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전發 무기 확보 경쟁… ‘성능·가격 경쟁력’ 한국산 눈길 [심층기획]

유태영 2022. 12. 15.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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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방산업체 ‘골드러시 시대’
2차 대전 후 무기 소진 속도 가장 빨라
美 비축량 한계치 임박… 공급도 더뎌
폴란드, 우크라에 18억유로 군사지원
비축량 감소분 국내 업체와 계약 체결
러 주변 중·북유럽 국가들 국방비 증액
포브스 “한국 업체들이 공백 메울 태세”
지난 6일(현지시간) 폴란드 북부 그디니아 해군기지에 한국산 K2 전차 10대와 K9 자주포 24문이 도착했다. 8월 1차 실행계약을 체결한 지 4개월 만에 벌써 초도 물량이 인도된 것이다. 폴란드에서는 안제이 두다 대통령이 직접 나와 맞이할 정도로 환대를 받았다.
폴란드는 2월 러시아의 침공을 받은 우크라이나에 상당량의 군사 무기와 장비를 지원한 나라이다. 독일 키엘 세계경제연구소의 ‘우크라이나 지원 추적자’에 따르면 폴란드는 10월3일 기준 전차 240대, 155·152㎜ 자주포 18문 등을 보냈다. 전체 군사 지원액은 18억유로(약 2조4840억원)로 미국(229억유로), 영국(41억유로), 유럽연합(EU·31억유로), 독일(23억유로)에 이어 5위 수준이지만, 전차·자주포·다연장로켓시스템(MLRS) 총 비축량 대비 지원 물량 비율은 약 13%로 노르웨이(약 23%), 체코(약 14%)에 이어 3위에 해당한다. 러시아의 영향력이 우크라이나를 넘어 국경까지 닿을까 봐 우려하는 폴란드의 안보적 이해관계, 우크라이나 군대에 익숙한 소련식 무기·장비·탄약을 다량 보유하고 있는 점 등이 맞아떨어진 결과다.
폴란드는 우크라이나 지원에 따른 비축량 감소의 해법을 한국에서 찾았다. 현대로템은 3년 안에 K2 전차 180대를 인도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독일산 레오파르트2 전차를 들여올 경우와 비교해 같은 기간 5배 물량을 확보할 수 있는 셈이었다. 손색없는 성능에 대당 가격이 절반 수준이라는 이점도 있다. 폴란드는 미국산 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HIMARS)을 대량 구입하려다가 록히드마틴이 난색을 보이자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천무로 눈길을 돌렸다.

최종적으로 폴란드는 한국으로부터 K2 1000대, K9 672문, FA-50 경공격기 48대, 천무 288문을 들여오는 124억달러(16조1200억원) 규모 계약을 체결했다.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이 주요 무기체계 확보를 위해 동맹 바깥의 방위산업체로 눈을 돌린 것은 튀르키예(터키)를 빼면 폴란드가 처음”이라며 “미국 방산업계가 공급망 불안과 (코로나19 대유행 등에 따른) 노동력 부족을 이유로 세계적인 수요 증가를 해결하지 못하는 사이 한국 업체들이 공백을 메울 태세”라고 했다.

◆냉전 종식 30년 만의 무기 확보 붐

우크라이나전은 냉전 종식 후 ‘더는 유럽에서 전면전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낙관하며 테러 대비로 초점을 옮기던 각국에 비상벨을 울렸다. 스톡홀름국제평화문제연구소(SIPRI) 집계 기준 지난해 처음 2조달러(2600조원)를 넘어선 전 세계 군사비 지출은 당분간 큰 폭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폴란드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3∼5%를 국방에 투자할 것으로 예상된다. 스웨덴은 국방비를 GDP 대비 2% 수준에 맞추는 시기를 2026년으로 2년 앞당겼다. 이처럼 러시아의 영토 확장 야욕에 위협을 느끼는 러시아 주변의 중유럽·북유럽 국가를 중심으로 각국은 앞다퉈 국방비 증액에 나서고 있다.

나토의 GDP 대비 2% 기준을 지키지 않는다며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숱한 불평을 들었던 독일도 6월 1000억유로(138조원) 규모의 특별방위기금을 조성했다. 이제 GDP 대비 2% 기준은 최대치가 아닌 출발선이라는 말도 나온다. 미국 싱크탱크 ‘책임 있는 국정을 위한 퀸시연구소’의 군산복합체 전문가 윌리엄 하퉁은 “우크라이나전 개전 후 EU 국가들은 2300억달러(299조원)의 무기 증강을 약속했다”며 “유럽의 올해 무기 거래량은 이미 지난해의 2배 수준”이라고 했다.
유럽의 무기고 유지 경쟁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제2차 세계대전 후 처음 보는 속도로 무기·탄약을 소진하면서 불이 붙었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전쟁이 장기전·지상전 양상을 띠면서 전차, 포병, 방공 화력의 중요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나토 관계자들은 “지난여름 우크라이나군은 매일 6000∼7000발, 러시아군은 하루 4만∼5만발의 포격을 가했다”고 했다. 하루 300발을 썼던 아프가니스탄전의 한 달 치 이상이 하루에 소모되는 셈이다. 미국은 재블린 대전차미사일을 4년 치 생산량에 육박하는 8500발 지원했고 스팅어 대공미사일 등의 비축량도 한계치에 다다르고 있다. 특히 155㎜ 포탄의 고갈이 심각하다. 한 달 포탄 생산량이 1만5000발에 그치는 미국으로서는 한국 등 다른 나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국 방산업체에 열린 기회의 창

미·중 전략경쟁과 중동 분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미국은 내년도 국방예산을 사상 최대인 8470억달러(1100조원)로 잡았고, 일본 또한 2027년까지 GDP 대비 2% 수준으로 방위비를 증액할 태세이다.
이는 무기 수출 세계 4위를 노리는 한국 방산업체에 기회가 되고 있다. 시몬 베제만 SIPRI 선임연구원은 포브스에 “무기 생산자들에게는 골드러시 시대가 왔다”며 “한국은 분명히 적절한 시기에 알맞은 기술로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속한 무기 인도, 가격 대비 성능뿐 아니라 높은 기술력과 충실한 후속 군수 지원, 나토 무기·장비와의 상호 운용성, 기술 이전·현지 생산 요구에 적극적으로 응하는 점 등이 한국의 경쟁력으로 꼽힌다.

SIPRI에 따르면 2017∼2021년 기준 한국은 미국, 러시아, 프랑스, 중국, 독일, 이탈리아, 영국에 이은 8위 무기 수출국이다.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8%에 그치지만, 수출 증가율은 이전 5년간(2012∼2016년) 대비 176%로 상위 25개국 가운데 가장 폭이 크다.

올해에도 폴란드와의 초대형 계약뿐 아니라 이집트와 17억달러(K9), 아랍에미리트(UAE)와 13억달러(천궁II) 규모 계약을 하는 등 역대 최고 방산 수출 수주액(170억달러·22조1000억원)을 달성했다. 노르웨이, 말레이시아 등과도 협상이 진행 중이어서 연말까지 200억달러(26조원) 고지를 밟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장원준 산업연구원 연구위원 “韓, 방산수출 세계 4강  실현 불가능 목표 아냐”

방위산업 전문가인 장원준(사진)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의 방산수출 세계 4강 진입이 실현 불가능한 목표가 아니라고 진단했다.

장 연구위원은 13일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올해 방산수출 호조는 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이례적 상황의 영향을 받은 것은 분명하다”면서도 “우리가 10여년 전부터 쌓아온 평판과 신뢰가 없었다면 이런 천재일우의 기회를 잡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쟁이 장기화하다 보니 전차, 장갑차, 자주포 등 한국이 경쟁력을 가진 기동화력의 중요성이 커졌고, 신속 인도가 가능한 한국이 전쟁에 소진된 자국 전력 공백을 메우느라 바쁜 미국·유럽 방산업체의 유력 대안으로 떠오를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가 집계한 2017∼2021년 기준 무기 수출 8위인 한국이 4강 목표를 달성하려면 4개국을 제쳐야 한다. 장 연구위원은 “올해 수주가 잘 되고 있고 이탈리아(6위), 영국(7위)과는 격차가 크지 않아 2018∼2022년 기준으로 6, 7위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며 “중국(4위) 업체는 최근 구매국들로부터 품질과 후속군수지원 등에 관한 항의를 많이 받고 있고 미국의 중국산 부품 배제 움직임도 심화해 어려움이 커질 것”이라고 했다. 또 러시아는 전쟁을 치르느라 각종 수출을 보류 중이고, 제재까지 겹쳐 2위 수성이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미국 당국자들은 러시아가 반도체, 볼베어링 등 핵심 부품과 생산 장비를 구하지 못해 무기 공급 역량이 크게 줄었다고 밝힌 바 있다.

장 연구위원은 “올해 우리와 대규모 계약을 한 폴란드의 사례를 각국이 예의주시할 것”이라며 “폴란드를 허브 삼아 수출을 확장하려면 기술 이전·성능 개량 등 구매국 요구를 들어주는 맞춤형 수출 전략을 이어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우리 무기의 부가가치를 높이고 기술 격차를 유지하려면 정부의 수출 활성화 지원 정책, 핵심 구성품의 국산화, 국방·연구개발 투자 확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유태영 기자 anarchy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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