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사회와 청년층 지지 믿고 ‘2전3기’ 새로 도전할 겁니다”
[짬][짬] 재미 한인2세 변호사 데이비드 김
“왜 이러지? 이러면 안 되는데…난 한국 사람 최초로 미국 대통령이 될 거야.” 지난 1992년 4월29일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일어난 흑인폭동을 텔레비전 뉴스로 지켜보면서 이렇게 외친 한인2세 소년이 있었다. 백인 경찰에게 구타당한 흑인 남성 로드니 킹 사건의 재판에서 경찰들에 대한 무죄판결에 불만을 품은 흑인들이 엉뚱하게도 한인타운을 공격했다. 72시간 동안 무방비 난동으로 2500여개 건물이 무너지고 수많은 한인들이 피해를 입었으나 경찰도 공권력도 정치권도 도와주지 않았다. ‘4·29 흑인폭동’은 미주 한인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줬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 각성의 계기가 되었다.
그때 시애틀에서 뉴스를 지켜봤던 그 초등학교 3학년생이 30년 뒤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고자 미국 주류 정치판에 뛰어들었다. 지난 2020년에 이어 최근 미 중간선거에서 캘리포니아 34지구 연방 하원의원에 도전했던 한인 2세 변호사 데이비드 김(38·김영호)이다.
“당락을 떠나 풀뿌리 선거운동이 또 한번 발전하는 계기가 되어 자랑스러워요. 하지만 정치엔 2등은 없잖아요. 그래서 다음 기회를 또 준비할 겁니다.”
지난 11월26일 서울에서 만난 데 이어 온라인으로 진행한 인터뷰에서 그는 벌써부터 세번째 도전을 다짐했다.
한인타운 포함한 캘리포니아 지역
미 연방 하원의원 두번 나서 ‘석패’
절대다수 히스패닉계 거물 현역 맞서
“풀뿌리 선거운동 성과 자랑스러워”
1992년 4·29 엘에이 흑인폭동 계기
“한인 최초 미국 대통령의 꿈 키워”
그는 이번 선거에서 현역인 지미 고메즈 민주당 하원의원과 같은 당 소속으로 나가 치열한 접전을 벌였다. 34지구 선거구는 엘에이 한인타운이 포함된 곳이지만 히스패닉 인구 비율이 65%로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라틴계로 4선에 나선 고메즈 의원이 절대 유리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정치적 경험과 배경, 자금력까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지만 막상 선거운동이 시작되자 그는 맹추격전을 벌여 ‘언더독’ ‘다크호스’ ‘골리앗에 맞선 다윗’ 등으로 불리며 주목을 받았다. 끝내 3020표 차로 석패했지만, 대타로 긴급 투입됐던 지난 2020년 첫 도전 때의 47% 득표율보다 늘어난 48.7%를 얻었다. 만약 전체 유권자 30만명의 10%인 한인들이 100% 투표해 그를 지지했다면 뒤집을 수도 있었던 결과였다.
“민주당 정치활동위원회(PAC)에서 지원하는 현직을 이기는 ‘역전’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새로운 리더십을 원하는 지역구민들의 열망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그의 말대로, 송원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KAGC) 사무국장을 비롯한 그의 지지자들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근소한 격차여서, 다음번엔 한인 출신 하원의원이 나올 수 있는 토대가 생겼다"라며 지속적인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1984년 애리조나주에서 태어난 그는 목회 활동을 하는 부모를 따라 워싱턴주와 북부 캘리포니아에서 자랐다. 버클리 캘리포니아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그는 3학년 때 학생회의 상원의원 20명을 뽑는 선거에 나서 6위를 기록하며 정계 진출의 꿈을 다지기 시작했다. 그 뒤 뉴욕의 명문 예시바대학의 벤자민 카도조 로스쿨에 진학한 그는 학생 80%가 유대인인 이 학교에서 최초의 비유대인 학생회장으로 당선되는 이변을 기록하기도 했다.
캘리포니아로 돌아와 잠시 엘에이카운티 보조 검사로 일했던 그는 노동법 변호사로 진로를 바꿔, ‘할리우드 로여’를 개업해 연예인 전문 변호사로 일하며 아이돌 그룹 원더걸스의 미국 계약을 성사시키기도 했다. 이후 이민법 전담 변호사로 옮긴 그는 엘에이세입자연맹 회원 등으로 활동하며 추방 위기에 몰린 이민자들을 대변했다. 그는 2년 전 첫 출마 계기를 이렇게 밝혔다.
“엘에이 다운타원과 한인타운 일대에는 노숙자가 몰려 있고, 이민자도 많아 가난한 계층이 대부분이죠 이들을 주로 변호하다 보니 50년, 100년 지나도 한계가 있을 것 같았어요. 능력 있는 정치인의 힘으로는 단숨에 수천만명 가정을 살릴 수도 있는데 왜 아무도 나서지 않을까, 그래서 용기를 냈지요.”
2020년 선거 때 무명의 신인인 그의 모금액은 고메즈 의원의 8분의 1에 불과했다. 대신 그는 지지하는 친구들과 지역 커뮤니티의 도움으로 선거운동을 벌였다. 선거 전단을 보내는 작업도 자신이 직접하며 유권자들과 밀착 접촉해 얼굴을 알렸다. 그의 선거운동 과정은 전후석 감독의 다큐멘터리 <초선>(Chosen)에 고스란히 담겼고, 이번 2차 도전에서도 화제를 모았다.
“2020년 재미한인 5명이 연방하원 선거에 도전을 했어요. 2018년 이전까지 미국 재미한인사 120년 동안 연방 하원의원은 단 한명뿐이었죠. 상당히 기념비적인 사건이어서 그들의 선거 여정을 좇아서 개인사와 이민사와 현지 소수민족으로서 겪고 있는 갈등 같은 것들을 기록하게 됐어요.”
지난 11월26일 리제너레이션 무브먼트(공동대표 김종대·최자현 부부)의 초청으로 서울에서 <초선> 상영회와 토크쇼를 함께한 전 감독은 영화의 주인공 5명 가운데 4명은 이번에 재선을 했고, 데이비드 김 후보만 또 낙선해 안타깝지만,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청년 정치인이라고 소개했다.
실제로 데이비드 김은 다큐 <초선> 덕분에 개인적으로 얻은 성과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한인타운에서 내과 전문의로 일하는 형 에반은 처음부터 응원해줬지만, 전형적인 이민 1세대로 보수적인 신앙을 지닌 부친은 정치에 나서는 것을 반대했어요. 하지만 영화를 본 뒤 저를 이해하고 지지해주고 있어요.”
더불어 영화를 통해 성소수자로서 정체성도 공개한 그는 이번 선거운동 과정에서 기본소득제와 사회적 약자 복지 등을 간판 공약으로 내걸고, 실제로 25가정을 뽑아 현금 지원을 해주는 등 실천력을 보여줘 진보적인 청년층의 지지를 얻는 성과를 거두었다.
“확실한 비전과 목표를 제시하고 작게라도 하나하나 실현해 신뢰를 쌓을 겁니다.”
그는 2전3기의 자신감을 감추지 않았다.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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