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매각 끊기면 반도체 장비 '헐값 처분' 불가피···내년엔 '반출'마저 막힐수도

진동영 기자 2022. 12. 16.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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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반도체 규제 후폭풍]
■中내 '반도체 장비 매각' 차질
"美 제재 타깃 될라" 中기업 제외
국내 업체들은 구매여력도 없어
불황 닥치는데 현금 확보 가시밭
美, 투자제한 등 규제수위 높일듯
中은 장비 해외유출 금지 가능성
"반도체 리쇼어링 유도 지원 시급"
[서울경제]

국내 반도체 업계가 미국의 중국 견제에 대한 불똥이 예상보다 빨리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양국 갈등으로 인한 피해를 애꿎은 우리 기업이 뒤집어쓸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당장 재무 건전성 확보를 위한 장비 매각 과정에서 제값을 못 받고 처분해야 하는 상황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이 부담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이 같은 상황을 국내 기업이나 정부로서는 해결할 방법 자체가 없다는 데 있다.

미국의 중국에 대한 제재는 하루 앞도 예상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국내 핵심 반도체 기업 A사가 제재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음에도 혹시 모를 분쟁에 대비해 중국 업체의 입찰 참여를 배제한 것도 이 같은 이유다. 업계 관계자는 “혹시라도 미국 제재의 ‘1호 타깃’이 될 수 있다는 부담으로 기업들이 장비 매각 등에서 보수적으로 계획을 세우는 분위기”라며 “지금 업계 상황은 소나기를 피하는 심정”이라고 말했다.

현재 반도체, 특히 삼성전자(005930)·SK하이닉스(000660)가 주력으로 삼는 메모리반도체의 불황이 깊어지면서 각 기업들은 불필요한 장비를 매각하고 투자를 줄이는 등 위기 대응책 실행에 나선 상황이다.

중국 시안에 낸드플래시, 쑤저우에 후공정 공장을 운영하는 삼성전자는 비상경영 체제 돌입을 선언하고 각종 비용 절감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중국 우시(D램)와 충칭(후공정)에서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SK하이닉스는 더욱 긴박하다. 회사는 지난 3분기 콘퍼런스콜에서 미국의 수출 제한 조치 대응 전략으로 “팹 매각, 장비 매각 혹은 장비를 한국으로 가지고 오는 등 다양한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4분기 영업손실을 막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SK하이닉스는 비용 최소화에 주력하고 있다.

대기업들은 장비를 헐값에 넘길 여력이 없고 마찬가지로 업계 불황의 한파를 맞고 있는 국내 업체들은 고가의 운송 비용을 들이면서 장비 구입에 투자할 상황이 아니다. 장비를 팔지 못하게 되면 현금 확보 측면의 어려움뿐 아니라 현지에서 장비를 보관하는 데 비용을 들여야 하는 등 다방면의 어려움이 나타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은 장비 수입 제한 리스크 때문에 구형 중고 장비라도 사들이려는 수요가 있다”며 “구공정 장비는 첨단 기술 추격에 대한 우려가 적은 만큼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처분할 수 있을 때 처분하는 게 가장 좋다”고 했다.

벌써부터 불확실성이 가중되고 있지만 더 큰 문제는 1년 뒤다. 미국의 중국 견제가 하루가 다르게 심화하는 상황에서 유예기간이 지난 뒤 국내 기업들의 중국 내 반도체 생산 활동이 어떤 위기를 겪을지 예상하기조차 어려워서다.

반도체 장비 핵심 수출 국가인 일본과 네덜란드는 최근 미국의 대중(對中) 반도체 장비 수출 제한 조치에 참여하기로 했다. 미국을 포함해 이들 세 나라는 세계 반도체 장비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한국은 유예기간 이후라도 미국의 제재가 직접적으로 한국 기업을 겨냥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지만 필요한 장비를 제때 들이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각국의 기술 패권 경쟁이 깊어지는 가운데 핵심 제조 기지에서 차차기 공정을 위한 첨단 장비를 들여올 수 없게 되면 현재 국내 업체가 쥔 ‘메모리 패권’도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 섞인 전망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미국의 장비 제재에 위협을 느낀 중국이 자국 내 반도체 장비를 해외로 유출하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이 경우 국내 기업들은 자칫 새 장비를 구입하지도, 기존 장비를 처분하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한국 정부와 기업은 별다른 조치를 취하기 어렵다. 기업 입장에서는 중국이 최대 매출처인 데다 중국 내 생산 기지에 이미 천문학적인 투자를 집행한 만큼 당장 철수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렇다고 글로벌 공급망의 핵심 파트너인 미국을 외면할 수도 없다. 미국·중국 간 갈등 양상으로 불거진 문제인 만큼 한국 정부가 할 수 있는 역할도 제한적이다.

업계에서는 장기적으로 중국 내 사업 의존도를 축소하면서 국내 또는 미국으로 생산 기지를 확장하는 전략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가장 좋은 것은 국내로의 ‘유턴’이지만 이를 위해서는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국내 지원 법안 통과가 선결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중휘 인천대 임베디드시스템공학과 교수는 “기업 입장에서는 생산 기지를 옮기려고 해도 혜택을 많이 주는 국가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며 “‘리쇼어링(해외 진출 기업의 국내 복귀)’을 유도하려면 반도체특별법 등을 통해 업계의 숨통을 과감하게 틔워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진동영 기자 jin@sedaily.com강해령 기자 h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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