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패’에서 ‘창’으로…일본 방위정책 대전환
자의적 판단으로 반격 가능성, 군비경쟁 우려
안보 관련 3대 문서(국가안전보장전략, 국가방위전략, 방위력정비계획)의 개정으로 전후 70년 넘게 이어졌던 일본의 방위정책은 대전환을 맞았다.
적을 공격하는 능력은 미국에 맡기면서 ‘방패’ 역할에만 주력해 온 일본은 유사시 중국과 북한 등을 겨냥한 ‘창’의 역할을 분담하게 된다. 헌법을 개정한 것은 아니지만 공격을 받을 경우에만 방위력을 행사한다는 전수방위 원칙을 사실상 허물고 동북아 군비경쟁을 부추긴다는 비판이 나온다.
일본 집권 자민당은 아베 신조 전 총리 시절부터 미사일 공격을 받기 전 상대국의 발사대나 기지를 타격하는 ‘적기지 공격 능력’ 보유를 적극 추진해왔다. 북한과 중국이 극초음속 미사일을 개발하는 등 미사일 기술을 고도화하는 상황에서 기존의 방어 위주 전략은 한계가 있다는 명분에서다. 그러나 평화헌법의 전수방위 원칙을 위배하는 ‘선제공격’ 아니냐는 논란이 이어지면서 자민당은 지난 4월 명칭을 ‘반격 능력’으로 바꿔 보유하자고 정부에 제안했다. 자민당은 이 같은 제안을 지난달 6월 발표한 참의원 선거 공약에 포함시켰다.
일본은 반격능력 보유가 전수방위 개념을 변경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사실상 유사시 선제 공격 가능성을 열어놓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일본 정부는 반격능력의 행사 요건으로 ‘존립 위협 및 국민생명·자유에 명확한 위험 발생’, ‘국민을 지키기 위한 다른 수단의 부존재’, ‘필요최소한의 행사’를 제시하고 있다. 공격 대상이나 공격을 받았다고 판단하는 시점을 언제로 잡을지는 개별적으로 판단한다는 방침이다. 자의적 판단에 따라 공격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구도인 셈이다.
한반도 유사시 일본 자위대가 개입하는 상황이 벌어질 우려도 제기된다. 자민당과의 3대 문서 개정 협의 작업에 참여했던 연립여당 공명당의 하마치 마사카즈 의원은 지난 2일 반격 능력 행사와 관련해 “한반도 유사시 (북한이) 일본에 미사일을 발사할 징후가 있는 가운데 미군 함정이 일격을 당하면 (일본의) 존립위기 사태가 아니겠냐”고 밝힌 바 있다. 미군이 북한의 공격을 받을 경우 집단적 자위권(밀접한 국가가 공격을 받으면 자국이 직접 공격받지 않았더라도 무력을 쓸 권리)을 행사하기 위해 반격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윤석정 국립외교원 연구교수는“북한, 중국의 무력 공격에 의한 일본 유사는 한반도 유사, 대만 유사와 연계돼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며 “일본의 적기지 공격 옵션의 확보는 지역 분쟁에 대한 일본의 군사적 역할이 확대되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밝혔다. 윤 교수는 “적기지 공격을 반격 사례에 제한하더라도 자위대가 능력 차원에서는 선제공격도 가능해지는 바, 동북아 군비 경쟁이 한층 가속화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일본이 미군의 ‘창’에 의존해 ‘방패’ 역할만 하던 구도에서 벗어나 창의 역할을 강화하겠다고 선언하면서 미·일 동맹에서 양국의 역할 분담도조정될 전망이다.
중국을 겨냥한 자위대 역량 강화가 군비경쟁을 초래해 지역의 불안을 더 높일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마이니치신문은 “미국과 함께 대중억제를 목표로 하는 자위대의 능력 향상은 긴장을 높이는 리스크도 수반한다”며 “군사력 강화가 오히려 타국의 군확을 초래하는 ‘안전보장의 딜레마’에 빠지는 것이 우려된다. 무력 충돌이 일어나면 난세이 제도의 자위대 부대나 보급 거점 등은 먼저 공격될 우려가 있다”고 보도했다.
이날 안보문서 개정 각의 결정을 앞두고 시민 300여명은 총리 관저 앞에서 반대 집회를 열고 “전쟁 준비는 헌법 위반” “마음대로 정하지 말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일본 헌법학자들로 구성된 ‘평화 이니셔티브 제안위원회’는 전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방력 강화는 주변국과의 군비경쟁으로 이어지고 전쟁의 위험을 증가시킬 것”이라며 “지금은 헌법 9조에 규정된 평화주의 원칙으로 돌아갈 때”라고 밝혔다.
일본 국민들 사이에선 방위력 강화에 찬성하는 견해가 우세하다. 지난달 중순 요미우리-미국 갤럽 공동조사에서 일본 국민 68%가 방위력 강화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한다는 비율은 27%였다.
방위비 증강을 위한 증세가 기시가 후미오 내각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기시다 내각은 추가로 필요한 방위비의 4분의3은 세출개혁으로, 나머지 4분의1은 증세를 통해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기시다 총리는 이날 각의 후 기자회견에서도 안정적인 방위비 재원 마련을 위해서는 증세가 수반돼야 한다며 국민의 동의를 구했다.그러나 야당은 물론이고 자민당 내부에서조차 반발이 거세지면서 증세를 강행할 경우 정권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는 상황이다.
자민·공명당은 이날 정리한 2023년도 세법개정안에서 법인세, 소득세, 담배세를 증세해 방위비 재원을 조달한다는 내용을 담았지만 실시 시기나 세율 등 세부 사항은 명시하지 않았다.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지난 13일 자민당 의원 20여명은 회의를 열어 “(증세방침은) 내각불신임안을 받을 만한 것”이라고 의견을 모았다. 논란이 이어지자 일본 정부는 세율과 시행 시기 등 구체적 내용은 내년에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https://www.khan.co.kr/world/japan/article/202212161706001
https://www.khan.co.kr/world/america/article/202212161213001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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