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겨울에 만나는 슈베르트

2022. 12. 16.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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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영 피아니스트,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풋풋하면서도 소박한 선율

듣는 사람들의 마음 흔들어

인간의 극단적 심리묘사 위해

영화 거장들 많은 작품에 활용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결국엔

그 음악에 내 사랑을 보내는 것

“이 계절에는 어떤 클래식 음악이 어울릴까요?”

클래식 음악에 관한 교양 강의 등을 진행하며 자주 받는 질문이다. 하지만 대답하기가 늘 쉽지 않다. 음악이 직업인 사람들은 계절이나 날씨와 무관하게 연주하고 연습하기 때문이다. 내 스튜디오에는 작지만 창문이 달려 있어 다행이나, 집중에 방해되는 외부 요소를 차단하기 위해 창이 없는 곳에서 연습하는 사람도 많다. 계절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그에 걸맞은 음악을 떠올리는 행복은 음악 애호가들의 몫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전문가’의 입장에서 고민하며 그 시기에 가장 어울리는 음악이나 작곡가를 찾으려 애쓰는데, 겨울의 경우는 답이 거의 정해져 있다. 날씨가 추워질수록, 슈베르트의 음악을 들어야 한다.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프란츠 슈베르트는 31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 천재 작곡가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참 불쌍한 인물이다. 누구보다 뛰어난 재능으로 탁월한 음악을 만들어냈지만, 소심한 성격과 주변 환경 탓으로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한 상태에서 가난하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슈베르트의 보석 같은 예술혼을 사랑했던 소수의 친구가 그에게 온정을 나눠 주었지만 그 도움은 오래가지 못했다. 마지막까지 차가운 공기 속에 있었던 슈베르트의 음악에서 온기가 느껴짐은 차라리 작은 기적이다.

좋은 의미에서, 슈베르트의 음악은 어느 작곡가의 작품보다 중독성이 강하다. 그 매력은 무엇보다 ‘가곡의 왕’이라는 별명에서 떠오르듯, 아름다운 선율미에 있다. 풋풋하면서도 소박하고 인간적인 그의 선율은 듣는 사람이 누구든 가슴속 가장 깊은 곳을 흔들어 놓는다. 그래서일까. 슈베르트의 음악은 다양한 영화에서, 그것도 인간의 극단적인 심리를 다룬 작품에서 자주 사용된다. 칸영화제를 통해 세계적인 거장으로 인정받은 미카엘 하네케 감독은 특히 슈베르트와 인연이 깊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아무르’(2012)에서는 어느 날 갑자기 마비 증상이 온 피아니스트 부인을 간호하는 남편이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들에서 슈베르트의 즉흥곡이 등장한다. 프랑스의 피아니스트 알렉상드르 타로가 직접 출연해 연기를 보여주기도 했다.

뛰어난 실력의 피아니스트지만 사랑과 애착에 대해 비뚤어진 개념을 가진 여성이 주인공인 ‘피아니스트’(2002)에서도 슈베르트의 실내악과 가곡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베르트랑 블리에 감독의 1989년 작 ‘내겐 너무 예쁜 당신’은 모든 것이 완벽한 아름다운 부인을 두고 평범한 외모의 여성과 사랑에 빠지는 남성의 심리를 그린 코미디 영화다. 극 중 남자 주인공인 제라르 드파르디유의 복잡한 심리가 슈베르트의 피아노곡을 따라 흘러간다. 우리나라 영화 ‘해피엔드’(1999)에 나오는 피아노 트리오도 잊을 수 없다. 아내의 불륜에 분노한 주인공 최민식이 저지르는 끔찍한 범행과 그 전후에 흐르는 비극적 정서는 슈베르트의 애절한 멜로디와 함께 더욱 강조된다.

예나 지금이나 슈베르트의 최고 인기작은 역시 연가곡집(連歌曲集) ‘겨울 나그네’다. 이 작품은 당시에는 무명에 가까웠던 교사 겸 시인 빌헬름 뮐러의 시에 슈베르트 특유의 짙은 서정성과 센티멘털이 얹힌 명품이다. 아마도 사랑에 배신당한 듯한 화자(시인)가 추운 겨울, 정처 없는 여행을 떠나며 떠올리는 회한과 상상, 그 위로 그려지는 환상성을 주제로 하는 이 가곡집은 많은 이에게 작곡가인 슈베르트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듯 느껴지도록 한다.

자코모 푸치니의 오페라 ‘라 보엠’, 표트르 차이콥스키의 발레 ‘호두까기 인형’ 등과 함께 12월 클래식 공연계 ‘전통의 강자’인 ‘겨울 나그네’에 올해는 새로운 바람이 불어 공연장을 찾는 슈베르트의 팬들을 즐겁게 하고 있다. 피아니스트와 성악가 단둘이 모노드라마를 펼치듯 24곡의 노래를 쉬지 않고 연주하는 전통적인 방식의 연주로는 지난 3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영국의 테너 이언 보스트리지의 공연이 성공리에 끝났다. 그리고 17일 통영 국제음악당에서 미국 출신의 바리톤 토머스 햄프슨의 공연이 예정돼 있다.

그런가 하면 연극과 무용 등이 노래와 결합된 무대도 이어졌는데, 2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슈베르트와 겨울나그네’라는 제목으로 올려진 공연에서는 성악가 손혜수, 양준모 등이 새롭게 만들어진 스토리 속 주인공을 맡아 슈베르트의 노래와 함께 흥미로운 연기를 펼쳤고, 배우들도 힘을 모아 이색적인 ‘겨울 나그네’의 신선한 해석을 들려주었다. 또, 9∼11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이어진 공연 ‘겨울 나그네:시간에게’는 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 남정호의 안무와 춤으로 슈베르트의 노래를 표현한 개성 만점의 무대였다. 작곡가 최우정의 편곡 역시 무용과 함께 빛났다.

명작의 가치는 어떤 악기와 편성으로 연주되더라도 그 가치가 퇴색되지 않는다. 새해 1월 7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대원문화재단의 신년음악회에서는 슈베르트의 마지막 실내악 작품인 현악5중주곡의 2악장을 오케스트라용으로 편곡한 버전이 세계 초연된다. 바이올린 2대, 비올라 1대, 첼로 2대가 빚어낸 슈베르트의 초월적 세계가 대편성 관현악단의 연주로 바뀔 때 어떤 색채로 변화할지 기대를 모은다.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결국 그 음악에 나의 사랑을 보내는 일이다. 슈베르트를 들으며 그에게 마음을 보낸다면 슈베르트의 선율은 분명 우리에게 훈훈한 감동을 전해 올 것이다. 부쩍 추워진 이번 주, 서둘러 여미는 옷깃 속 가슴에 슈베르트의 음악을 따뜻하게 품어 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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