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태광그룹 10년간 12조 투입·7000명 고용…창립 이래 최대 투자
친환경 소재 개발 등 신사업 투자 주력
흥국생명 전환우선주 인수 포기로 여력 ↑
대규모 채용으로 ‘그룹 세대 교체’ 속도
이호진 전 회장 역할론 부각
[헤럴드경제=정태일·양대근·김은희 기자] 태광그룹이 향후 10년 동안 12조원을 투입하는 대형 투자에 나선다. 1950년 그룹 창립 이래 최대 규모다. 이 기간 신규 채용인원만 7000명에 달할 전망이다. 지난 10년 동안 멈춰 있었던 태광의 ‘투자시계’가 마침내 돌아가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16일 헤럴드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태광그룹은 오는 2023년부터 2032년까지 연평균 1조2000억원에 달하는 대규모 투자계획을 세운 것으로 확인됐다. 이르면 내년 상반기부터 그룹 차원에서 본격적인 자금 집행이 시작될 예정이다.
이번 신규 투자는 친환경 분야와 고기능성 소재 개발에 집중될 것으로 전해졌다. 그룹 주력 계열사인 태광산업이 제조업 부문에서 신사업을 주도한다. 앞서 태광산업은 금융계열사 흥국생명 전환우선주 4000억원을 인수하지 않는 대신 적극적인 투자와 신사업 개척에 나선다고 밝힌 바 있다.
태광산업은 오너인 이호진 전 회장의 ‘사법리스크’가 시작된 지난 2011년 이후 의사결정 시스템의 부재 상황이 지속됐다. 이로 인해 글로벌 시장 변화에 제때 대응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제로 지난 2011년 태광그룹의 제조업 부문 신규 투자액은 4488억원이었지만 이듬해에는 36억원으로 급감한 바 있다. 2015년부터 2019년까지는 신규 투자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2017년 36위였던 재계 순위는 2021년 기준 48위까지 떨어졌다.
대대적인 투자계획과 관련 태광그룹 관계자는 “현 시점에서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태광그룹이 향후 10년 동안 12조원을 투입하는 결단을 내린 배경에는 ‘더는 투자를 늦출 수 없다’는 경영진의 절박한 심정이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14일 태광산업이 그룹 계열사 흥국생명에 대한 4000억원 규모 전환우선주 인수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발표한 것도 이 같은 포석이 깔린 결정으로 풀이된다. 지난 10년간 멈췄던 투자시계를 다시 가동함으로써 신사업 개척에 속도를 올려 그룹 재도약에 성공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헤럴드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신규 투입되는 12조원 가운데 상당 부분은 친환경 분야와 고기능성 소재 개발에 집중될 전망이다. 태광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태광산업이 제조업 부문에서 신사업을 주도할 전망이다.
재계 관계자는 “10년의 장기적 과제로 진행되는 만큼 글로벌 경기와 사업 재편 등 시장 상황과 연동해 그룹 차원에서 대응해 나갈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실제로 태광그룹이 주력으로 삼고 있는 석유화학·섬유산업 부문의 경우 지난 10년 동안 소극적인 투자가 계속되면서 실적 악화로 직결됐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2011년 태광그룹의 제조업 부문 매출은 3조5434억원이었으나 2012년부터 하락세를 보였고 2016년 1조9745억원까지 쪼그라들었다. 2020년에는 1조7376억원을 기록했고 신규 투자가 그나마 재개된 지난해에 2조6433억원으로 반등했다. 2010년 초에 발표한 “2020년까지 매출 8조원을 달성하겠다”는 태광의 ‘점프 2088’ 비전에는 한참 못 미치는 성적이다.
특히 석유화학 부문의 경우 2015년부터 해마다 영업이익 흑자를 계속 내고 있는 반면 섬유 부문은 2011년부터 2020년까지 10년 연속 영업이익 적자를 기록한 바 있다.
섬유업계 관계자는 “다른 경쟁사들은 비수익 사업을 일찌감치 정리하고 베트남 등으로 진출하면서 적극적인 생존책을 펼친 반면 태광산업은 과거의 사업구조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면서 “그 결과, 섬유 부문의 경우 만성 적자로 고착화하고 있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투자 재원 여력은 충분하다는 관측이다. 3분기 말 기준 태광산업이 보유한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6251억원으로, 다른 계열사의 자산을 포함하면 유상증자나 대출 없이 충분히 투자 집행이 가능할 것으로 평가된다. 태광산업이 4000억원의 흥국생명 전환우선주 인수를 포기하고 신규 투자에 나선 점도 이러한 전망을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태광그룹이 향후 10년 동안 7000명에 달하는 신규 채용에 나서는 점도 주목된다.
현재 그룹 전체 인력이 약 7000명 수준인 점을 고려하면 단기간에 인원수가 2배 규모로 대폭 커지는 셈이다. 향후 공장 증설, 신사업 확장 등 추가 인력 필요가 예상되는데 대규모 투자계획과 맞물려 채용 및 전체 인력 규모 역시 꾸준히 확대해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새로 수혈되는 인력을 통해 그룹의 체질 개선과 세대교체도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 따르면 태광산업과 대한화섬의 경우 현재 임원 대다수가 1960년대생으로 구성돼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젊은 피를 중용하고 있는 최근의 재계 트렌드와 차이가 있다는 지적이다.
한편 금융 부문의 경우 최근 보험업권 화두인 디지털 혁신, 대고객 시스템 경쟁력 강화 등을 위한 투자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태광그룹이 역대급 투자를 결정한 가운데 오너인 이호진 전 회장의 역할론이 다시금 부각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전 회장은 취업 제한 규정으로 당장에는 등기이사 등 경영 전면에 나설 수는 없다. 하지만 그룹의 명운을 건 대규모 투자인 만큼 적극적인 후속 의사결정을 위해서는 이 전 회장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상황이라고 재계는 보고 있다. 이 전 회장은 재계 총수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인수·합병(M&A) 전문가로 꼽힌다.
특히 정부의 연말 특별사면에서 복권이 이뤄질 경우 ‘태광의 부활을 진두지휘해야 한다’는 그룹 내 목소리가 힘을 얻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막대한 자금 투입 등과 관련 전문경영인이 과감하게 결정하고 추진하기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이 전 회장은 지난 2004년 회장에 취임한 뒤 2006년 쌍용화재(현 흥국화재해상보험), 피데스증권중개(흥국증권), 예가람저축은행 등 적극적인 M&A로 그룹을 성장시킨 바 있다”며 “(복권이 결정될 경우) 이 전 회장의 과감한 결단이 재현될 가능성도 충분히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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