그것이 지금의 관례사회에서는 제대로 작동하는 것 같지 않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158명 가운데 97명의 유가족이 참여한 가족 협의회는 지난 10일 기자회견에서 “국민의 생명을 지키지 못한 엄중함을 물어 향후에는 그 자리의 책임감과 무거움을 느끼고 이런 참사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확실한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이태원 참사를 수사하는 경찰청 특별수사본부는 출범 40여일이 지나도록 참사의 원인을 규명하지 못한 것은 물론, 그 책임자에 대한 구속수사나 송치에도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재난안전 컨트롤타워인 행정안전부 등 ‘윗선’ 수사도 제자리걸음이다. ‘셀프수사’ ‘부실수사’라는 평가가 나온다.

일각에서는 이태원 참사를 세월호 참사와 비견하곤 한다.

세월호 참사 당시에도 선박에 화물을 과적하는 업계 관례가 피해를 키웠지만, 정작 위기 상황에서 선장이 선원부터 구해야 한다는 국제적 관례는 지켜지지 않았다. 안전을 책임져야 할 이들이 제 역할을 하지 않은 채 관례를 선택적으로 취한 결과가 오늘날로 이어진 것이다.

이상민 장관의 말엔 다시 반박하고 싶다. 참사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해결하지 않은 문제’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권구성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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