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부능선 넘은 한전법 개정안…'디폴트 위기' 한전 한숨 돌렸다

김형욱 2022. 12. 16.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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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상임위, 여야 합의로 재의결
전기료 45% 인상 부담 과제 남아
“원가상승분 요금 점진 반영 노력”
가스공사법·K-칩스법 상임위 통과

[이데일리 김형욱 경계영 기자] 한국전력공사(015760)의 공사채(한전채) 발행한도를 늘리는 한전법 개정안이 우여곡절 끝에 15일 국회 상임위를 다시 통과했다. 아직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를 남겨두고 있지만 여·야가 공감대를 이루며 9부 능선을 넘었다는 평가다. 국내 전력수급을 도맡고 있는 한전이 당장 내년 초 한전채를 발행하지 못해 디폴트(채무불이행) 상황에 빠지는 최악의 상황에선 벗어나게 된 것이다.

지난 8일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된 한국전력공사법(한전법) 일부개정안을 재논의하기 위한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가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렸다. 윤관석 위원장이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전기요금의 빠른 정상화라는 어려운 과제를 남겼다. 앞선 8일 국회 본회의 부결 사태를 불러일으킨 핵심 요인이다. 정부는 물가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전기료를 최대한 올려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5년 후 일몰 전제로 한전채 발행한도 2→5배 확대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는 15일 전체회의에서 한전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앞선 법안과 마찬가지로 한전채 발행한도를 현 자본금·적립금 총합의 2배에서 5배로 늘릴 수 있도록 한 게 핵심이다. 산업부 장관이 필요에 따라 이를 6배까지 늘릴 수 있도록 했다.

한전은 현행법대로면 2022년도 결산을 확정하는 내년 4월부터 더는 한전채를 발행할 수 없게 된다. 한전이 올해 30조원 이상 적자를 내며 작년 말 46조원이던 자본·적립금이 올 연말 16조원 이내로 떨어질 전망이기 때문이다. 한전채 누적 발행량은 올 연말 72조원 전후가 될 전망인데, 현행법대로면 내년 4월 이후 발행가능액은 32조원으로 줄어들며 한도를 초과하게 된다. 그 한도를 5~6배로 늘리면 80조~96조원으로 추가 발행 여력을 확보하게 된다.

(그래픽=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국회는 다만 이번에 5년 후인 2027년엔 일몰(효력 상실)한다는 조항을 추가했다. 현 에너지 위기 상황을 고려한 일시적 조치란 걸 명확히 한 것이다. 또 산업부와 한전이 사채 발행을 최소화하고 재무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단서조항도 달았다.

전기료 현실화 과제 남겨…“원가 고려 45% 인상 필요”

이번 한전법 개정안 부결 사태는 전기료 현실화라는 큰 과제도 남겼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여파로 발전 원가가 2~3배 치솟는 현 에너지 위기를 한전이 빚(채권)을 늘려 적자를 메우는 현 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인식이 생각보다 크다는 걸 국회 본회의에서 확인했기 때문이다.

한전법 개정안은 지난 8일 국회 본회의에서 203명의 의원 중 89명(43.8%)이 찬성했으나 61명(30.0%)이 반대, 53명(26.1%)이 기권했다. 여당인 국민의힘 의원 2명도 반대표를 던졌다. 당시 본회의에서 반대 의견을 펼친 양이원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한전의 정상화 방안을 전제하지 않은 채 빚을 늘리는 것만으론 현 위기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걸 보여준 결과”라며 “정부와 한전이 자구방안을 마련한 후 한전채 발행 한도를 늘려도 늦지 않다”고 말했다.

산업부는 당장 올해 발전 원가 상승에 따른 한전 적자분을 내년 전기료에 온전히 반영하는 것만으로도 1킬로와트시(㎾h)당 50원대 중반은 올려야 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한전의 올 10월 평균 전기 판매단가가 120원/㎾h이란 걸 고려하면 전기료를 45% 전후를 추가 인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산업부는 오는 20일 물가 당국인 기획재정부와의 협의를 거쳐 내년 1분기 전기요금 연료비 조정단가를 발표할 예정이다.

서울 시내 한 오피스텔에서 시민이 전력량계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 같은 급격한 인상을 단행하는 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올해 이미 15~20%를 올린 상황에서 내년 초 당장 45% 전후를 올린다면 최근 10~20년래 가장 가파른 상승 폭이 된다. 전기료 1% 인상이 소비자물가지수를 0.0155%포인트 올리는 효과가 있는 만큼, 45% 인상 땐 물가가 0.7%포인트 오르게 된다. 산업·민생 전반에 큰 충격을 줄 수 있는 수치다.

그렇다고 마냥 전기료 현실화에 손 놓을 수도 없다. 업계는 현 에너지 위기가 이어지는 한 한전이 내년에도 10조원 이상의 적자를 낼 것으로 보고 있다. 올 연말 16조원까지 줄어들 전망인 자본·적립금이 내년 말 6조원 미만으로 더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때가 돼서 한전채 발행 한도를 더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적자가 예상보다 커진다면 자칫 내년 중에도 자본잠식에 빠질 수 있다.

이창양 산업부 장관은 이날 산중위 관련 질의에서 “원가 인상분을 당장 요금에 반영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가능한 범위 내에서 현실적으로, 단계적으로 반영하도록 노력하겠다”며 “현재 물가 당국과 이를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한편 국회 산중위는 이날 한국가스공사(036460)의 공사채 발행한도를 자본·적립금의 4배에서 5배로 늘리는 가스공사법 개정안도 의결했다. 이와 함께 반도체특별법(K-칩스법)의 한 축인 국가첨단전략산업 경쟁력 강화 및 보호에 관한 특별조치법 개정안도 의결했다.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전략산업 클러스터 조성과 첨단전략산업 관련 학과 정원을 확대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발언을 듣고 있다. 왼쪽부터 장영진 제1차관, 이 장관, 박일준 제2차관. (사진=연합뉴스)

김형욱 (nero@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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