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語西話] 천년을 세우다
넘어진 채 발견된 경주 남산 열암곡 마애입불상을 처음 친견한 것은 2007년 9월이다. 2022년 10월에도 뵈러 갔다. 그 사이에 두어 번 또 다녀왔다. 그렇게 15년이 흘렀다. 처음 발견할 때만 해도 금방 제 모습을 찾겠지 했는데 그게 아니다. 갈 때마다 주변에는 보호를 위한 임시 시설과 첨단 계측 장비가 하나둘 더해지면서 뭔가 달라지고 있긴 했지만 정작 마애불은 언제나 발견 당시 모습 그대로다. 땅바닥을 향해 있는 오똑한 콧날과 미려한 얼굴 윤곽선 및 기다란 귀를 뵐 때마다 참호 안의 군인 같은 자세를 취하고서야 겨우 눈을 맞춘 후 예의를 갖추고 두 손을 모았다.
쪼그림으로 인한 저린 다리를 펴고 일어나 한숨을 돌리며 서편 언덕을 바라보니 얼마 전 복원을 마친 여래좌상이 보인다. 2005년부터 관계 연구원들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깨진 광배와 좌대 등을 수습했다. 하지만 머리 부분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남산 답사 동호인의 도움으로 멀리 떨어진 계곡 아래에서 불두까지 찾을 수 있었다. 홍수 때 떠내려간 모양이다. 그리하여 무사히 원형대로 모실 수 있게 되었다. 등산로 표지판과 내비게이션에 등록된 이름은 ‘열암곡 여래좌상’이다.
오랜 세월 비바람과 사람 손을 탔던 여래좌상은 현대의 뛰어난 복원 기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곳곳에 그 상처의 흔적을 남겨 두었다. 무너지고 넘어지고 흩어진 채로 땅바닥 여기저기에 묻히면서 햇볕에 노출된 부분마다 바위 때깔이 달랐다. 아들을 낳겠다는 간절함으로 가득했던 서라벌의 어느 아낙네가 다녀가셨는지 코 부분은 아예 평평하다. 또 풍우의 마멸까지 더해진 얼굴 부분은 민망할 만큼 쳐다봐도 표정조차 읽어낼 수 없다. 그럼에도 앉아있는 전체 모습에서 풍겨 나오는 아우라는 여전히 당당하다.
인근에 넘어져 있던 마애입불상은 그 과정에서 발견된다. 수십t 무게의 기다란 직육면체 바위 주변에는 흙과 낙엽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전문가의 눈썰미는 남달랐다. 맨손으로 주변 정리를 해가며 더듬는데 뭔가 촉이 왔다. 손가락 끝에 조각 결을 또렷이 느낄 수 있었다. 완전체 그대로였다. 땅바닥 바위와 불상 콧날 사이 간격은 불과 5cm였다. ‘희유(기적)하십니다!’ 외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2007년 9월 13일 자 프랑스 ‘르몽드’는 발견 사실을 사진과 함께 크게 보도했다.
넘어진 것은 넘어진 대로 그만한 이유가 있다. 물론 자연현상인 지진이 일차적 원인이다. 하지만 마애불로서는 당신을 지키기 위한 방편이었다고 종교적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비바람 그리고 사람들의 손때 타는 것을 막기 위한 피신이었다. 1500년 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여 후대에 전하려는 타임캡술을 자청하신 것이다. 덕분에 우리는 완벽한 국보급 신라 마애입불상을 21세기에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넘어짐으로 인한 원형 보존의 천년 공로는 지금까지 역할로 충분하다. 이제 본모습을 찾아드릴 때가 왔다. 그래서 나타나신 것이리라. 엎어진 채 그대로 두는 것을 원형 보존이라고 우긴다면 그건 한 눈으로만 바라본 견해다. 이제 ‘진짜 원형’ 보존이라는 두 눈의 지혜를 모아 미래 천년을 준비할 시점이다. 발견 후 스무 번째 겨울이 오기 전 본래대로 모시는 일에 관계자와 문화 대중의 역량을 모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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