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역 봉쇄 푼 베이징, 병원마다 환자 넘쳐나… 예약 브로커까지 활개
13일 오전 중국 베이징 차오양구(區)의 한 대형 병원. 접수 창구 직원에게 진료를 받을 수 있느냐고 묻자 “모든 진료과 예약이 다 찼으니 돌아가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휴대전화로 이 병원 예약 시스템에 들어가 보니 40여 진료과 대부분이 8일 치 예약이 이미 마감된 상황이었다. 일부 과는 ‘대기 번호’조차 받을 수 없었다. 중국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대형 병원에 대해 예약 진료제를 시행하고 있는데, 지난 7일 ‘제로 코로나’ 폐지 이후에는 예약이 가능한 병원을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예약이 워낙 힘들다 보니 ‘병원 예약 브로커’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 ‘황뉴(黃牛)’라고 불리는 이들은 건당 수고비를 받고 진료 예약을 대신 해 준다. 이들은 자동 예약 시스템을 이용해 ‘예약 사재기’를 한 뒤, 일반인에게 돈을 받고 양도한다. 평소 병원 관계자와 맺은 특별한 관계를 이용해 ‘새치기’ 예약을 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황뉴 3명에게 대리 예약을 문의하니 이번 주 베이징 내 병원에서 피부과·소화기내과 진료를 받으려면 300~350위안(약 5만6000원~6만5000원)을 내야 하고, 호흡기내과는 예약 불가라고 했다.
중국 전역의 병원에선 자칫 의료 시스템이 붕괴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쏟아지고 있다. 발열·응급 환자는 급증하는데 의료진과 치료 시설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의사·약사들은 코로나를 달고 일해야 하는 상황이다. 베이징 하이뎬구(區)의 병원 약국 창구 앞에는 “모든 약사가 병에 걸렸으니 부디 너그럽게 대해 주세요”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베이징시 의료 당국은 지난 9일 회의에서 의료진의 경우 증상이 심각한 경우만 근무에서 제외하고, 무증상 의료진은 근무에 투입해 근무자 비율 80%를 유지하는 지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웨이보(중국판 트위터)에는 “실무 경험 없는 의대생들도 병원에 투입되고 있다”는 소식이 퍼졌다. 중국의 중환자실(ICU) 병상 수는 인구 10만명당 10개에 불과해 미국(34.7개)·독일(29.2개)의 3분의 1 수준이다.
베이징 시내 병원은 밀려드는 환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13일 오후 10시 베이징 차오양구 아동병원에는 아기들을 안고 온 부모 40여 명이 접수 창구 앞에 긴 줄을 섰다. 다섯 살짜리 손자를 데려온 할머니는 “대기 번호가 200번이 넘어간다”면서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하느냐”고 했다. 시청구(區)의 아동병원은 14일 낮 12시에 환자 접수 번호가 600번을 넘어섰다. 지하 1층 처방약 수령 창구 앞에는 300명 이상이 나선형으로 줄을 서 있었다. 줄의 시작과 끝을 알 수 없을 정도였다. 아기를 안고 있던 한 엄마는 지쳐 주저앉았다. 중국의 병원은 원칙상 발열 환자를 별도 진료소에서 응대해야 하지만, 방문한 2곳의 아동병원에서는 발열·미발열 아이들이 섞여 있었다.
응급 환자들도 치료를 받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차오양구 궈마오에 사는 한 50대 여성은 “어제 열이 심하게 나고 거동이 어려워 120(우리 119)에 전화했더니 대기 번호가 300번이었다”고 했다. 베이징 방역 당국은 최근 응급 구조 전화가 평소보다 6배 급증해 사실상 마비 상태라고 밝혔다. 차오양구 한 병원의 발열 환자 전용 진료소에서는 코로나 의심 환자들이 5~6시간씩 기다려 진찰을 받고 있었다. 병원 관계자는 “환자들은 몰려드는데 장소는 비좁고, 의료진은 적다”면서 “인근의 체육관을 빌려 내일부터 ‘제2 발열 진료소’를 운영할 예정”이라고 했다.
시중 약국에서 해열제·기침약은 구할 수 없고, 종합 감기약조차 정가의 5배를 줘야 한다. 14일 오전 9시 베이징 시청구의 유명 약국 앞에는 50여 명이 감기약이라도 구하려고 줄을 서 있었다. 문 앞을 막고 있던 직원은 녹음기를 반복 재생하듯 “해열제, 기침약, 체온계, 생리식염수는 없고, 종합감기약은 1인당 2개 구매 제한”이라고 했다. 시민들은 배급을 받아가듯 전통 한약재로 만든 종합감기약 ‘롄화칭원’을 사갔다. 이곳에서 3㎞ 정도 떨어진 한 문구점에서는 같은 약이 정가의 5배인 65위안(약 1만2000원)에 팔리고 있었다.
곳곳에서 중환자와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다는 소식도 빠르게 퍼지고 있다. 베이징의 한 병원 영안실 관계자는 위챗(중국판 카카오톡)에 “최근 베이징에서 사망자가 급증했고, 장례식장마다 직원들이 대거 감염돼 시신 화장에 최소 5∼7일 걸린다”는 글을 올렸다. 노인들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디이차이징은 “농촌에서는 노인들이 코로나에 걸려도 2~3일씩 방치되고 있다”고 했다.대만 중앙통신사는 “노인 사망자가 크게 늘어 베이징의 안치실이 부족할 정도”라고 했다.한 베이징 시민은 웨이보(중국판 트위터)에 “아버지가 숨졌지만 장례식장을 구할 수 없다”고 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정우상 칼럼] “大將이 뭐 저래” 김병주 보며 생각난 ‘군인 조성태’
- [김한수의 오마이갓] 43만 장에서 고른 360점... 마음이 편안해지는 사진들
- 데뷔 3년만 전국투어… SNS 평정한 J팝 신예 다음 목표는 ‘韓 진출’ [방구석 도쿄통신]
- [에스프레소] 김밥·라면 다음은 튀김 축제인가
- [기자의 시각] ‘스카’로 전락한 대학 도서관
- [수요동물원] 표범 얼굴에 가시 꽂은 산미치광이 “죽을 때까지 아파보거라!!!”
- [단독] “적대국 중국 격퇴하려면, 한국과 경제·안보협력 강화해야”
- [김정호의 AI시대 전략] 위기의 K반도체, AI발 ‘주문형 생산’에 생사 달렸다
- [김준의 맛과 섬] [215] 진도군 조도 고둥무침
- [김도훈의 엑스레이] [45] 아이 엠 데이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