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더 맛있어서 ‘콩닥 콩닥’[지극히 味적인 시장]
이번에는 대전광역시다. 인천, 부산, 광주, 울산 지난번 대구에 이어 유일하게 가지 않던 광역시다. 계절마다 각 지역에서 저마다의 맛을 뽐내기에 대전은 미루고 미뤘다. 오일장 시리즈 세 번째 책 마감을 앞두고 있다. 해를 넘기면 더는 안 될 듯싶어 다녀왔다. 27년 동안 지방 출장을 다녔다. 다닌 거리가 100만㎞ 가까이거나 넘지 않았을까 싶다. 사통팔달로 뚫려 있는 지금의 고속도로와 달리 과거에는 경상도와 전라도를 가려면 대전을 지나는 것이 필수였다. 내려가던 길이나 올라오는 길에 대전 표지판이 나타나면 “이제 반 왔네”였다. 지역을 다니는 동안 가는 곳마다 추억을 쌓았지만, 오가던 길에 있던 대전은 그냥 ‘반’의 의미였다.
대전은 역 앞 중앙시장이 규모도 크고 먹거리, 볼거리가 많다. 사람이 모이면 거래가 필연적으로 따라오기에 시장이 선다. 오가는 사람의 수에 따라 시장 규모가 결정된다. 기차 시간이 남는다면 빵 사는 줄에 동참하는 것보다는 시장 구경을 한다. 서울 종로 광장시장 못지않은 먹거리가 가득한 곳이 중앙시장이다. 사람이 많으면 비정기 시장은 정기 시장, 즉 상설시장이 된다. 그 정도 규모가 되지 않으면 여전히 오일장이 선다. 대전의 대표 오일장은 두 곳이다. 신탄진 오일장(3, 8일장)과 유성 오일장(4, 9일장)이다. 원래는 신탄진장, 유성장 두 개 모두 보고 올 생각이었지만, 음식 강연으로 일정이 미뤄지면서 유성장만 봤다.
겨우내 입맛 돋우는 쌉쌀한 씀바귀
찬바람 맞아야 단맛나는 고구마
근처 공주에서 나는 밤도 곳곳에
규모가 커 사람도 볼거리도 많다
햇메밀의 계절에 찾은 냉면집
꿩이나 닭 육수에 잘익은 동치미
면은 후루룩 , 김치는 아삭아삭
고소한 해콩으로 만든 콩국수
여름엔 그냥 시원함뿐이지만
겨울엔 진짜 ‘맛’…먹어봐야 안다
도시의 오일장은 규모가 있다. 군 단위의 장보다 몇 배나 크다. 오가는 사람이 많으니 사람 구경은 실컷 한다. 장터에 파는 사람만 있으면 구경하는 재미가 없다. 유성장은 시장이라고는 하지만 오일장이 서야 비로소 시장 티가 난다. 유성장옥이라는 상가건물이 있어도 장이 서야 시장다운 모양새를 갖춘다. 장옥을 기점으로 세 개의 기다란 골목 가득 장이 펼쳐진다. 오가는 이도 많아 시장 보는 재미가 있다. 대전에서 나는 것은 공주나 금산 등지에서 온 것들도 꽤 있다. 시장 구경하는 사이 어디서 많이 본 나물이 눈에 들어왔다. 갸우뚱하면서 빤히 보다가 할머니에게 여쭸다. “속대나물(할머니 말씀이 명확하지는 않았다), 근데 무지 써.” “이름이 뭐라고요?” “속대. 속대나물 무치면 무지 쓴데 맛있어.” 집으로 돌아와 쓴맛 속대나물을 검색했다. 나오는 것은 대나무나 배추속대만 나왔다. 힌트는 쓴맛! 어디서 많이 본 듯하고 쓴맛이 난다? 씀바귀 종류이지 싶었다. 검색하니 씀바귀가 맞았다. 씀바귀 종류 중에서 노란 꽃을 피우는 노랑선씀바귀다. 시장 내 두어 곳에서 팔고 있었다. 계절을 당긴 달래나 냉이보다는 더 입맛을 당길 듯싶었다. 유성에서 조금만 더 가면 공주이니 밤 파는 곳도 많았다. 군밤이나 생밤을 시식하고 있었다. 달곰한 공주 밤을 오물오물 씹다 보면 만나는 것이 고구마다. 고구마는 전국에서 난다. 밤이나 고구마는 갓 수확한 것이 가장 맛없다. 바로 수확한 것은 전분이 많아 단맛이 적다. 씹고 또 씹어야 겨우 단맛이 난다. 가을에 산속의 햇밤을 주우면 산에 난 것이라 맛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도 맛보면 제맛이 안 난다. 고구마 또한 그렇다. 수확하고 나서 쨍한 추위를 만났을 때 비로소 단맛이 난다. 지난겨울에 맛봤던 촉촉한 고구마 생각하고 사보면 그 모양도, 그 맛도 아니다. 가을에 수확해 일정 기간 보관을 해야 비로소 맛이 난다. 몸체를 유지하던 전분이 당화되면서 단맛이 돈다. 작물에 따라 맛도, 먹는 시기도 달라진다. 오일장보다 좀 더 ‘지역스러운’ 상품을 사고 싶다면 로컬푸드 매장을 추천한다. 유성장에서 차로 10여분 거리에 규모가 제법 있는 로컬푸드 매장이 있다. 충남지역에서 생산한 농산물과 가공품을 만날 수 있다. 지역에서 나는 다양한 유제품이 일반 로컬푸드 매장보다 다양하다. 쌀을 이용한 빵도 맛있지만, 특히 홍성의 팥으로 만든 단팥빵과 공주 밤을 넣어 만든 빵이 일품이다. 올라오는 길에 먹을 요량으로 산 꼬마 김밥 또한 맛있다. 로컬푸드 파머스161 마르쉐 0507-1349-1610
겨울은 메밀의 계절이다. 여기저기 햇메밀 이야기가 쏟아져 나올 때가 지금이다. 메밀로 만드는 음식에는 전, 전병, 막국수, 소바(일본식 메밀국수), 냉면 등이 있다. 막국수는 강원도에서 많이 먹는다. 메밀이 재료가 되는 냉면을 파는 식당은 서울에 몰려 있다. 이름은 평양냉면이지만 맛을 보면 서울냉면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다. 대전에도 오랫동안 사랑받는 냉면집이 있다. 숯골원냉면이다. 꿩 육수 베이스로 한 것과 닭 육수로 한 냉면 두 가지를 낸다. 거기에 잘 익은 동치미 육수를 더했다. 냉면을 주문하면 동치미 잘게 저민 것이 같이 나온다. 일반적인 냉면집의 살짝 빨갛게 물든 무 김치와는 다른 모양새다. 그냥 먹어도 좋고 면과 함께 먹으면 더 좋다. 아삭아삭 동치미를 먹다 보면 어느새 면이 사라져 있다. 혼자면 만두 반 접시도 가능하다. 만두는 필수다. 먹어보면 안다. 숯골원냉면 본점 (042)861-3287
겨울이 메밀의 계절이라면 콩 또한 그렇다. 예전에 <어쩌다 어른>에 나가서 이런 말을 했다. “가을에 가장 맛있는 것은 ‘쌀’”이라고 말이다. 가을에 촬영해서 겨울에 나갔다. 가을에 쌀을 생각하는 한편으로는 겨울에 가장 맛있는 것이 콩이라고도 생각했었다. 비록 방송에서는 말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경기 파주시의 장단콩 축제도 11월 말에 열린다. 겨울에 해콩으로 만든 두부는 맛있다. 콩의 에너지를 가득 담았기에 구수함을 말로 형용하기 어렵다. 두부를 입안 가득 넣으면 콩 향이 은은하게 퍼진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해콩을 즐기는 방법이다. 대전에서는 해콩에 다르게 접근한다. 지역을 다니면서 콩이 가장 맛날 때 콩국수는 왜 안 파나? 생각했다. 햇메밀이 나오면 너도나도 막국수와 냉면을 판매하는데 콩국수는 왜 여름에만 하는지 궁금했다. 한편으로 혹시나 하며 찾아봤다. 콩국수는 더위가 한풀 꺾이고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시즌 아웃. 내년을 기약해야 한다. 콩이 해를 넘겨 구수함이 사라질 즈음 여름에 시원한 맛으로만 먹는다. 한겨울 대전 시내 한복판에서 콩국수 파는 곳을 찾았다. 국내산 해콩을 불리고 삶아서 콩물을 낸다. 겨울 시작 즈음에 콩국수를 앞에 두니 어쩐지 낯설어서 심장은 두근두근. 콩물을 한 숟가락 떠서 맛보자 예상대로 그윽하게, 우아하게 고소한 콩 향기가 입안에 퍼진다. 같이 나온 파김치가 콩국수의 고소함을 탄탄하게 받친다. 여름에는 결코 맛보지 못한 콩국수 맛이었다. 여름에 먹는 콩국수는 시원함이 장점이라면 겨울에 먹는 콩국수는 ‘맛’이다. 겨울 콩국수를 먹어보지 않았다면 믿지 못할 것이다. 겨울에도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는 이라면 꼭 한 번 맛보기를 권한다. 국수 좋아하는 이 또한 먹어봐야 한다. 겨울에 먹는 냉면이 맛있다면 콩국수 또한 그렇다. 오로지 (042)533-4987
▶ 김진영
매주 식재료를 찾아 길을 떠난다. 먹거리에 진심인 만렙의 27년차 그린랩스 팜모닝 소속 식품 MD.
김진영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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