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병주의역사유적탐방] 정몽주와 조광조, 그리고 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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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성리학의 수용과 보급에 공을 세운 정몽주(鄭夢周: 1337~1392), 16세기에 성리학을 바탕으로 개혁정치를 추진한 조광조(趙光祖: 1482~1519). 두 인물은 성리학의 수용과 실천에 공을 세운 학자라는 것 이외에 그 묘소가 용인에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정몽주와 조광조의 묘소가 있는 것을 인연으로 용인에는 이들을 배향하는 서원이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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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조는 1519년 기묘사화 때 중종이 내린 사약을 받고 38세 나이로 유배지인 전라도 능주(현 화순)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그의 묘소가 용인에 조성된 것은 한양 조씨 대대로 이어지는 묘소가 용인에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수지구 상현동의 조광조 묘소에는 조광조뿐 아니라 증조부, 조부, 부(父), 자(子) 등이 함께 모셔져 있다. 정몽주와 조광조의 묘소가 있는 것을 인연으로 용인에는 이들을 배향하는 서원이 세워졌다.
1576년(선조 9)에 건립된 충렬(忠烈)서원은 정몽주와 조광조의 덕망과 충절을 추모하기 위하여 세워졌다. 처음 죽전(竹田)서원이라 하였으며, 1609년(광해군 1) ‘충렬’이라는 편액을 하사받았다. 심곡(深谷)서원은 충렬서원에 배향되었던 조광조를 따로 모시면서 1605년(선조 38) 묘소 옆에 세운 서원이다. 1649년(효종 즉위년) 사액을 받았으며,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도 존속했음이 ‘고종실록’에 보인다. 현재 용인시는 ‘포은아트홀’, ‘포은대로’, ‘심곡로’ 등 정몽주와 조광조를 기억하는 명칭을 많이 사용하여, 두 인물을 오래도록 기억하게 하고 있다.
신병주 건국대 교수·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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