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국방비 지출 세계 3위로... 중국 겨냥해 안보정책 '대전환'
방위비 5년 후 2배·반격 능력 보유 명시
중국 "최대한의 도전" 표현 강화
5년 뒤 일본이 미국과 중국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방위비(국방비)를 많이 쓰는 나라가 된다. 방어에 치중했던 안보 전략은 적의 본토를 직접 타격할 수 있도록 바뀐다. ‘최소한의 무력 사용’이라는 ‘전수방위’ 원칙을 사실상 허무는 정책 전환이다.
중국, 북한, 러시아의 안보 위협이 누적되며 일본 여론이 무르익었고, 중국 견제에 실질적 힘을 보태길 바라는 미국의 의사가 결합한 결과이다.
안보 3문서 개정... 방위비 세계 9위→3위로
일본 정부는 16일 각의(국무회의)를 열어 국가 안보 정책 지침인 ‘국가안전보장전략(국가안보전략)’과 ‘국가방위전략’ ‘방위력정비계획’ 등 이른바 ‘안보 3문서’의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가장 상위문서인 국가안보전략에는 방위 예산을 점차 늘려 2027년엔 현재 국내총생산(GDP)의 2%에 달하도록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은 자위를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무력만 보유한다는 방침에 따라 군비 증강에 소극적이었다. 방위 예산은 GDP의 1% 이내로 묶어 뒀다. 현재 5조~6조 엔인 연간 방위 예산은 내년도에 6조8,000억 엔이 될 것이 유력하고, 5년 후엔 11조 엔에 달할 전망이다.
이 목표가 실현되면 지난해 기준 세계 9위였던 일본의 군비 지출액은 5년 후 미국 8,010억 달러(1,049조 원), 중국 2,930억 달러(384조 원)에 이어 3위로 뛰어오른다. 일본의 방위비는 지난해 환율 기준 541억 달러(71조 원)로 9위, 한국은 502억 달러(66조 원)로 10위였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안보 3문서 개정이 “전후 안보 정책을 크게 전환하는 것”이라고 선언하면서도, 과도한 군비 확장이 평화헌법의 취지에 어긋난다는 비판을 의식한 듯 “비핵 3원칙과 전수방위 견지, 평화국가로서의 일본의 행보는 앞으로도 불변”이라고 강조했다.
반격 능력 보유 명시... 장사정 미사일 배치 예정
일본은 대폭 늘린 방위비로 ‘반격 능력(적 기지 공격 능력)’의 수단인 장사정 미사일을 구매·개발하는 데 쓸 방침이다. 개정 국가안보전략은 “스탠드오프 방위능력 등을 활용한 반격 능력은 일본에 대한 침공을 억제하는 열쇠가 된다”, “상대의 추가 무력 공격을 막기 위해 유효한 반격을 가하는 능력을 보유할 필요가 있다”며 반격 능력의 보유 방침을 명시했다. 우선 미국산 토마호크 미사일 등을 구매하고 ‘12식지대함유도탄’ 개량형과 도서 방위용 고속활공탄, 극초음속 유도탄 등 일본산 장사정 미사일을 개발해 배치한다는 것이 일본 정부의 계획이다.
일본은 유사시 북한 등 한반도를 대상으로 반격 능력을 행사할 가능성도 거론했다. 우리 정부는 “한반도 안보 및 우리의 국익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은 사전에 우리와의 긴밀한 협의 및 동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단호히 경고했으나, 일본 정부 관계자는 외신 대상 브리핑에서 “한국 정부의 동의나 허가가 필요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반격 능력을 발동할 때는 아주 절박하고 긴급한 상황이라서 사전 협의를 할 여유가 없을 것”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다만 “정보 수집과 분석이라는 관점에서 미국 및 한국과 필요한 연계를 할 수는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안보 정책 변화는 중국 겨냥한 것... "최대의 전략적 도전"
앞으로 5년 동안의 무기 구입 계획 등을 정리한 ‘방위력정비계획’에 따르면, 일본은 미사일 요격 시스템에 공급할 탄약을 대량 구매하고 공격형 무인기를 구매·개발하는 등 ‘전쟁이 일어날 경우 전투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정비하는 데 방위비의 상당부분을 사용할 계획이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에서 양국의 탄약 부족으로 무인기의 활약이 도드라진 점을 참고했다. 우주와 사이버 분야 방위력도 강화하고, 대만과 가까운 난세이제도 등의 민간 공항·항만을 전투기 이착륙이 가능하도록 정비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일본 안보 정책의 근본적 변화는 중국을 염두에 둔 것이다. 개정 국가안보전략은 안보 정책 수립의 배경이 되는 주변국 정세에 대한 서술 순서를 바꿨다. 2013년 작성된 현행 문서에선 북한, 중국의 순으로 기술했지만 이번에는 중국을 맨 앞으로 내세웠다. 중국을 겨냥한 “국제사회의 우려”라는 표현은 “지금까지 없었던 최대의 전략적 도전”으로 교체했다. 북한은 “중대하고 임박한 위협”이라고 기술했고, 한국은 “매우 중요한 이웃나라”라고 불렀다. 이는 올해 발간된 방위백서와 크게 다르지 않은 표현이다.
반격 능력 보유 명분으로 일본 정부는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 등 무력 도발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중국 미사일 공격 억지 목적이 더 강하다. 중국이 몇 년 안에 대만을 무력으로 통일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출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일본과의 방위 협력이 절실한 미국의 이해가 반영됐다.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16일(현지시간) 백악관 성명을 통해 이번 문서 개정이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을 강화하고 방어하기 위한 대담하고 역사적인 조치”라고 평가하고, “방위 투자를 의미있는 폭으로 증액하기로 한 일본의 목표에 따라 미국과 일본의 동맹이 강화하고 현대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중국 측은 안보 문서 개정에 “결연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아시아태평양과 세계의 평화와 안정은 각국 발전의 기회”라고 규정하면서 “일본은 사실을 외면한 채 중국에 계속 먹칠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중국의 위협을 과장해 자신들의 군비 확장 핑계를 찾는 시도는 성공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중국에 '억지력' 발휘할까 논란
일본의 외교·안보 전문가 다수는 “방어 전략만으로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며 이번 정책 전환은 중국의 부상,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등 격변하는 안보 환경에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입을 모은다.
다만 기대한 만큼의 중국 견제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린다. 일각에선 동북아시아의 군사적 긴장만 고조시킬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헌법학자들로 구성된 ‘평화구상제언회의’는 15일 “개정 안보 3문서에는 헌법에서 인정하지 않는 내용이 담겨 있다”며 “‘억지력’만으로 전쟁을 막지 못한다”고 호소했다.
도쿄= 최진주 특파원 parisc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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