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사냥꾼은 옛말…토종 행동주의 펀드, 코리아 디스카운트 바꾼다

전혜영 기자 2022. 12. 16.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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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주의 펀드들이 잇따라 계란으로 바위를 깨는데 성공하자 한국 증시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행동주의 펀드가 과거의 '기업사냥꾼' 이미지를 벗고 '주가 지킴이'로 거듭나면서 기업들도 이들의 요구를 외면하기 쉽지 않다. 주주와 상생이 기업 가치 제고로 이어진다는 인식이 확산되며 전례없이 적극적인 주주환원 정책을 내놓는 기업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기업사냥꾼'에서 '주가 지킴이'로, 힘 세진 행동주의 펀드

불과 몇년전까지만 해도 국내에서 행동주의 펀드는 적대적 M&A(인수합병) 시도 등을 통해 단기 시세차익을 노린다는 부정적 이미지가 강했다.

과거 외국계 행동주의 펀드들이 삼성, SK, 현대차 그룹 등에 적대적인 경영개입을 하다 이른바 '먹튀'한 사례들이 있어서다. 미국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 매니저먼트가 대표적이다. 엘리엇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2018년에는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 분할·합병을 반대하며 공격적인 경영 개입을 시도해 논란을 빚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토종 행동주의 펀드들의 활약으로 이미지가 달라졌다. 기업 지배구조 개선, 주주 환원정책 등을 이끌어내면서 펀드에 대한 소액주주들의 호응이 커지고 있다.

한진칼 2대 주주에 올라서며 국내에 대표적 행동주의 펀드로 인식된 강성부펀드(KCGI)를 비롯해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 안다운용 등은 국내 증시에 소위 '행동주의 투자 바람'을 일으켰다.

이들은 1% 정도의 지분만 가지고도 기업의 경영구조 개선 등을 성공시키며 주가부양에 기여하는 한편 한국 기업의 고질적인 문제인 투명성 제고에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이다.

현재 자산총액이 5조원 이상인 기업집단 계열사들만 내부거래 공시가 의무라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 기업들은 사실상 규제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그만큼 투명성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행동주의 펀드들이 기업의 약점을 잡고 적대적인 경영 개입을 하다 단기에 수익을 내고 떠나거나 주가를 오히려 떨어뜨리는 일이 많았다"며 "최근에는 토종 행동주의 펀드를 중심으로 소액주주들과 적극적인 소통을 통해 지지를 이끌어내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세력이 더 커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중복 상장 없앤 메리츠·SK, 주주환원 정책 앞서가는 기업들

행동주의 펀드가 맹활약을 펼치자 기업들이 앞장서서 주주환원 정책을 강화하기 시작했다는 점도 긍정적인 변화다. 메리츠금융지주는 내년에 메리츠화재와 메리츠증권을 100% 자회사로 편입하기로 결정했다. 쪼개기 물적 분할로 개미들을 눈물짓게 했던 카카오그룹과 정반대의 행보에 시장은 찬사를 보냈다.

내년부터 통합될 메리츠금융지주는 배당 및 자사주 매입 소각을 포함해 연결기준 당기순이익의 50%를 주주에게 돌려주는 것을 원칙으로 세웠다.

이는 현재 각사의 최근 3개년 주주환원율 평균(지주 27.6%, 화재 39.7%, 증권 39.3%)을 넘어서는 수준이다. 메리츠금융그룹은 이 같은 적극적인 주주환원 정책을 3년 이상 지속할 예정이다.

메리츠금융지주를 비롯해 메리츠화재·메리츠증권 등 메리츠 3사는 지난 2021년에도 배당을 당기순이익의 10% 수준으로 낮추고 대신 자사주 매입·소각 등을 실시하는 것을 골자로 한 주주환원 정책을 발표한 바 있다.

SK㈜도 주주환원 정책을 적극적으로 하는 기업으로 꼽힌다. SK㈜는 지난해 말 당시 코스닥시장 시가총액 8위였던 SK머티리얼즈를 흡수 합병했다. 자회사 중복 상장을 없애 기업가치를 높인다는 취지에서다. 지난 3월에는 2025년까지 매년 시가총액의 1% 이상을 자사주로 매입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금융투자업계 다른 관계자는 "한국 상장기업들은 최저 수준의 주주환원율과 취약한 기업지배구조, 과도한 이익 편취 등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증시 저평가)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행동주의 펀드들의 성과를 계기로 기업들이 앞장서서 주주환원 정책을 강화하고 이것이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전혜영 기자 mfutur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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