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랑 커피 쿠폰 보내며 "새 차 출고 늦어져요…가격은 200만 원 오릅니다"

김형준 2022. 12. 16.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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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차 줄줄이 연식 변경하며 소비자 부담 가중
제조사 "반도체 부족에 원자재 가격 상승 탓"
소비자 단체 "지나친 공급자 우위 구조 바꿔야"
기아가 하반기 들어 소비자들에게 보낸 출고 지연 안내문. 독자 제공

30대 직장인 A씨는 신차 출고를 기다리는 연말이 씁쓸하다. 2월에 기아 K8 하이브리드 구매 계약을 했을 때만 해도 '4,200만 원 선의 2022년형 차량이 연내 출고될 가능성이 높다'던 지점 쪽 말과 달리, 문자 메시지로 먼저 출고 지연을 통보 받으면서다. 지점을 통해 확인해 본 결과, 김씨는 내년 2월 이후에야 4,400만 원 선의 가격에 '연식 변경(Model Year)' 모델인 2023년형 차량을 받을 수 있게 됐다.

15일 A씨에 따르면 기아는 하반기 들어 예약자들에게 국내사업본부장(부사장) 이름으로 '출고 지연 안내' 메시지와 함께 모바일 커피 쿠폰 두 장을 보내왔다고 한다. 이를 받은 뒤 A씨는 해가 바뀌면서 차량의 상품성이 부분 개선되는 연식 변경 모델 출고 대상자가 됐다는 통보로 받아들였다.

A씨는 "연식 변경 모델이 이전 것과 비교해 눈에 띄게 좋아진 건 없어 보이는데 출고가가 200만 원 가까이 올라 예약 취소도 고민했다"면서 "하지만 가격이 앞으로 더 오를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계약을 유지했다"고 답답해했다. 공급자 우위 시장에서 '카플레이션(자동차 인플레이션)'을 겪게 된 설움을 토로한 것이다.


"출고 지연도 속상한데, 인상 폭도 가늠 안 돼 부담"

현대차 울산공장 아이오닉5 생산라인. 현대차그룹 제공

완성차 제조사들이 주요 차종에 대한 연식 변경을 이유로 차량 가격을 큰 폭으로 올리는 데 따른 소비자 불만이 이어지고 있다. 완성차 업체에서는 연식 변경으로 상품성과 안전성이 강화된다며 가격을 올리는데, 소비자는 품질 향상을 체감하지 못한 탓이 크다.

계약 당시에는 인상 폭조차 가늠이 어려운 데다, 출고 지연에 따른 부담을 오롯이 소비자가 떠안는 게 공정한지에 대한 의문도 여전하다. 여기에 차량 구매에 필요한 카드사 할부 또는 은행 대출 금리가 높아지면서 새 차 구매자들의 시름은 더 커지는 실정이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에 따르면 올해 신차 가격은 가파른 상승세였다. 현대차·기아 내수 승용차 평균 판매가는 4,200만1,000원으로 재작년 평균 가격 3,823만7,250원에 비해 376만3,750원(9.8%) 증가했다. 수입차 중에는 테슬라의 모델Y가 전년보다 2,666만 원(38%)이 올랐고, 모델3(기본모델)도 전년 대비 1,938만 원(26%) 오른 점이 눈에 띈다.


지방 고객은 더 부글부글…"활어회 '싯가' 같다"

제네시스 GV70 EV. 현대차 제공

소비자들의 눈총은 '국민 브랜드' 현대차와 기아 쪽으로 더 쏠린다. 특히 수리 등 서비스 여건이 대도시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좋지 않은 중소도시에서 불만이 더 크다. 충남에 사는 자영업자 B씨는 7월 제네시스 G80 풀옵션 차량을 8,400만 원 수준에서 계약했지만 최근 내년 상반기 출고 일정과 함께 8,600만 원 선으로 올랐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그는 "지방의 경우 서비스 여건상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현대차를 살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계약 때 가격대로 샀다는 사람을 찾기 어려운 정도인 데다, 가격 인상폭마저 '주인장(완성차 제조사) 마음'이라 활어회 '싯가'와 다름없다는 푸념도 나온다.

완성차 업계도 할 말은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부품 수급은 더 어려워지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까지 더해져 각종 원자재 가격이 크게 올랐다"며 "반도체 공급 부족 및 환율 급등에 따른 원자재 가격 인상 가속화로 원가 부담이 커진 게 가격 상승 요인으로 꼽힌다"고 했다.

업계의 다른 관계자도 "해가 바뀌면 세제도 바뀌어서 우리도 가격을 예측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수입 완성차도 가격 인상폭이 커지고 있는 건 마찬가지"라고 했다.


시민단체 "제조사, 일방적 통보 행위 중단해야"

지난해 자동차관리법, 사기죄 위반으로 테슬라코리아, 테슬라 미국 본사,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의 고발장을 제출하기 위해 나선 소비자주권시민회의 관계자들. 한국일보 자료사진

그럼에도 제조사가 ‘갑’ 소비자가 ‘을’로 굳어져 가는 시장 환경에서 소비자를 보호할 장치 마련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꾸준히 나온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 관계자는 "제조사는 인도 지연에 따른 책임이 제조사에 있음을 깨닫고, 일방적 가격 통보를 멈춰야 한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공정위원회 역시 자동차 매매약관을 개정해 일방적으로 소비자가 피해를 보는 현재의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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