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뒤죽박죽…이상한 나라의 키키스미스

2022. 12. 14. 22:50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낙하의 끝은 끔찍한 중력의 무게다.

그러나 낙하하는 동안은 무중력이다.

민화, 설화, 신화, 고대 역사, 문학과 종교를 아우르며 작가가 구축하는 서사는 크고 작은 모든 생명에 대한 관심과 돌봄이다.

"나는 여전히 자유낙하 중이다"는 작가는 과거와 현재, 매체와 도상을 자유롭게 넘나들고 부유한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서울시립미술관, 아시아 첫 키키 스미스 개인전
시간과 공간, 장르를 종횡무진하며 의도적 경계 흐리기
무중력을 만끽하는 자유낙하처럼 유영하는 작업세계
키키 스미스, 자유 낙하, 1994. 서울시립미술관 '키키스미스 : 자유 낙하' 전시 전경 [헤럴드DB]

[헤럴드경제=이한빛 기자] 낙하의 끝은 끔찍한 중력의 무게다. 그러나 낙하하는 동안은 무중력이다. 중력이 잡아당기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순간엔 중력이 사라져 유영만이 있을 뿐이다.

1980년대 여성성과 신체를 다룬 구상 조각으로 세계적 주목을 받은 여성주의 작가 키키 스미스(68)가 풀어내는 이야기는 경계가 없다. 분류와 체계에 익숙하고 동물과 사람, 여성과 남성, 아이와 어른, 현실과 몽상 등의 구분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그의 이야기가 한편 허황되고, 어렵게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극단이라는 정의는 특정 시간대의 특정 사회가 내린 결론일 뿐이다. 생명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동물이나 사람, 남성과 여성이 다 같은 존재다. 꿈과 공상이 현실보다도 더 단단하게 우리를 지탱하는 버팀목이다.

키키 스미스, 새와 있는 두상 Ⅲ, 1995. 서울시립미술관 전시 전경. 작가는 새를 꾸준히 작업에 등장시킨다. 가톨릭에서는 성령을, 범 문화적으로는 영혼을 의미한다. 때로는 인간의 탐욕의 희생양으로도 읽힌다. 입 벌린 두상은 죽음에 먹혀버린 인체를 상징한다. [헤럴드DB]

서울시립미술관은 12월 15일부터 내년 3월 12일까지 서소문본관에서 키키 스미스 작가의 첫 아시아 전시 ‘자유낙하’를 개최한다. 전시는 익히 알려진 조각과 오브제 설치작업은 물론 판화, 사진, 태피스트리, 아티스트북까지 총 140여점을 통해 작가의 작품세계를 소개한다.

이번 전시엔 평면작업이 가장 많다. 드로잉을 비롯해 작가가 평생 매력적으로 생각한 판화작업이 상당수 나왔다. 매그놀리아 에디션과 협업해 제작한 대형 태피스트리도 인상적이다. 조각과 오브제 설치작업이 주로 알려졌지만, 작가에게 평면은 다른 차원의 조각이 가능한 매력적인 대상이다. 줌(Zoom)으로 간담회에 참여한 작가는 한지를 깐 온돌방을 언급하며 “이 사실을 알고 (나의)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종이가 조각적 요소가 될 수도 있고 심지어 이불처럼 덮을 수도 있고 겹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됐다. 드로잉과 프린트작업을 겹치기 시작했고 종이를 조각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작가에게 평면이나 입체는 딱히 중요한 구분이 아닌 셈이다. 전시에 나온 작품은 평면이지만 평면을 벗어난 작업들이다.

서울시립미술관 '키키 스미스:자유낙하' 전시 전경 [헤럴드DB]

의도적 경계 흐리기는 매체의 탐구를 넘어 주제로도 확장한다. 1980년대 작가는 남성우월적 표현의 상징이던 미니멀리즘이나 추상미술에 맞서 신체를 예술의 소재이자 재료로 사용했다. 에이즈로 세상을 떠난 여동생과 아버지의 죽음을 겪으면서 생명의 취약함과 불완전함에 대해 성찰하게 된다. 생리혈, 땀, 정액, 소변 등 신체 분비물과 배설물을 가감없이 시각화한 파격적 작업은 여성에 대한 사회적 통념과 스테레오 타입을 단박에 부순다. 키키 스미스를 수식하는 ‘여성’과 ‘신체’는 여기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러나 정작 작가는 여성주의를 전면에 내세우거나 꼭 지켜야할 금과옥조로 내세우는 대신, 다층적 해석을 제안한다. 작가는 ‘빨강망토와 늑대’ 동화를 여러 작업에서 변주하는데, 때로는 빨강망토 소녀와 늑대가 동일시 되기도 하고, 늑대의 배를 뚫고 나오는 비너스의 모습을 하기도 한다. 지켜주어야하는 대상인 소녀는 성인 여성이 되어 스스로를 지키고, 모든이의 어머니이자 신을 낳은 성모 마리아는 작은 소녀가 되어 바닷가에 앉아 기도를 한다.

익숙한 이미지와 규정들이 섞이고 뒤집히면, 원래 중요했던 것이 무엇인가를 묻게 된다. 민화, 설화, 신화, 고대 역사, 문학과 종교를 아우르며 작가가 구축하는 서사는 크고 작은 모든 생명에 대한 관심과 돌봄이다. 대척에 서 있는 듯한 것들도 사실은 큰 우주안에 연결되어 있음을, 그래서 수많은 이야기가 탄생했음을 알려준다. 전시 제목인 ‘자유낙하’는 작가의 1994년 작업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작가의 작업에 대한 태도이기도 하다. “나는 여전히 자유낙하 중이다”는 작가는 과거와 현재, 매체와 도상을 자유롭게 넘나들고 부유한다.

키키 스미스, 푸른 소녀, 1998. 서울시립미술관 전시 전경 [헤럴드DB]

vicky@heraldcorp.com

Copyright © 헤럴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