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계묘년, 정치개혁 원년을 기대하며
국민 외면하면 누구도 총선 승리 못해
선거 없는 내년 정치개혁 단초 잡아야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격동의 한 해가 저물고 있다. 박빙 승부 끝에 윤석열 정부가 출범했지만 여소야대 국면에 발목이 잡힌 한 해였다. 장관 후보자의 청문보고서는 번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고, 정쟁의 소용돌이 와중에 신임 대법관 임명동의 또한 제청 199일 만에 국회를 통과하며 대법관 최장 공백 사태를 불렀다. 새해 예산안마저 법정 처리시한(2일)은 물론 9일 정기국회 회기까지 지났는데도 타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예산안 처리만 놓고 보면 정치가 2014년 국회선진화법 이전으로 후퇴하면서 최악의 정치 실종 사태에 직면했다.
우울한 전망이지만 내년에도 답답한 상황이 개선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민주당은 절대의석을 확보한 의회 권력을 포기할 의사가 전혀 없고, 국민의힘은 집권여당 프리미엄을 노리고 국정과제 추진에 매진할 태세다. 여야에 통합과 타협의 DNA가 있었다면 새 정부 출범 이후 6개월 사이에 국무위원 해임건의안이 두 차례나 통과되는 파행도 없었을 것이다. 내년은 2024년 총선을 앞두고 지지층 결집을 노린 여야가 선명성 경쟁에 돌입할 수밖에 없는 시기라 상상도 못 할 극한 충돌이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스러울 따름이다.
이미 정치권 시계는 차기 총선에 맞춰 있다. 여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당원 100% 전대룰’ 논란은 총선 전초전 성격이 강하다. 정권 입장에서도 친윤 지도부를 앞세워 총선 승리 체제를 구축하겠다는 복안이다. 민주당 또한 윤석열 정부를 심판하는 중간평가로 활용하겠다며 프레임 명분을 축적하고 있다. 이재명 사법 리스크가 최대 변수이긴 하지만 180석 진보 야당의 위세는 여전하다.
하지만 현재로선 여야 누구도 총선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우선 여당은 국정과제로 승부를 보겠다는 심산이지만 거대 야당의 협조 없이는 입법의 관문조차 통과할 수 없다. 정권 출범 6개월 동안 89건의 정부 발의 법안 가운데 하나도 통과시키지 못한 정치력으로는 국정개혁의 동력을 살리기 어렵다. 민주당 또한 여소야대만 믿고 사사건건 발목을 잡다가는 민심의 역풍을 맞기 십상이다. 이재명 리더십은 벌써 일각이 와해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국민은 일상화한 충돌과 정치 실종에 극한 피로감을 표시하고 있다. 일례로 한국리서치 등 4개 여론조사 업체가 공동으로 실시하는 최근 전국지표조사(NBS)에서 중도층은 36%, 지지하는 정당이 없다는 ‘무당층’은 26%로 집계됐다. 윤석열 정부 출범 때만 해도 중도층 32%, 무당층은 19% 수준이었다. 여소야대 충돌이 지속되면서 통합과 협치를 중시하는 중도·무당층이 이반한 결과인데, 정치혐오의 확산이나 다름없다.
정치혐오를 극복할 길은 정치개혁밖에 없다. 21대 총선 당시 유권자의 심각한 정치혐오증을 유발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부터 손을 보고, 절반가량 유권자의 표를 무효로 만들고 승자독식 문화의 뿌리가 된 소선거구제 또한 수술대 위에 올려야 한다. 이처럼 정치개혁 과제는 이미 다 나와 있는데도 여야는 이해득실 앞에서 망설이고 있다. 마침 내년은 전국적 선거가 없는 해라서 여야 정치권이 선거제도 개혁을 의제로 정치개혁의 단초를 놓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희망만 가득해도 모자랄 새해를 앞두고 올해는 암울한 분위기가 심상찮다. 유례없는 경기침체 전망 속에 고금리·고물가·고환율 3고 위기까지 겹치면서 민생경제에 적색등이 켜졌고, 격화하는 미중 대립과 기약 없는 우크라이나 전쟁 등 외부 환경도 온통 우울한 소식뿐이다. 정치마저 올해의 극한 대립을 반복한다면 국민은 안식을 찾을 데가 없다. 부디 새해에는 국민이 정치를 걱정하지 않고 정치가 국민을 편안하게 만드는 그런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김정곤 뉴스부문장 jk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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