짠물 코스피에도 '꿀물 배당주' 있다
비용도 따져야 진짜 '옥석'
美 인건비 아끼고 주주환원
비용 8% 늘릴때 배당 12% 쑥
韓 직원만 챙기고, 주주 외면
비용 24% 늘고 배당 6% 뚝
에쓰오일·SKT·LG유플
배당증가율 판관비 웃돌아
매출도 좋아 외국인 순매수
1980년대 초까지 국민들은 버스에 타기 위해 50원짜리 회수권을 냈다. 40여 년이 지난 올해 2월 '국민주'라는 카카오는 작년 실적 기준 주당 배당금으로 53원을 결정한다. 작년 말 기준 배당수익률 0.05%. 제로금리(기준금리 0%대) 시절에도 가당치 않은 배당률이다.
당시 순이익 대비 배당금을 뜻하는 배당성향 역시 1.6%에 그쳤다.
배당성향은 상장사의 배당 의지를 뜻하는데 카카오가 주주를 대하는 진심을 느끼게 하는 수치다. 작년 코스피 평균 배당성향이 35.4%다.
증권사들은 올해 실적 기준으로 내년 카카오의 주당 배당금을 1원 오른 54원으로 예상하고 있다. 주주들을 홀대하지만 카카오는 직원들에겐 아낌없이 베푼다. 카카오의 판매관리비(판관비)는 작년 3분기까지 3조8626억원이었는데 올해 같은 기간 4조8527억원으로 1년 새 25.6%나 늘었다. 이는 같은 기간 삼성전자의 판관비 증가율(17.1%)보다도 높다. 판관비는 직원 인건비(급여)와 복리후생비, 광고선전비, 감가상각비 등으로 구성된다.
인건비가 판관비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간접적으로 판관비 증가율과 배당 증가율을 비교해보면 해당 상장사가 직원과 주주 중 누구를 더 중시하는지 알 수 있다. 카카오의 배당금 증가율 1.9%는 판관비 증가율(25.6%)에 비교하기 부끄러울 정도다. 명부에서 이름만 확인 가능한 주주보다는 매일 마주치는 임직원에게 집중하겠다는 뜻이다. 속 편한 결정이지만 주주들이 좋아할 리 없다. 외국인은 올 들어 12월 12일까지 카카오 주식을 1조6108억원어치 순매도했다.
'짠 음식'을 줄여야 몸에 좋듯 자산을 지키기 위해 외국인이 카카오처럼 배당에 짠 상장사 주식을 팔아치우고 있는 것이다. 고금리 상황에서 은행에 돈만 맡겨도 1년 후 5%의 금리를 약속하는 요즘 같은 시대엔 더욱 그렇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는 올 들어 판관비 증가율을 가까스로 9.9%로 맞췄다. 인건비를 두 자릿수로 올리지 않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그러나 올해 배당금을 작년보다 10.4% 늘려 배당 증가율은 두 자릿수다. 미국 시가총액 상위 종목 중에는 이처럼 인건비보다 배당을 늘린 주주친화적 기업들이 많다.
'다우니' '페브리즈' '질레트'와 같은 필수 소비재 브랜드로 유명한 프록터앤드갬블은 경기 침체가 예상되자 비용은 줄인 반면 배당은 늘렸다.
이 회사는 판관비를 1년 새 4.1%나 줄여 남는 순익으로 주당 배당금을 5.9% 늘려 주주들을 떠나지 못하도록 잡고 있다.
이런 식으로 한국과 미국 주식시장 시총 상위 순서대로 배당을 주는 상장사 톱10의 평균 판관비 증가율과 배당금 증가율을 비교해봤다.
판관비는 작년과 올해 3분기 누적 기준이며 배당금은 올해 증권사 3곳 이상 추정치 평균값이 작년 주당 배당금보다 얼마나 올랐는지를 살폈다.
미국 상장사의 경우 최근 연간 회계기준 판관비 증가율과 연간 배당금 수치를 적용했다. 애플은 9월 말 결산법인이다.
한국 10대 상장사들은 1년 새 판관비를 평균 23.7% 늘린 탓에 배당을 6.1% 줄였다. 미국은 비용 증가율이 8.3%에 그친 것을 바탕으로 배당을 11.9% 늘렸다. 글로벌 긴축의 시대에 투자자들이 어느 시장을 택할지가 자명해 보인다. 경기 하락 국면에서 주식투자의 매력도가 떨어지는 와중에 상장사들은 비용 통제 능력과 향후 성장성은 물론 은행 금리보다 나은 배당을 줘야 투자자들에게 선택받을 수 있다.
국내 시총 상위 100종목 중에서 이 같은 조건에 부합하는 기업을 찾아봤는데 딱 3곳으로 추려졌다. 일단 지난 12일 종가와 올해 예상 배당금 기준의 배당수익률이 5%를 넘어야 한다. 여기서 금융사와 지주사를 제외했다.
금융사와 지주사를 제외한 것은 이들은 매출보다 순익이 중요하며 배당을 노린 단기 투자자들이 주로 몰리기 때문이다.
매출과 배당이 동시에 성장할 수 있는 국내 상장사를 찾자는 취지다.
이에 따라 올 4분기 매출이 작년 4분기보다 늘어나면서 올해 외국인이 순매수한 종목으로 대상을 더 좁혔다.
대표적인 정유주 에쓰오일은 판관비가 33% 증가했지만 배당은 76%나 늘릴 예정이다. 배당수익률은 7.74%로 추정되며, 이는 시중은행 예금 금리 5%보다도 2%포인트 이상 높은 수치다. 에쓰오일은 미국 '엑손모빌'의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유가 등락에 따라 춤추는 석유 사업 비중을 줄이고, 성장 잠재력이 있는 화학업종을 높이고 있다. 석유화학 사업은 원유를 원재료로 에틸렌·프로필렌과 같은 석유화학 상품을 만들기 때문에 유가가 내려갈수록 수익성이 높아진다. 에쓰오일은 지속적으로 고유가가 유지되기 힘들다고 판단해 9조2000억원 규모의 '샤힌 프로젝트'를 차기 성장동력으로 내세웠다. 특히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의 방한에 발맞춰 이 사업에 본격 착수하겠다고 밝혀 투자자들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했다.
아람코를 통해 들어오는 원유에 이어 에틸렌까지 수직계열화해 원가를 낮추겠다는 전략도 숨어 있다. 지금은 이런 화학제품 매출 비중이 12%이지만 2026년에는 25%까지 올라간다는 계산이 나온다. 유가가 떨어지면 성장이 멈추면서 배당도 못 주는 정유사의 한계를 벗어나겠다는 뜻이다.
실제 에쓰오일은 2020년 유가 폭락으로 1조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바 있다. 당연히 주주들에게 돌아갈 배당금도 없었다. 2021년 유가가 다시 오르자 순이익의 30%가 넘는 배당금을 지급하며 다시 주주 친화 기업으로 돌아섰다. 외국인은 에쓰오일이 화학 비중을 늘려 지속적으로 배당할 수 있다고 보고, 올해 3038억원 순매수에 나섰다.
국내외 경기가 꺾이는 신호가 나타나면서 통신업종과 같은 경기방어주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SK텔레콤은 국내 1위 사업자로서 플랫폼 기업으로 전환하겠다면서 해외 진출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 상장사가 공을 들이는 플랫폼은 증강현실과 가상현실을 결합한 '이프랜드'다. 이프랜드는 출시 1년4개월 만에 전 세계 49개국에 출시된 상태다. 아직 뚜렷한 수익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지만 투자자들에게 성장하고 있다는 신호를 보여주고 있다.
올 4분기 예상 영업이익은 3130억원으로, 작년 4분기 대비 39.6%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매출 증가율이 2%대에 불과할 정도로 당장의 성장동력은 없는 상태다. 플랫폼 사업은 다소 먼 미래라는 뜻이다. 이익 증가는 비용 통제에서 나오고 있다.
실제 SK텔레콤은 올 3분기까지 누적 판관비 증가율이 전년 동기 대비 2%대다. 5세대(5G) 통신 사업이 성숙기에 접어들면서 마케팅 비용을 과거처럼 많이 쓰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현재 실적을 설명하고 있다. 실적 방어를 잘하고 있지만 올해 SK텔레콤 주가가 신통치 않은 것은 이 회사의 분할과 관련이 깊다. 작년 11월 인적분할을 통해 투자 전문사 'SK스퀘어'를 쪼개 별도로 상장시켰다.
SK텔레콤은 올해 배당금을 작년보다 29.3%나 늘릴 것으로 보이지만 주가는 올 들어 이달 12일까지 13.8% 하락한 상태다. 특히 국내 통신업은 최근 5G 주파수 박탈 악재가 발생했다. 정부가 SK텔레콤, LG유플러스, KT 등에 5G 주파수를 주는 대신 기지국을 열심히 지으라고 했는데 이들 3사가 '숙제'를 열심히 하지 않아 주파수를 뺏길 위기에 처한 것이다.
LG유플러스 역시 매출은 정체돼 있는데 비용을 효과적으로 억제해 이익을 늘려 주주에게 배당하고 있다. 인건비가 뛰는 상황에서 마른 수건도 짜면서 판관비 증가율을 0.9%로 최소화하고 배당을 18% 늘릴 심산이다. 올해 예상 배당수익률 5.43%는 시중은행 예금 금리와 엇비슷하다. 연내 결정되는 주파수 할당 취소 건이 회사 입장에서 긍정적으로 해결된다면 주가가 상승 탄력을 받을 수 있다.
'찬 바람이 불면 배당주'라는 격언과 함께 최근 금융당국의 제도 개선이 국내 몇 안 되는 배당성장주의 가치를 높여주고 있다. 현재 국내 배당제도는 12월 배당기준일에 배당받을 주주를 확정(12월 결산법인 기준)하고 나서 다음해 3월 주주총회에서 배당금을 확정한 후 그해 4월에 지급하는 방식이다. 투자자들이 배당금을 전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주식을 매수(27일까지 매수해야 배당 유효)하는 상황이다. 이런 불확실성 때문에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 주식을 사기 꺼리는 경향이 짙다. 이 때문에 금융당국은 미국처럼 회사가 배당 규모를 미리 발표한 후 배당 주주를 확정하고 배당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바꾸려는 것이다.
[문일호 엠플러스센터 증권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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