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괜찮습니다. 생존자 취재잖아요"

2022. 12. 16.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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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이 저물어간다.

무엇보다 후배들을 힘들게 한 건 빈소 취재였다.

"캡, 전 괜찮습니다. 오히려 좋습니다. 생존자 취재잖아요."

이태원을 지나며 눈물을 흘리고, 새벽같이 짐을 챙겨 봉화로 가면서도 생존자 취재라 안도하는 모습은 유족의 아픔을 공감했기에 나온 행동들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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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이태원 광장에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분향소가 설치된 가운데 유가족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최주연 기자

2022년이 저물어간다. 올해, 우리 마음을 뛰게 만든 문구는 뭐가 있을까. 월드컵이 먼저 떠오른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중꺾마)'은 유행어 이상의 감동을 줬다. "저희는 포기하지 않았고, 여러분들은 우릴 포기하지 않았다"는 축구대표팀 주장 손흥민의 말도 인상적이었다.

개인적으로는 함께 이태원 참사를 취재한 팀 후배의 한마디를 빼놓을 수 없다. 참사 발생 뒤 후배들은 사실상 주 7일 근무나 다름없이 움직이느라 파김치가 됐다. 육체적 피로보다 정신적 고통이 심했다. 사고 당일 현장에 갔던 한 후배는 그 후 같은 장소를 지날 때마다 눈물이 쏟아진다고 했다. 무엇보다 후배들을 힘들게 한 건 빈소 취재였다. 가족을 잃고 비통해하는 유족에게 "심정이 어떤지" "고인은 생전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죄인의 심정'으로 물었다. 유족의 한마디가 세상을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후배들은 울며 기사를 썼다.

그렇게 지쳐가던 참사 6일째인 11월 4일 금요일 밤 11시가 넘어 속보 기사가 떴다. 봉화 광산에 매몰됐던 광부 두 명이 고립 221시간 만에 구조됐단 소식이었다.

'아… 이런 게 진짜 기적이구나.'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당장 봉화로 후배 기자를 '급파'해야 했다. 자정 가까이 된 시간, 지쳐 있을 후배들 얼굴이 떠올라 전화 걸기가 쉽지 않았다. 마음을 추스리고 후배에게 전화를 했다.

"네. 캡(사건이슈팀장을 부르는 말)."

"광부 생환 소식 들었지. 미안한데… 새벽에 봉화로 좀 가야겠다."

후배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캡, 전 괜찮습니다. 오히려 좋습니다. 생존자 취재잖아요."

다른 후배들 모두 같은 심정이었을 게다. 기자는 '기록하는 자'이지만 그에 앞서 뜨거운 피가 흐르는 사람이다. 이태원을 지나며 눈물을 흘리고, 새벽같이 짐을 챙겨 봉화로 가면서도 생존자 취재라 안도하는 모습은 유족의 아픔을 공감했기에 나온 행동들이라 믿는다.

반면, 이번 참사를 책임질 위치에 있는 주무부처 장관은 어떤 발언을 했나.

그는 한 언론사 기자에게 "누군들 폼 나게 사표 던지고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겠나"라고 했다. 이 인터뷰를 보며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그와 우리 사이에 놓인 인식의 간극 차이가 너무 멀게 느껴졌다.

이 생각은 대통령이 동남아시아 순방에 나서며 '폼 나는 사표' 발언을 한 장관의 어깨를 두드릴 때 한 번 더 머릿속에 소환됐다. 그때 깨달았다. 서울 한복판에서, 158명이, 아무 이유 없이 희생됐는데도 이 정권은 책임을 질 생각도, 책임을 지울 생각도 없다는 걸.

참사 희생자 49재를 하루 앞둔 15일, 용산 녹사평역 이태원 광장에 마련된 시민분향소를 찾았다. 숨진 158명 중 얼굴과 이름을 모두 공개한 이는 76명, 이름만 공개한 희생자는 16명이다. 사진 공개를 거부한 희생자들 자리엔 국화꽃이 놓여 있었다.

영정사진 속 환하게 웃고 있는 고인의 이름을 하나하나 입에 담아봤다. 태어난 날은 모두 다른데, 세상을 떠난 날은 '2022년 10월 29일'로 모두 같은 걸 보니 가슴이 저렸다.

정말 미안합니다. 그곳에 간 당신들의 잘못이 절대 아닙니다. 잊지 않으려 노력하겠습니다. 명복을 빕니다.

윤태석 사건이슈팀장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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