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C코리아’ 윤 대통령의 엉뚱한 ‘공정 빌드업’ [이준희 기자의 ‘여기 VAR’]

이준희 2022. 12. 14.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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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코리아'라는 말이 있다.

평소엔 축구에 전혀 관심이 없지만, 월드컵 때면 대표팀과 대한축구협회에 온갖 비난을 쏟아내는 이들을 비판하는 용어다.

정말 그럴까? 각국 축구협회는 월드컵 성적에 따라 배당금을 받는다.

더욱이 축구협회로 가는 돈은 결국 대표팀과 한국 축구 발전을 위해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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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의 여기 VAR][2022 카타르 월드컵]

윤석열 대통령이 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축구 국가대표팀 환영 만찬에서 대표팀 주장 손흥민으로부터 2022 카타르월드컵 기간 착용했던 주장 완장을 선물 받은 뒤 주먹을 맞대고 있다. 연합뉴스

‘FC코리아’라는 말이 있다. 평소엔 축구에 전혀 관심이 없지만, 월드컵 때면 대표팀과 대한축구협회에 온갖 비난을 쏟아내는 이들을 비판하는 용어다. 물론 모든 국민이 축구팬일 필요도 없고, 월드컵만 즐긴다고 해서 문제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대통령이 FC코리아 수장 노릇을 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윤석열 대통령은 13일 국무회의 때 2022 카타르월드컵 배당금을 문제 삼았다. 윤 대통령은 이날 “스타 비즈니스가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정당한 보상 체계를 갖춰야 한다”며 “국가대표 선수들이 제대로 보상받았는지 자문해 봐야 한다”고 했다. 앞서 9일 경제단체장 비공개 만찬에서 “고생은 선수들이 했는데 왜 축구협회가 배당금을 더 많이 가져가느냐”라고 언급한 뒤 나온 발언이다. 축구협회가 선수들이 받아야 할 정당한 몫을 빼앗았다는 식이다.

정말 그럴까? 각국 축구협회는 월드컵 성적에 따라 배당금을 받는다. 이번 대회 한국이 받을 배당금은 약 170억원이다. 협회는 이 중 100억원을 운영 자금으로 쓰고, 70억원을 선수 포상금으로 쓸 계획이었다. 1인당 2억1천만원∼2억7천만원 정도 돌아간다. 반면 역시 16강에 오른 일본은 선수들에게 평균 약 9600만원을 지급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한국 대표팀이 받는 금액은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니다.

더욱이 축구협회로 가는 돈은 결국 대표팀과 한국 축구 발전을 위해 쓰인다. 월드컵 기간에는 선수들이 주인공이지만, 그 무대를 위해서는 4년 동안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협회는 대표팀 훈련을 지원하고 친선전도 잡는다. 장기적으로는 유소년 선수를 키우고, 축구 인프라도 늘려야 한다. 월드컵 배당금은 당연히 여기에 쓰인다. 축구협회 수익 중 정부 지원금은 약 20%. 나머지는 배당금 등 자체 수익과 복표 수익으로 충당해야 한다.

한국 축구대표팀 선수들이 포르투갈을 꺾고 16강 진출을 확정한 뒤 기뻐하고 있다. 알라이얀/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이런 현실을 알기나 하는지 대통령은 축구협회를 ‘약탈자’로 지목했다. 애꿎은 축구협회에 좌표 찍기를 하며 갈라치기 정치를 한 셈이다. 월드컵 때면 불타오르는 ‘탐욕으로 점철된 축구협회’라는 일종의 음모론에도 기름을 부었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은 대통령 비공개 발언이 보도된 뒤 사재 20억원을 선수 수당으로 기부했다. 이미 2018년 파울루 벤투 감독 선임을 위해 40억원을 내놨던 정 회장이다. 축구협회는 “대통령 발언 때문은 아니다”라고 선을 긋지만, 국민 눈에는 이 상황이 어떻게 비칠까.

더욱이 16강 성과는 선수들의 힘만으로 이룬 게 아니다. 그라운드 밖에서 이들을 지원한 많은 사람이 있다. 축구협회는 이번 대회에 선수단장을 포함해 전력분석관, 의무 트레이너 등 지원 인력 29명을 파견했다. 국내에서 힘을 보탠 이들을 더하면 그 숫자는 더 많다. 이들이 쓰는 체류비, 항공료 등도 결국 축구협회가 낸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피땀 흘려 일하는 노동자들에겐 한없이 무관심하다는 점에선 그 일관성이 대단하기도 하다.

스포츠계 정당한 보상 체계를 걱정한다면, 사실 대통령이 진짜 살필 곳은 따로 있다. 한국엔 코치, 트레이너 등 노동자로 일하지만 노동법 보호를 받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기업이 비용 절감을 위해 이들과 개인사업자로 위장계약을 맺기 때문이다. 이들을 노동자로 인정하는 노동위원회 결정 등이 나오고 있지만, 기업은 이를 무시한 채 버틴다. 윤석열식 공정은 이런 곳에선 항상 ‘빌드업’을 멈춘다.

빌드업 축구는 정확성이 생명이다. 골키퍼마저 발기술이 중요할 정도다. 패스 실수는 곧 실점이 될 수 있다. 한국은 비정규직·특수고용노동자 등 정당한 보상 체계에서 퇴장당한 국민이 즐비한 나라다. 어느 때보다 정확한 패스가 필요하다. 엉뚱한 곳에서 정당한 보상 체계 운운하는 윤석열식 공정 빌드업이 우려스러운 이유다.

givenhapp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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