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혁훈의 아그리젠토] 농식품 모태펀드 위기
요즘 들어 농업계의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일까요. 저는 생각지 못했던 인재들이 농업계로 뛰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꼽고 싶습니다. 엊그제 줌으로 대화를 나눈 여성 창업가도 그중 한 명입니다. 그는 한국에서 민족사관고를 졸업하고 미국 MIT에서 수학과 컴퓨터공학으로 학·석사를 취득한 뒤 서부 명문인 워싱턴주립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런 그가 지금 미국 뉴욕주 온실에서 딸기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직접 개발한 수확 로봇을 실증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제 곧 미국에서 최초로 로봇이 수확한 딸기를 현지 마트에 내놓을 생각에 그의 표정엔 설렘이 가득했습니다.
지난가을 세계지식포럼에 참가했던 이인종 미국 바워리파밍 최고기술경영자(CTO)도 있습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 컴퓨터공학과 교수를 거쳐 삼성전자와 구글에서 각각 부사장을 지낸 그는 작년 초 미국 버티컬팜(수직농장) 스타트업으로 옮겼습니다. 굴지의 대기업을 뒤로하고 농업 스타트업으로 옮긴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그는 "앞으로 농업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산업이 될 것"이라고 말하더군요.
우리나라에서도 예외가 아닙니다. 전 세계 농축수산물에 대한 작황·가격 등 데이터를 기반으로 글로벌 교역을 대행하는 스타트업 트릿지는 올해 상반기 투자회사로부터 인정받은 기업가치가 3조6000억원에 달했습니다. 농민들을 위한 디지털 플랫폼 앱을 운영하는 그린랩스는 서비스 출시 2년 만에 국내에서 70만명 이상의 회원을 모았습니다. 조만간 기업가치가 1조원을 돌파할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두 회사 모두 창업자는 공과대학 출신입니다.
그런데 스타트업이 인재들만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요. 그다음으로 중요한 게 바로 자금입니다. 최근 수년간 농식품 분야에서 성공 스타트업이 많이 배출된 데는 정부와 민간의 특별한 노력이 있었던 덕분입니다. 바로 모태펀드입니다. 모태(母胎)라는 말에서도 느껴지듯이 정부가 아이를 낳는 어머니와 같이 시장에 자금을 제공하고, 그에 상응하는 자금을 민간이 모아서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펀드입니다. 예컨대 정부가 100억원을 대고 벤처캐피털이 100억원을 모아 200억원을 투자하는 방식입니다.
이 모태펀드의 자금을 받아 성장한 스타트업 중에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곳이 아주 많습니다. 마켓컬리, 프레시지, 팜에이트, 엔씽, 더맘마, 제주맥주, 우듬지팜 등이 대표적이죠.
어느덧 이 농식품 모태펀드가 도입된 지 12년이 됐습니다. 그동안 약 600개 기업에 1조2000억원을 투자함으로써 이 자금이 스타트업으로 이어져 선순환을 일으키는 벤처 투자 생태계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난데없이 정부가 농식품 모태펀드 관리 기관을 기존 농업정책보험금융원에서 일반 모태펀드를 맡고 있는 한국벤처투자로 바꾸려고 합니다. 관리업무 효율화와 중복업무 통합을 통한 비용 절감이 목적이라고 합니다. 말은 그럴듯하지만 그런 조직 개편이 농식품 벤처 생태계의 발전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예산당국의 업무 목표 달성을 위한 것인지 한 번 잘 생각해봐야 합니다. 스타트업들은 특수성이 강한 농식품 벤처 투자 생태계가 위축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습니다.
모처럼의 농식품산업 중흥의 길에 당국이 재를 뿌리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정혁훈 농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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