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러스톤 "자본시장 퇴행 막았다…오너를 위한 시장 아냐"

김사무엘 기자 2022. 12. 16. 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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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광산업, 흥국생명 유증 참여 철회는 현명한 결정"
트러스톤자산운용

"상장사가 오너(최대주주) 개인을 위해 자금을 지원하는 건 해외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태광산업이 흥국생명의 유상증자에 참여했다면 한국 자본시장은 10년 전으로 퇴행했을 겁니다."

이성원 트러스톤자산운용 부사장은 15일 머니투데이와 인터뷰에서 "태광산업이 흥국생명 유상증자 참여를 철회한 것은 현명한 결정"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면서 태광산업의 흥국생명 자금 지원은 자본 시장을 과거로 되돌리는, 아주 위험한 판단이었고 지적했다.

이 부사장은 태광산업이 흥국생명 유상증자에 참여하기로 했던 것은 사실상 오너(이호진 전 태광산업 회장)를 위한 결정이었다며 명백히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자금시장 경색으로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흥국생명은 5600억원 규모의 외화 신종자본증권 조기상환(콜옵션)을 위해 자금조달을 추진 중이다. 이 과정에서 태광산업이 4000억원 규모의 흥국생명 유상증자에 참여하겠다고 나서자 트러스톤자산운용은 반발했다. 트러스톤자산운용은 태광산업 지분 5.8%를 보유한 주요주주다.

이 부사장은 "기본적으로 흥국생명에 자금조달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인정한다"면서도 "흥국생명 주식을 단 1주도 갖고 있지 않은 태광산업이 (오너를 위해) 흥국생명 자금지원에 나섰던 것은 명백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호진 전 회장은 흥국생명과 태광산업 최대주주다. 흥국생명 지분 56.3%, 태광산업 지분 29.48%를 보유 중이다. 최대주주는 같지만 두 회사 간 지분관계는 없다. 이런 점 때문에 이 전 회장의 사실상 개인 회사인 흥국생명을 위해 지분관계도 없는 태광산업이 자금지원을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지난 9일 태광산업이 흥국생명 유상증자 참여를 검토 중이라고 밝히자 트러스톤자산운용은 "태광산업 일반주주의 이익을 명백히 침해하는 행위"라며 주주행동에 나섰다.

지난 14일에는 태광산업 이사회에 대주주가 아니라 회사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독립적인 의사결정을 내려줄 것을 촉구하는 내용증명을 보냈다. 태광산업의 흥국생명 자금지원이 상법상 금지된 주요주주에 대한 신용공여행위에 해당한다는 것과 공정거래법상 계열사 부당지원 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했다.

시장의 반응도 차가웠다. 태광산업이 흥국생명 자금지원을 검토하겠다고 한 이후 태광산업 주가는 줄곧 약보합세에 머물렀다. 행동주의 펀드의 압박과 시장의 싸늘한 반응으로 태광산업은 결국 흥국생명 유상증자 참여를 철회하기로 했다.

'상장사는 주주보다 오너 개인을 위한 회사'라는 인식이 강했던 우리나라에서 행동주의 펀드의 요구로 상장사의 의사결정이 바뀐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특히 태광산업의 이번 결정은 국내 자본시장에서 관행처럼 이뤄져왔던 오너 중심의 경영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 부사장은 "만약 태광산업이 실제 흥국생명 자금지원에 나섰다면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 시장을 어떻게 바라봤겠나"라고 반문한 뒤 "(흥국생명의 콜옵션 미행사보다) 국제금융시장에서 한국 시장에 대한 불신을 더 키우는 사태가 벌어졌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트러스톤자산운용의 주주행동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면서 한국 자본시장에도 변화가 생길 것으로 기대했다. 이 부사장은 "관행처럼 여겨졌던 상장사의 의사결정에 제동을 건 일"이라며 "앞으로 상장사들도 의사결정을 할 때 주주입장에서 더 신중히 생각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부사장은 "사실 한국 자본시장에서 주주행동에 적극 나선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라며 "운용사는 좋은 주식을 골라서 이익만 내면 되는데 각종 법률적 검토와 비용, 자원 투입을 해 가며 상장사와 싸워 얻어낼 수 있는 실익이 뭐냐고 반문할 수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하지만 주주행동을 포기한다면 제2, 제3의 태광산업 같은 기업들이 계속 나올 것"이라며 "이번 성과를 계기로 다른 주주들이나 펀드들도 더 적극적으로 주주행동에 나설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사무엘 기자 samuel@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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