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니 없어도 참는 사람들 위해…‘쪽방촌 치과’ 문 열었다[현장에서]

김원진 기자 2022. 12. 14.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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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구 돈의동에 서울 첫 개소
주 3일 의료진 자원활동 운영
대부분 고령·초기 치료 놓쳐
50대 주민은 “생애 첫 진료”
경제적 부담 줄자 예약 늘어
지난 8일 문을 연 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의 ‘우리동네 구강관리센터’에서 쪽방촌 주민이 진료를 받고 있다.

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 상담소 5층 치과 진료실. 지난 8일 오후 환자의 입속을 살피던 조상연 인천 이사랑치과 원장이 “오른쪽 윗니·아랫니를 일단 뺄 거예요”라고 하자 김규철씨(58)가 가볍게 한숨을 내뱉었다. 김씨는 이날 오랫동안 방치된 상한 치아를 뺐다. 그가 태어나 처음 받은 치과 진료였다.

문턱을 낮추고 친근감을 주기 위해 ‘병원’ 대신 ‘우리동네 구강관리센터’(구강관리센터)라는 이름을 붙인 이 공간은 진료용 의자 2개와 X레이(파노라마) 기기를 갖추고 있다. 인근 쪽방촌 주민들이 치과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행동하는의사회가 서울시, 우리금융미래재단과 함께 문을 연 곳이다.

김씨는 엄지와 검지로 원을 만들며 “(돈) 걱정도 됐고 막연하게 가기도 무서웠어요”라고 말했다. “앞니가 없어서 사람을 만날 때 힘들었거든요.새로운 치아를 해 넣으면 나아지겠죠?” 기본 치료를 마치면 김씨는 부분 틀니를 한다고 했다.

서울 도심 쪽방촌 안에 생긴 첫 치과 진료소는 이날 개소식을 했다. 한동헌 행동하는의사회 이사장(서울대 치의학대학원 교수)은 “문턱을 낮추고 믿음을 드리겠다”며 “주민분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겠다”고 했다. 구강관리센터는 일주일에 3일(월·화·목) 동안 의사 5~6명이 돌아가며 환자를 맞는다. 치과위생사 1명이 상근한다. 의료진은 모두 자원활동 형태로 참여한다. 그간 장소를 확보한 사회취약계층 대상 치과 진료소가 드물었는데, 서울 중심가에 진료소가 생긴 후 자원활동을 지원하는 의료진이 늘었다고 한다.

치과 자체가 낯선 쪽방촌 주민들은 구강 건강이 안 좋은 사례가 많다. 치과 진료 원칙은 치아를 살려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지만, 상태가 나빠 발치해야 하는 주민도 적지 않았다. 치아가 10개도 남지 않은 주민도 구강관리센터를 찾아왔다. 스케일링으로 치석 제거만 하면 되는 주민은 드물었다.

조 원장은 “사회취약계층 진료는 전에도 경험했지만 쪽방촌 주민의 구강 상태는 더 좋지 않은 편”이라며 “초기 진료 시기를 놓쳐 악화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쪽방 거주자의 평균 연령은 66.2세(2019년 한국주택금융공사)로 고령화돼 구강 상태가 나쁜 점도 있다.

쪽방촌 주민들의 구강 상태는 ‘건강 불평등’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다. 최근 국민영양조사를 분석한 연구를 보면 2020년 국내 평균 구강 건강 수준은 예년보다 좋아졌지만 소득 최상위와 최하위 간 격차는 그대로이거나 오히려 커졌다. 구강관리센터 운영은 구강 건강 격차를 좁히려는 노력이기도 하다. 조 원장은 “당분간은 충치 치료, 상한 치아 발치처럼 기본 진료에 집중하려 한다”고 말했다.

건강한 치아를 되찾기 위해서는 자발적 의지도 중요하다. 권수연 치과위생사는 환자에게 “꾸준히 나오셔야 한다”고 말했다. 권 치과위생사는 “진료는 긍정적으로 반기시는데, 경제적 부담 때문에 치과를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다”며 “그래도 진료 때마다 4~5명씩 예약이 차 있고 방문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구강관리센터의 진료 활동은 내년부터 본격 진행된다. 내년 상반기에는 칫솔질 교육 등 방문 예방 교육도 예정돼 있다. 권 치과위생사는 “1대1로도 만나 구강 건강 이야기를 전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글·사진 김원진 기자 one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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