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이동권 보장 지지하지만, 출근길 지하철 시위 지지하기 힘든 이유 [핫이슈]

이은아 기자(lea@mk.co.kr) 2022. 12. 16.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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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회원들이 13일 오전 서울 용산구 4호선 삼각지역에서 출근길 지하철 탑승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전장연 시위 때문에 늦을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저도 지하철 탔는데, 시위 때문에 ㅇㅇ역에 서 있어요. 최대한 빨리 가겠습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지하철 시위가 계속되면서, 지난 1년간 출근 시간 단체 대화방에서 자주 봤던 대화일 것이다.

전장연은 작년 12월부터 ‘장애인 권리 예산 보장’과 ‘탈(脫)보호시설 지원’ 등을 요구하며 출근길 지하철 시위를 이어오고 있는데, 직장인들이 출근하는 시간대에 휠체어를 천천히 움직이거나 기어서 승차하고, 사다리로 열차 출입문을 닫지 못하게 하는 일도 벌어졌다. 수시로 열차 운행이 지연됐고, 예측 가능한 교통수단이었던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던 직장인들은 예상치 못한 지각에 대해 여러 차례 사과해야 했다. 지하철 운행 지연으로 면접 시험장에 가지 못하거나, 아르바이트 일자리를 잃었다고 하소연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름도 낯설었던 전장연을 이제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게 됐다. 이들이 왜 시위를 하는지도 알게 됐고, 장애인의 이동권과 탈시설 요구 등에도 귀를 기울이게 됐다. 이것만으로도 전장연의 시위 자체는 성공한 것으로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전장연이 선택한 ‘출근길’ ‘지하철’ 시위는 성공했다고 말하기 힘들 것 같다.

초기만 해도 자신이 불편을 겪더라도 시위의 취지에 공감한다는 시민들이 많았다. 비장애인이 당연히 누리는 것을 장애인들은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현실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장애인들은 지하철이나 버스를 편하게 탈 수 없고, 식당이나 쇼핑몰 등을 돌아보면 휠체어가 드나들기 어려운 곳이 많다.

하지만 시위가 1년 넘게 지속되면서 부정적 의견이 늘고 있다. 시위 관련 뉴스에 악플이나 조롱을 서슴치 않는 사람들까지 생겨났다. 14일에는 지하철 4호선 삼각지역에서 지하철이 무정차 통과를 하는 일이 벌어졌고, 전장연 시위 방식을 비판하는 장애인 단체까지 등장했다. 20년 전 교통약자법이 제정된 이후 지하철역의 엘리베이터 설치율이 93%까지 높아졌고, 내년부터는 시내버스 교체시 저상버스를 의무적으로 도입해야 하는 등 더디지만 장애인 이동권이 개선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장애인들은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낄 것이고, 더 많은 예산과 권리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일 수 있다.

하지만 시위가 다른 사람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이렇게라도 해서 목소리를 내겠다는 절박함은 이해하지만, 시위 방식을 좀 더 고민했더라면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시민들이 더 많지 않았을까.

이제 시민들은 전장연에 묻고 있다. ‘출근길 시민을 볼모로 한 지하철 시위가 유일한 방법인가’ ‘전장연이 모든 장애인 단체를 대표하는가.’

전장연은 이 질문에 답을 내놓아야 한다. 그래야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사는 세상에 대한 논의가 진전될 수 있다.

이은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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