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 노동자는 원청 대학과 교섭하고 싶다 [6411의 목소리]

한겨레 2022. 12. 14.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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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11의 목소리]우리의 요구는 단순하다. 고용안정과 생활이 가능한 수준의 급여다. 노동조건 개선으로 하청노동자들이 좀 더 맘 편히 일할 수 있다면 학교 입장에서도 좋은 거 아닌가? 노동자들이 애사심을 갖고 일한다면 학교 경비와 주차 환경도 개선될 것이다. 그런데 이는 하청업체의 판단만으로는 가능하지 않다는 데 문제의 본질이 있다.
필자 박용환씨가 대학에서 주차 관리를 하고 있다.

박용환 | 성균관대 주차노동자

나는 수원 성균관대 자연과학캠퍼스에서 주차관리를 하는 50대 노동자다. 주차관리 노동자들은 주차 유도와 단속, 정산 등 학교 내 주차 관련 제반 업무를 맡는다. 평일 근무가 기본이지만 주말에 학교행사가 있으면 수시로 나온다. 주차관리는 일의 성격상 야외 근무가 기본이라 한여름과 한겨울에도 장시간 야외에서 서서 일해야 한다. 보통 1만5천보 내외를 걷는다. 그러다 보니 족저근막염이나 무릎통증, 허리통증 등의 근골격계 질환을 앓는 경우가 많다.

성균관대 주차관리원은 5명인데 평균 근속기간은 4개월에 불과하다. 최근 반년 사이에만 5명이 차례로 그만두고 교체되었다. 기본급은 191만원(최저시급 9160원 적용)이고 직무수당 5만원이 추가되어 월 임금은 196만원이다. 4대 보험을 빼고 통장에 찍히는 돈은 176만원인데 그 흔한 식대도 없다. 7000~9000원 하는 교직원 식당은 엄두도 못 내고 4500원짜리 학생식당에서 직접 사 먹는다. 회사는 학교와 3년 계약(5년까지도 가능)을 맺었는데 노동자들은 1년 단위로 근로계약을 맺는다.

이러한 불안정한 고용여건은 그동안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고, 이를 개선하는 것은 언감생심 가능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다가 지난 9월, 학교 경비(보안) 노동자들과 주차관리 노동자들이 함께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경기지역지부 성균관대비정규분회다. 성균관대에 최초로 비정규노동자들의 권익을 대변하는 노동조합이 생긴 것이다. 성균관대비정규분회는 현재 경비분과는 17명, 주차분과는 4명이 조합원이다. 성균관대에서 일하는 학교 하청노동자 전체로 보면 조합원 수는 소수지만 노동자 권리찾기는 이제 시작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33조에는 “노동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노조 결성을 회사에 통보한 직후부터, 과거보다 노동강도가 강화되었다. 이러한 변화가 하청업체의 일방적인 판단인지 아니면 학교의 지시에 의한 것인지 우리로서는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노동자가 노동조합 할 권리를 규정한 헌법 조항을 하청업체와 학교가 모르는 것은 아닐 텐데, 그들에게 노동조합은 여전히 눈엣가시 같은 존재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노조 결성 뒤 작은 변화도 있다. 학교 경비노동자들의 현장대리인 지점장이 직장내괴롭힘, 갑질로 고용노동부에 고발되어 직무정지를 당한 것이다. 이로 인해 학교 출입이 중지되었다가 11월말 최종 결과가 나왔는데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났다. 갑질 경비 지점장의 성균관대 복귀가 불허된 것이다.

나는 근무하는 동안 하청회사 본사 사람들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내가 근무한 기간은 물론이고 하청회사가 학교와 계약한 지난 1년 반 동안, 회식도 없었고 그 흔한 ‘직원을 가족처럼 생각한다’는 말조차 들어보지 못했다. 노동자의 생존권과 권리는 누가 지켜주는 것이 아님을 근무일이 늘어날수록 절감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의 요구는 단순하다. 고용안정과 생활이 가능한 수준의 급여다. 이러한 노동조건의 개선으로 하청노동자들이 좀 더 맘 편히 일할 수 있다면 학교 입장에서도 좋은 거 아닌가? 노동자들이 애사심을 갖고 일한다면 학교 경비와 주차 환경도 개선될 것은 자명하다. 그런데 이는 하청업체의 판단만으로는 가능하지 않다는 데 문제의 본질이 있다.

대학과 주차관리 하청업체는 특이한 위탁 계약관계에 있다. 학교가 수익사업을 직접 할 수 없기에 주차관리를 하청업체에게 통으로 맡긴다. 하청업체가 주차관리를 통해 수익을 내고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을 학교에 임대료로 납부하는 구조다. 그렇게 납부하는 임대료가 매월 수천만 원이다. 학교는 주차관리 대가로 높은 임대료를 받아 사실상 원청으로서 실질적인 돈줄을 쥐고 있다.

또한 성균관대는 하청업체 인사권에도 관여하고 있다. 근로자 채용 및 퇴직과 관련한 제반 사항은 “학교와 사전에 반드시 협의하여야 하고”(과업지시서), “학교에 사전에 반드시 보고하여야 한다”(계약서)고 되어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하청업체와만 단체교섭을 하고 있다. 돈줄을 쥐고 있고 인사권도 행사하는 성균관대가 하청업체 비정규노동자들과의 단체교섭에 나오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

현재 국회에는 ‘노동조합법 개정안’(노란봉투법)이 상정되어 있다. 이 개정안의 핵심은 쟁의행위에 대한 기업의 무분별한 손해배상 금지와 더불어 사용자 개념을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인 지배력 또는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로 확대하는 것이다. 우리가 노란봉투법이 반드시 통과되기를 염원하는 이유 중 하나다. 우리는 원청인 성균관대와 당당히 교섭하고 싶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4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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