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차 개발 때 노조 허락 필요한 현대車… “급변기에 경쟁력 저하”
기아 노사가 단체협약 당시 넣은 ‘의견 일치’ 문구 탓에 미래차 전환이 더디게 진행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적기에 신속하게 이뤄져야 할 투자나 생산량 증감, 인력배치 등이 현재는 노조 합의 없이는 진행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노사간 의견일치 조항은 해외 공장 운영이나 외주, 판매 등에도 영향을 미친다.
16일 기아에 따르면 노사 단체협약은 노조가 결성된 1960년 이후 1962년 10월 첫 제정돼 25번의 개정을 겪었다. 가장 마지막 개정은 지난 2020년 12월 30일자다.
이 단체협약에는 노조 활동이나 사회적 책무, 인사와 고용보장, 임금, 노동시간, 복지 후생에 대한 내용들이 담겨 있는데, 기업 활동에 있어 노사 의견이 일치해야 시행이 가능하다는 문구는 대부분 인사(제4장)와 고용보장(제5장) 등에 몰려 있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기아 화성오토랜드 목적기반형차(PBV) 신공장 건립과 관련한 사항은 단체협약 제5장 제47조(신프로젝트 개발, 신기술, 신기계(자동화) 도입) 등에 담겨 있다. 이 조항에 따르면 회사는 새로운 차를 개발하거나, 기술을 도입하려 할 때는 노사 의견을 일치해야 일을 추진할 수 있다.
기아가 추진 중인 PBV 공장은 기아에서는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형태의 프로젝트다. 따라서 단체협약에 따라 반드시 노조 동의를 구해야 한다. 노조는 이 조항을 악용해 사측에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경우가 많다. 의견일치를 보지 못하면 회사가 새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화성 신공장의 경우 지난 2월에 계획을 확정지은지 10개월째 노사 의견이 달라 일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전기차 전환을 하려는 광명2공장의 경우에도 노조는 단체협약 내용을 문제 삼아 전환 작업을 지연시키고 있다. 특히 수출용 스포츠유틸리티차(SUV) 스토닉의 협력사 동희오토 위탁 생산과 관련해 노조는 “단협 48조(외주처리 및 하도급, 분사) 위반”이라고 주장한다.
해당 조항에는 ‘개발된 신차종 및 생산차종을 동희오토 및 타법인에 투입하고자 할 경우 노사의견 일치하여 시행한다’라고 돼 있는데, 여기서 더 나아가 노조는 동희오토를 인수하라는 주장을 함께 한다. 해외에선 일반적인 자동차 온라인 판매 역시 기아는 노조 동의를 구해야 한다.
같은 그룹사 현대차 역시 사정은 비슷하다. 현대차 노조는 1987년 첫 결성돼 사측과 단체협약을 맺었는데, 이때부터 경영권 등에 개입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단체협약 제5장(고용안정) 제41조(신기술 도입 및 공장이전, 기업양수, 양도) 5항은 ‘신차종 양산 시 생산량과 투입인력을 조합과 사전 협의해 결정하되 (사측이) 일방적으로 시행할 수 없다’고 규정하며, 6항은 ‘신차종의 연구개발기간 및 프로세스 변경 시 사전에 90일 전에 조합에 설명하고 업무량, 인원배치에 대해 조합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런 내용을 조정할 때는 노사공동위원회가 심의·의결해야 한다는 조항도 존재한다.
해외 투자도 비슷하다. 현대차 단체협약에는 ‘회사는 해외공장 신설, 증설(엔진, 변속기, 소재, CKD(반조립) 포함) 및 해외공장 차종투입 계획 확정 시 조합에 설명회를 실시하고, 해외공장 신설 및 차종 투입으로 인한 조합원의 고용에 영향을 미치는 사항은 고용안정위원회의 심의, 의결을 거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런 노사 의견일치나 노조 동의 등과 같은 문구를 단체협약에서 빼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단체협약 개정 역시 노사 합의가 있어야만 하는데, 노조가 강력한 협상 수단인 ‘의견 일치’, ‘조합 동의’ 등 경영권에 간섭할 수 있는 문구를 포기할리가 없기 때문이다. 노동계 관계자는 “단체협약은 노조가 노조로서 존재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하고 명시적인 수단”이라면서 “사측과의 협상력을 일부러 낮추려는 시도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조가 자신의 요구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투자 등 경영을 방해하는 건 결과적으로 기업 경쟁력을 저해하는 일이라는 게 업계 지적이다. 단체협약도 결국은 회사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맺는 것인데, 노조 몽니는 사측과 공멸하는 지름길이라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중요한 기업 활동인 투자 등은 온전히 회사 몫이어야 경쟁이 치열한 시장에서 생존할 수 있다. 노조와 모든 일을 합의해 한다는 건 경쟁력을 스스로 해치는 일”이라며 “지금까지의 자동차 산업은 옛 사고방식으로도 어느 정도 유지되는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정보기술(IT)이 접목된 자율주행, 전동화 등 대전환의 시대에서 노조 역시 전향적인 자세로 임해야 미래를 담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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