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수사·사법기관이 두 번 살려준 살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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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에 처해도 할 말 없는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질렀다."
지난 15일 신변 보호를 받던 피해자 가족을 살해한 이석준의 2심 선고를 마치면서 재판부가 지적한 말이다.
경찰이 이석준을 풀어주고 법원이 사형 대신 무기징역을 선고하며 이석준은 두 번 살아났다.
이석준은 검찰 조사에서 "상황극이었다" "합의금을 받으려 (피해자가) 거짓 신고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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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에 처해도 할 말 없는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질렀다.”
지난 15일 신변 보호를 받던 피해자 가족을 살해한 이석준의 2심 선고를 마치면서 재판부가 지적한 말이다. 이석준은 작년 12월 5일 A씨를 감금하고 성폭행했다. 당시 A씨의 부모가 신고해 경찰이 출동했지만, 경찰은 A씨는 긴급 체포 요건이 아니라며 이석준을 풀어줬다. 앙심을 품은 이석준은 며칠 뒤 흥신소에 50만원을 주고 집 주소를 알아냈다. A씨 어머니와 당시 13살이던 동생을 흉기로 찔러, A씨 어머니는 숨졌고 동생은 중상을 입었다.
1·2심은 이석준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검찰은 사형을 구형(求刑)했지만 국내에서 사형제가 사실상 폐지된 점을 고려했다고 한다. 이석준이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이 확정되면 가석방으로 풀려날 수 있다. 형법은 무기징역 재소자가 모범적인 수형 생활을 할 경우 20년 후 가석방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재판부는 “살인은 생명을 빼앗는 최악의 범죄”라면서도 “사형을 선고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지만 그것은 입법으로 해결할 문제”라고 했다.
유족은 재판부 판단에 분노했다. 집에서 가족이 살해당하는 장면을 지켜본 고통에 이석준이 가석방으로 나와 보복할지 모른다는 두려움까지 더해졌다. 유족은 작년 12월 “이석준이 며칠간 치밀하게 범행을 계획했다”며 “고통 속에 죽은 어머니와 사경을 헤매는 동생의 한을 풀도록 이석준을 사형시켜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을 올렸다. 유족은 지난 6월 1심 선고 후 “높은 분의 자녀나 가족이 당했다면 이런 판결이 나왔겠느냐”며 “피해자가 왜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느냐”고 했다.
인권 최후의 보루인 법원 판결 후에도 피해자가 두렵고 힘든 감정이 든다면 분명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법원은 현재 법원장 후보 추천제·고법부장 법원장 배제 등 사법 행정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고 있다. 대법원장 권한을 줄이고 재판 독립을 강화하며 약자 인권을 보호한다는 취지는 좋으나 결국 몇몇 요직 인사를 놓고 피아(彼我)를 구별하며 싸우는 모습이다. 법원이 갈라진 사이 제2, 제3의 이석준 사건은 계속 나오고 있다. 사법제도 개선 전에 피해자부터 살피는 노력이 중요하다.
경찰이 이석준을 풀어주고 법원이 사형 대신 무기징역을 선고하며 이석준은 두 번 살아났다. 경찰이 이석준의 신병을 확보했다면 흥신소에서 피해자 집 주소를 찾아 범행을 저지르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이석준은 검찰 조사에서 “상황극이었다” “합의금을 받으려 (피해자가) 거짓 신고했다”고 말했다. 검찰이 “유족의 감정을 감히 말하는 것이 죄송스러운 마음”이라고 말할 정도로 잔혹한 범죄를 저지른 이석준이 얼마나 반성할지 의문이다. 피해자는 국가에 보호를 요청했지만 보호받지 못했다. 이석준 사건뿐만이 아니다. 수사·사법기관의 무관심으로 고통받는 피해자들의 얼굴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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