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성장 시대’ 생존 해법 찾은 CEO들…변화 적응력만이 살길 [2022 올해의 CEO]
이 기사는 언론사에 의해 수정되어 본문과 댓글 내용이 다를 수 있습니다.
‘성장에서 생존으로’…불확실성의 시대 돌파한 CEO 25인
신기술·M&A·디지털…6가지 키워드로 본 그들의 생존 전략
[2022 올해의 CEO]
전염병, 미·중 갈등, 전쟁 장기화로 인한 공급망 위기, 경기 침체까지 한꺼번에 몰아닥친 2022년이었다. 내년 경기 전망은 더 어둡다. 어떻게 생존할 것인가.
‘지혜로운 토끼는 위험에 대비해 미리 세 개의 굴을 파놓는다’는 ‘교토삼굴(狡兎三窟)’이라는 말이 있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위험에 이중삼중으로 대비한다는 뜻이다. 예측하기 어려운 경영 환경 속에선 토끼처럼 민첩하게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 플랜A뿐만 아니라 플랜B·C도 함께 마련해 두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계묘년 ‘검은 토끼의 해’를 앞두고 한경비즈니스가 올해를 마무리하며 ‘2022년의 최고경영자(CEO)’ 25명을 선정했다. 끊임없는 변화와 혁신으로 지속 성장 기반을 일군 것이 이들의 공통점이다. 미래 먹거리 발굴, 신사업 추진 성과, 경영 실적,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성과, 위기 리더십 역량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했다.
올해 최고경영자(CEO)들은 ‘1% 성장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한 대응 전략으로 성장보다 ‘생존’에 방점을 찍었다. 기초 체력과 재무 건전성을 갖추기 위해 ‘마른 수건을 짜고 또 짠다’는 각오로 현금 확보에 집중했다. 주요 그룹 연말 인사에서 최고재무책임자(CFO)들이 전진 배치된 이유도 내년 경영 환경이 더 악화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경비즈니스가 선정한 25명의 CEO는 전례 없는 복합 위기 속에서도 더 큰 기회를 포착해 미래 준비와 지속 성장 기반을 마련했다. 이들은 전략적 민첩성을 발휘해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했고 위기 속에서도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창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가장 강하거나 가장 똑똑한 종이 아니라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하는 종이 생존한다”는 찰스 다윈의 말은 기업 생태계에도 적용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변화가 아니라 변화에 적응하는 것이다. 불확실성의 시대에는 민첩한 기업만이 승리한다는 것을 증명한 CEO들의 핵심 전략을 6가지 키워드로 정리했다.
① 어려워도 멈출 수 없는 미래 준비
이재용·정의선·권오갑·최은석
급변하는 경영 환경 속에선 생존 자체도 어렵지만 생존만으로는 결코 충분하지 않다. CEO들은 주력 사업 경쟁력을 강화하고 신성장 동력에 대한 투자를 통해 미래를 준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지난 10월 “창업 이후 가장 중시한 가치는 인재와 기술”이라며 “성별과 국적을 불문하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인재를 모셔오고 양성해야 한다. 세상에 없는 기술에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공지능(AI) 분야 최고 석학인 승현준(세바스찬 승)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를 삼성전자 통합 연구 조직인 삼성리서치 소장(사장)으로 영입한 것이 대표적이다. 승 사장은 연말 사장단 인사에서 삼성리서치 글로벌 R&D 협력담당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재용 회장의 기술 중시 경영에 따라 삼성은 시스템반도체·바이오를 양대 축으로 삼고 전장·인공지능(AI)·6세대 이동통신(6G)·로봇 등을 신성장 동력으로 육성하기 위해 다양한 분야의 인수·합병(M&A)도 검토하고 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올해 각국의 국경 봉쇄, 반도체 공급난, 원자재 급등 등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위기관리 리더십을 보여줬다. 현대차그룹은 전 세계 자동차업계를 뒤흔든 반도체 부족 위기 속에서도 사상 처음으로 상반기 글로벌 판매량 톱3 자리에 올랐다. 공급망을 다변화하고 미국에 임직원을 급파해 물량 확보에 총력을 기울인 결과다.
정의선 회장은 전통적인 자동차 제조 기업에서 탈피해 자율 주행·로보틱스·도심 항공 등 미래 모빌리티 기업으로의 대전환을 준비하고 있다.
2025년부터 세계에서 판매하는 모든 차량을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로 전환하겠다는 목표로 소프트웨어 경쟁력 끌어올리기에도 나섰다. 이를 위해 2030년까지 18조원을 투입한다. 자율 주행 스타트업 포티투닷 인수를 통해 SDV 개발 체계를 갖추고 미국에 로봇 AI 연구소를, 한국에는 글로벌 소프트웨어센터 건립도 추진하고 있다.
권오갑 현대중공업그룹 회장은 제조업 한계를 벗고 첨단 기술 기업으로 탈바꿈한다는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최근 입주를 시작한 판교 글로벌R&D센터(GRC)는 현대중공업그룹의 첨단기술기업 비전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권오갑 회장은 현대중공업그룹 창립 50주년 메시지를 통해 그룹이 수많은 난관을 극복하고 생존할 수 있는 가장 핵심 요소로 ‘기술 개발’을 꼽으며 GRC가 그룹의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은석 CJ제일제당 대표는 빠르게 변하고 있는 시장과 트렌드에 기민하게 대응하기 위해 하이테크 기반의 ‘FNT(Food&Nutrition Tech) 사업 부문’을 신설했다.
CJ제일제당은 사업 구조를 식품·바이오·피드앤드케어·FNT 등 4개 축으로 재편하고 고부가가치 미래 사업인 식품 소재, 영양 솔루션, 대체 단백, 배양 단백 분야를 집중적으로 육성할 계획이다. FNT 사업 부문은 최근 미국 헬스케어 바이오텍 에미온과 우르솔산 활용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며 글로벌 시장 공략에도 돌입했다.
② 경기 위축에도 나 홀로 실적 질주
권영수·백정완
LG에너지솔루션과 대우건설은 녹록지 않은 경영 환경에서도 역대급 실적 성장을 이뤄 냈다. 권영수 부회장이 이끄는 LG에너지솔루션은 전기차 수요 증가와 고환율 효과로 올해 3분기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3분기까지 누적 영업이익이 약 9700억원으로, 처음으로 영업이익 1조원 돌파가 확실시된다.
지난 9월 말 기준 수주 잔액은 370조원으로 2021년 말 260조원 대비 110조원이 늘었다. 선제적인 투자에 힘입어 북미 수주 비율이 70%에 달한다. 권영수 부회장의 북미 선점 전략에 따라 완성차 업체와 합작 공장을 설립하고 호주·캐나다 등으로 공급망을 확대한 효과로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도 경쟁사에 비해 빠르게 대응할 수 있었다.
대우건설은 37년간 몸담은 정통 대우맨인 백정완 대표 체제를 맞아 2022년 도시 정비 누적 수주 5조원을 돌파해 2021년 3조8993억원을 넘어 최대 실적을 썼다. 최근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보증 우발 채무 리스크 확산으로 건설 업체 위기설과 부도설이 쏟아졌지만 대우건설은 예외였다.
올해 3분기 2055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했다. 백 사장이 주택 시장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적극적인 해외 신규 시장 진출에 나서며 중흥그룹에 인수되면서 제기됐던 실적 부진 우려를 씻어냈다는 평가다.
③ M&A를 지속 성장 수단으로
김동관·구현모·윤상현
경기 침체기는 알짜 기업을 싸게 M&A할 수 있는 기회다. 어려울 때일수록 공격적인 투자로 성장 기회를 만든 CEO들도 있었다. 한화그룹은 최근 대우조선해양 인수로 우주·지상 방산에서 해양까지 아우르는 육·해·공 통합 방산 시스템을 갖추게 됐다.
대우조선해양 인수는 김동관 한화솔루션 부회장을 주축으로 진행 중인 한화의 사업 구조 재편의 마지막 퍼즐 조각으로 꼽힌다. 인적 구성도 김동관 부회장 체제로 재편되고 있다. 인수 작업을 주도하고 있는 정인섭 전 한화에너지 사장은 ‘김동관 사단’으로 분류된다. 그가 대우조선해양의 새 경영진으로 합류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어 향후 김동관 부회장의 영향력이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AI·빅데이터·클라우드 중심의 디지털 역량으로 혁신을 주도하는 ‘디지코’ 전환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구현모 KT 대표는 M&A를 통한 신성장 동력 확보에 주력했다. 신세계그룹·신한금융그룹·CJ ENM·현대차그룹 등과도 유통·금융·콘텐츠·모빌리티 분야에서 협력을 추진하며 디지코 생태계 구축에 성과를 냈다.
한국콜마는 2022년 화장품 용기 1위인 연우 지분의 55%를 2863억원에 인수했다. 윤상현 부회장의 주도로 이뤄진 이번 인수로 한국콜마는 화장품 용기를 내재화함으로써 수익성을 개선하고 장기적으로는 연우의 지식재산권과 연구·개발(R&D) 능력을 활용해 화장품 제조자 개발 생산(ODM) 시장에서의 경쟁력 제고도 기대된다.
④ 위기는 포트폴리오 혁신 기회
장동현·박지원
장동현 SK(주) 부회장과 박지원 하이브 대표는 포트폴리오 혁신을 통해 기업 가치를 극대화했다. 장동현 부회장은 SK그룹이 추진 중인 ‘딥 체인지(근본적 변화)’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첨단 소재·바이오·그린·디지털 등 4대 핵심사업 부문에 대한 신규 투자와 글로벌 M&A 등을 통해 SK(주)의 체질을 투자형 지주회사로 전환해 기업 가치뿐만 아니라 사회적 가치 제고에도 성과를 냈다.
하이브는 올해 3분기 매출 4455억원을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30.6% 늘어나는 성과를 올렸다. 하지만 박지원 하이브 대표에게는 난제가 떨어졌다. 하이브 매출의 65%를 차지하는 방탄소년단(BTS)의 멤버의 군입대다. 진을 시작으로 입대가 이뤄지면서 매출 타격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박지원 대표는 멀티 레이블 체제와 게임·에듀테크 등 사업 다각화를 통해 ‘군백기’를 넘겠다는 전략이다.
⑤ “내수는 좁다”…해외에서 돌파구
성기학·이건준
성기학 영원무역 회장과 이건준 BGF리테일 사장은 해외 시장에서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찾았다. 영원무역은 방글라데시·중국·베트남·엘살바도르에 이어 인도 생산 기지 구축에 나서고 있다. 최근 1억2000만 달러를 투자해 인도 텔랑가나에 생산 공장 건립을 추진 중이다.
이건준 사장은 한국 편의점 시장이 전체 점포 수 5만 개 이상으로 포화된 데 따라 해외로 눈을 돌렸다. 2018년 8월 파트너사 센트럴 익스프레스와 마스터프랜차이즈(MFC) 계약을 하고 몽골 CU 1호점을 연 이후 2020년 10월 100호점을 돌파했고 올해 9월 말 기준 260여 개 점포로 늘어 점유율 70%를 기록하고 있다. CU는 2021년 말레이시아에도 진출해 현재 120여 개의 점포를 운영 중이다.
⑥ 디지털 전환으로 미래 시장 선점
함영주·김준식
함영주 하나금융그룹 회장과 김준식 대동 회장은 디지털 전환 속도를 높여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다. 함 회장은 빅테크와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핵심 전략으로 디지털 전환에 힘을 쏟았다. 지난 6월 그룹의 새로운 비전인 ‘하나로 연결된 모두의 금융’과 중·장기 전략 목표를 발표하고 그룹 차원의 디지털 전략 컨트롤 타워 기능을 강화하는 조직 개편을 단행하며 디지털 리더십을 또 한 번 각인시켰다.
농기계 한국 1위 기업인 대동은 ‘농슬라(농기계+테슬라 합성어)’로 불린다. 농기계를 주력으로 만들던 대동은 최근 자율 주행 트랙터, 스마트 로봇 체어, 배터리 교환형(BSS) 전기 이륜차까지 선보이며 첨단 모빌리티 기업으로 변신하고 있다.
김준식 회장이 2020년 미래 농업 리딩 기업 비전을 선포하고 스마트 농기계·스마트 팜·스마트 모빌리티를 3대 미래 사업으로 육성한 결과다. 대동은 성공적인 디지털 전환에 힘입어 창사 이후 최초로 2021년 매출 1조원 시대를 열었고 2022년 3분기 만에 매출 1조원을 돌파해 2년 연속 매출 ‘1조 클럽’에 들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
Copyright © 한경비즈니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