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새로운 고전의 진가…하이든은 살아 있다
(서울=연합뉴스) 나성인 객원기자 = 파보 예르비가 이끈 '브레멘 음악대'가 편견을 깨고 하이든의 음악 세계를 다시 탈환했다.
고전은 훌륭하지만 지루할 거라는 편견은 더이상 감상자들의 마음에 머물 수 없었다. 그만큼 15일 도이치캄머필하모니브레멘의 예술의전당 공연은 매 악장·악구마다 생기와 신선함이 넘실거렸다.
마에스트로 예르비는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악단인 도이치캄머필과 함께 하이든 교향곡 96번과 104번을 선보였다. 이날 연주는 고전 중의 고전인 하이든의 음악이 여전히 현대적일 수 있음을 선언한 명연이었다.
이날 프로그램은 모두 고전주의 시대 작품인데다 모두 라장조로 돼 있어 음향적 일관성과 연속성이 두드러졌다. 그러나 공연은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악단은 지휘자의 몸짓과 지시 하나하나에 능동적으로 반응했다. 전반적으로 예르비는 도이치캄머필과 남긴 베토벤 교향곡 전곡 녹음에서처럼 음향적 균형을 훌륭하게 유지하면서도 과감하고 역동적인 셈여림을 구사해, 작품의 윤곽을 선명하게 드러냈다.
모든 악상은 움직임과 방향을 지니게끔 연주됐다.
크레센도(점점 세게)와 디미누엔도(점점 여리게)의 대비, 활달한 움직임과 멈칫거리는 움직임 등의 대비는 세밀하면서도 과단성 있게 표현됐다. 그러면서도 이 요소들이 하나의 큰 흐름에 유기적으로 녹아 있어서 듣는 재미가 있었다. 말하자면 작품의 고전성과 신선함을 동시에 살려낸 연주였다.
악상의 대비와 균형미를 살려냈다는 점에서 고전적인 동시에 거의 날카롭다고 할 만큼 표현력이 강한 증폭과 단절, 장면 전환 등의 효과를 용감무쌍하게 활용했다는 점은 신선하고도 현대적이었다.
교향곡 96번 기적'의 1악장에서 악단 전체의 밀도 높은 응집력이 드러났다면, 가운데 아주 인상적인 앙상블 장면이 삽입된 2악장에서는 악단의 탁월한 유연함이 발휘됐다.
제1 바이올린 솔로와 제2 바이올린 솔로의 이중주, 이후 목관의 플루트, 오보에, 바순 등이 가세하는 이 장면은 편안하고도 친밀한 실내악과도 같았다. 3악장에서는 활달한 미뉴에트 부분과 선율적이지만 유머 있는 트리오 부분이 군더더기 없이 표현됐고, 4악장은 악상을 정리하고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겠다는 고전 교향곡의 의도를 충실하게 들려줬다. 그러나 워낙 악단의 반응이 기민하고 음향적 선명성이 뛰어나 끝까지 긴장감이 넘쳤다.
클라라 주미 강(강주미)이 협연자로 나선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에서 예르비는 충실하게 독주자를 보좌했다. 주미 강의 베토벤은 가볍고 투명했지만, 악단의 음향을 뚫고 나오는 에너지 측면에서는 다소 아쉬움이 있었다. 주로 호흡이 길고 교향악적 성격이 가장 강한 긴 1악장에서 그런 면이 두드러졌다. 전반적으로 음량이 다소 작다 보니 베토벤 음악 특유의 셈여림 변화 폭이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르비와 도이치캄머필은 특별히 부자연스러운 대목 없이, 또 바이올린 독주를 가리는 부분 없이 자연스럽게 음향적 균형을 유지했다.
사색적인 2악장은 아름답게 빛났고, 리드미컬하고 유희적인 3악장도 자연스럽고 무난했다. 전반적으로 작고 예쁜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이었다고 할까.
2부에는 하이든의 마지막 교향곡인 104번 '런던'이 연주됐다. 장엄한 라단조의 모티브가 인상적인 서주 부분은 강력하고도 명징하게 표현됐다. 예르비는 베토벤에게 미친 하이든의 영향력을 강조하기라도 하려는 듯, 이어지는 본 악장을 추동력을 잃지 않는 역동적인 음악으로 빚어냈다.
변주곡인 2악장에서도 그런 극적인 해석이 돋보였다. 첫 주제는 걸음걸이의 템포, 가벼운 움직임으로 시작하지만, 첫 번째 변주인 단조 부분에서는 굉장한 밀도로 악상을 몰아가며 매우 가파른 극적 대비효과를 만들어냈다.
리듬·음량·음형·악기 등에 변화를 주며 지속되는 변주들은 관객들에게 하이든의 위대함을 설득시키고도 남을 만큼 다채롭게 표현됐다. 3악장은 미뉴에트지만 스케르초라 불러도 좋을 만큼 역동적이었다. 이어짐과 멈춤의 대비를 유희적으로 펼쳐낸 악상을 예르비와 악단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게 그려냈다. 백파이프 소리를 묘사한 것으로 널리 알려진 4악장에서도 예르비와 악단은 혼연일체로 하이든의 진가를 드러냈다.
사실 국내에서 하이든의 교향곡을 듣는 것은 흔하지 않은 경험이다.
듣는 이의 예상을 자꾸 피해 가며 자유로이 노니는 하이든 음악의 진가를 새롭게 맛본 관객들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하이든 교향곡도 말러 못지않게 열광적인 박수갈채를 끌어낼 수 있다!
이날 연주는 하이든이 여전히 살아 있다고, 도서관에 묵혀 있는 '고전'이 아니라 새로움이 용솟음치는 오늘의 음악이라고 웅변하는 것 같았다.
lied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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